통상·FTA 통상 현장 Interview 라메시 비스와나트 아이어르 주한인도상공회의소(ICCK) 회장 “韓 기업 印 조인트벤처 투자 적기…친환경 에너지·조선 유망”
  • 이용성 기자
  • 인시아드(INSEAD) 최고경영자(CEO) 과정, 현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 한국 지사장, 전 TCS 유럽 리스크 및 컴플라이언스 책임자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고 첨단 기술과 제조업 분야의 숙련도가 매우 높다. 한국과 한국 기업이 여러 세대에 거쳐 이룩한 성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다. 인도는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인도에 매우 이상적인 협력 파트너다.”

    인도는 인구가 약 14억6000만 명으로, 중국(약 14억1600만 명)에 앞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다. 인도는 중위 연령(인구 분포상 한가운데 연령)이 28세이고 인구의 42.7%가 25세 미만인 ‘젊은 국가’다. 젊은 층 주도하에 창업 열기도 뜨겁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오리오스벤처파트너스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인도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은 117개다. 이 중 62%인 73개사가 2020년 이후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미국(704개)과 중국(335개)에 이은 세계 3위다. 

    2014년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친(親) 기업 성향이다. 모디 총리는 ‘한강의 기적’에 영감을 받았다는 제조업 육성 정책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기반으로 토지 매입 절차와 조세 체계 간소화, 도로 통신 등 인프라 구축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인도의 이 같은 정책 기조는 한국 기업에 좋은 진출 기회로 여겨진다. 라메시 비스와나트 아이어르(Ramesh Vishwanath Iyer) 주한인도상공회의소(ICCK) 회장은 ‘통상’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관행과 협력 구조 그대로 해외로 들고 가는 경우에는 원하는 그림대로 신속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금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인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제는 인도 현지 기업과 조인트벤처(JV) 설립을 통한 진출을 모색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라메시 회장은 전자통신공학을 전공한 정보기술(IT) 전문가로, 인도 대기업 타타(TATA)그룹의 계열사이자 인도 최대 IT 컨설팅 기업인 타타컨설팅서비스(TCS)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럽 전역의 은행 및 금융 서비스 고객과 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타타그룹은 자동차, 통신, 금융 등 다양한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어 ‘인도의 삼성’으로도 불린다. 2004년에는 대우상용차(현 타타대우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국내에도 이름이 널리 알렸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1650억달러, 이 가운데 TCS 매출은 299억7000만달러였다. 2010년 1월 출범한 ICCK는 타타대우 모빌리티와 TCS, 노벨리스 등 한국에 진출한 인도 기업과 로펌, 인도 시장에 관심이 있는 국내 기업 등 90여 개 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정보 교류와 네트워킹을 통한 양국 경제와 교역, 투자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다음은 라메시 회장과 일문일답.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의 야경.

    한국과 인도는 매우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다.

    “인도 독립기념일은 광복절과 같은 날인 8월 15일이다. 한국은 1945년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났고,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두 나라 모두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도 의미가 크다. 만만치 않은 이웃 국가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두 나라가 경제 비즈니스 분야에서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고 첨단 기술과 제조업 분야의 숙련도가 매우 높다. 한국과 한국 기업이 여러 세대에 거쳐 이룩한 성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다. 인도는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한국은 매우 이상적인 협력 파트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인도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조1870억달러로 일본(4조1864억달러)을 근소하게 앞서며 기존 세계 5위에서 4위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8년에는 독일을 누르고 3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여러 대기업이 이미 인도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 중이다.

    “한국 대기업은 인도 시장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인도는 국내에서 생산한 것을 자국에서 모두 소비할 수 있을 만큼 내수 시장이 탄탄하다.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진출하면서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다만 잠재력에 비해 GDP 규모는 매우 작다. 그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 한국 기업이 인도에 진출하는 건 아귀가 잘 맞는다.”

    현대차는 2024년 10월 22일 인도 법인을 뭄바이 증시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 밴드의 최상단인 주당 1960루피로 책정됐으며, 주식 배정청약 마감 결과, 주식 수의 2.39배 청약이 몰렸다. 인도 주식시장 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다. 현대차그룹은 인도에 120만 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 첸나이 공장의 생산능력은 80만대, 기아 아난타푸르 공장이 41만 대에 이른다. 여기에 GM으로부터 인수한 인도 푸네 공장의 생산 능력 20만 대가 더해지면, 올해 하반기 현대차그룹은 인도에 14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LG전자는 1997년 인도 노이다에 첫 법인을 설립한 이후 27년간 인도에 판매·생산법인뿐 아니라 본사 연구개발(R&D) 보조 기능까지 아우르는 ‘현지 완결형 사업 구조’를 구축했다. LG전자의 세탁기와 냉장고 같은 생활 가전은 이미 현지에서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LG전자가 하반기에 인도 금융 당국에 최신 재무 실적을 반영한 상장예비심사 서류를 다시 제출할 계획이며, 이르면 4분기에 IPO를 진행될 수 있다고 최근 전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인도 진출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까지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 대부분은 독자적으로 진출했다. 이제는 인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도 현지 기업과 조인트벤처(JV) 설립을 통한 진출을 모색하기 좋은 시점이 왔다. 대기업은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이 신규 진출을 원한다면 조인트벤처가 최선의 방식이다. 지금의 인도는 10~15년 전과는 또 다르다. 특히 인도에서 기업을 설립할 때 정부가 지원하는 인센티브 관련해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예를 들어 어느 반도체 기업이 인도에 10억달러 규모 투자를 집행한다면, 3억달러는 인도 정부가 지원하는 구조다.”

    인도는 정부는 파격적인 반도체 보조금을 지원하며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총사업비 27억5000만달러 규모의 D램과 낸드 메모리 조립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초기 비용 8억2500만달러는 마이크론이 투자하고, 나머지 비용은 추후 인도 정부가 투자할 예정이다. 또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 AMD는 총 4억달러를 투자해 벵갈루루에 칩 설계를 담당하는 디자인센터를 만든다. 세계 반도체 장비 1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는 2023년 6월 벵갈루루에 4억달러를 투자해 엔지니어링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장비 3위 업체 미국 램리서치도 10년간 엔지니어 6만 명을 양성하는 반도체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애플은 중국의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베트남과 함께 인도를 차세대 생산 기지로 육성 중이다.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한국의 관행과 협력 구조 그대로 해외로 들고 가는 경우에는 원하는 그림대로 신속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자금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은 성공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해외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으려면 문화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협력 과정에서 서로를 배우며 성과를 도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개 그렇게 서로 다른 기업이 만나 조율하는 데 반 년에서 1년이면 충분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다.”

    인도 인구에서 힌두교 신자가 80%에 달한다. 종교때문에 조심해야 할 점은.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삶의 방식’ 또는 ‘철학 체계’에 가깝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리 규정이 없다. 숭배 대상도 산·나무·동물·인간 등 다양하다. 수백 가지 방법을 통해 신적인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인도 문화는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강하다.”

    ICCK는 인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을 어떻게 도울 수 있나.

    “외교·정치 네트워크를 동원해 도움을 줄 수 있다. 인도 최고의 로펌 등 적합한 파트너도 ICCK에 있다. 비자 발급 관련해서는 주한인도대사관과도 긴밀하게 협력한다. 인도에서 마주할 문제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은 이제 선진 시장 외에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점에서 인도만 한 시장은 없다. 이미 거대한 시장인데도 해마다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인도 시장이 어렵다면 한국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첫 발도 내딛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어떤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인도의 협력이 특히 유망할까.

    “환경을 존중하는 것이 ‘힌두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이다. 따라서 친환경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이 유망할 것으로 본다. ‘어떻게 하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할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인도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 영향으로 인도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커졌다. 인도가 반도체 생산 기지로 변모하고 있는 만큼 관련 분야의 협력을 통해 한국 기업이 혜택을 볼 여지도 커졌다.”

    조선·방산 분야는 어떨까.

    “한국은 초대형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인도는 교역의 상당 부분이 선박을 통해 이뤄지지만, 대형 선박 건조 기술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한국과 인도의 조선 관련 협력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방산 분야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인도에 K9 자주포를 수출하며 이미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이어지면서 양국의 협력 여지도 커졌다. 하지만 방산 분야에서 파트너로 신뢰를 쌓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HD현대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인 코친조선소와 ‘조선 분야 장기 협력을 위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코친조선소는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 있는 인도 최대 규모의 조선소다. 인도 정부가 67.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상선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종의 설계·건조·수리 역량을 갖췄다. 두 회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코친조선소 설계·구매 지원 △생산성 향상 및 글로벌 수준의 품질 확보를 위한 기술 협력 △인적 역량 강화 및 교육 훈련 체계 고도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략적 협력을 추진한다. 이를 계기로 두 회사는 인도 및 해외시장에서의 선박 수주 기회도 함께 찾기로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군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인 인도에 K9 자주포의 추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우리 돈 약 3700억원이다. 이번 수출 계약을 계기로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등 실리콘밸리에서 인도계 최고경영자(CEO)가 두각을 나타낸 지 오래다. 비결이 뭔가.

    “인도는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한다. 인도 출신 기업인은 매우 근면·성실하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교육열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인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학이 일상 생활 전반에 스며든 인도 고유의 문화가 실리콘밸리에서 인도 출신 CEO의 성공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