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은 국제 질서의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트럼프 1기(2017~2020년) 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지식재산권 침해, 대규모 무역 적자를 문제 삼아 고율 관세를 전면에 내세우며 중국을 정조준했다. 미국은 약 36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양국 간 무역 전쟁이 본격화했다. 조 바이든 정부 역시 전략적 경쟁의 틀을 유지하면서 반도체, 전기차(EV), 배터리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추가 관세와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미국은 2024년 5월에도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에 대한 강경 조치를 취했다. 지난 4월에는 중국에 대해 총 14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미국의 관세 조치에는 세 가지 명확한 목표가 있다. 첫째,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것이다. 관세 부과를 통해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미국산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둘째, 제조업의 미국 회귀다.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던 미국 기업의 생산 비용이 관세로 증가하면서 생산 시설을 다시 미국으로 옮기도록 유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의도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제하는 것이다. 수출 주도형 성장을 해온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중국의 기술과 경제적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겼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장벽이 의도한 만큼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지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6월 18일(현지시각) ‘중국이 세계에 새로운 수출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China Is Unleashing a New Export Shock on the World)’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중국의 대미 수출은 감소했지만, 전체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이 동남아시아, 유럽, 중남미 시장으로 수출을 다변화하면서 미국 관세의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중국은 2730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에는 흑자 폭이 3142억달러로 늘었다. 특히 올해 1분기 수출 규모는 8536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역대 1분기 중 최고치다.
미국의 관세 조치는 단순한 무역정책이 아닌 전략
적 경쟁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세 조치가 실제로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제하며, 미국 산업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통한 제조업 부활’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미국의 대형 은행 웰스파고(Wells Fargo)는 최근 미국 제조업 고용이 정점을 기록했던 1979년의 2000만 명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 2조900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히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올랐고, 공급망 병목 현상이라는 부작용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산 제품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지 않았고(저가 소비재 부문에서 일부 타격을 주었다), 다양한 경로로 우회 수입되면서 미국 관세 조치의 실질적 영향력은 제한되는 모습이다.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는 중국의 수출 전략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기업은 수출 전략을 빠르게 전환했다. 비록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는 밀려났지만, 수출 경로와 생산 기지 다변화,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수출 규모를 오히려 늘리고 있다. 중국 기업은 수출 대상국을 동남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거나 분산시키는 전략도 구사한다.
이런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제삼국을 경유하는 수출 방식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부품이나 반제품을 제삼국인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수출한 후 현지에서 조립하거나 최소한의 가공을 거쳐 원산지를 세탁(origin washing)하는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크게 늘었다.
베트남 관세청에 따르면, 2024년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약 1195억달러로 이는 베트남 전체 수출의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섬유, 신발, 가구 등에서 증가세를 보였는데 상당 부분 중국산 부품과 중간재가 베트남을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간 결과로 분석된다.
둘째, 해외 생산 거점 구축을 통한 공급망 재편이다. 이는 단순한 경유를 넘어 생산 설비와 인력을 중국 외 다른 국가로 보내 새로운 생산 거점을 만드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중국 내에서 모든 생산과 조립이 이뤄졌다. 현재는 베트남, 멕시코로 부품 생산을 분산하고 현지에서 최종 조립한 후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방식이 보편화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업체 BYD는 관세를 회피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헝가리, 브라질, 태국에 현지 공장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독일에 세 번째 생산 공장 건설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 제조 업체인 롱기(LONGi)도 말레이시아 공장을 활용해 미국의 관세 부담을 회피하고 있다. 멕시코 역시 중국 기업의 중요한 생산 기지로 급부상했다. 중국 기업은 멕시코에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1)의 혜택을 받고자 한다.
중국 기업의 이런 전략은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도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해외 인프라 투자는 특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주요 우회 경로에 필요한 물류와 생산 인프라를 구축해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더 용이하게 한다. 중국 정부의 수출 보조금 정책과 위안화 절하 기조도 중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 증가와 내부 요인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에도 중국 수출이 많이 증가한 것을 중국의 수출 전략 변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최근 중국 수출 증가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중국 정부의 장기적인 산업 정책과 내수 경기 둔화라는 내부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닌 고부가가치 산업의 중심으로 경제적 체질을 개선하고자 한다.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는 이런 중국의 목표를 반영한 산업 고도화 전략이다. 이 정책은 로봇, 항공우주, 신에너지차(NEV), 바이오 의약품 등 10대 핵심 산업에서 기술 자립도를 끌어올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청사진을 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적 지원을 배경으로 특정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신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해당 부문 수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BYD와 지리자동차(Geely Auto) 같은 대표적인 기업은 가격 경쟁력과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은 물론 유럽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실제 크게 상승하면서 전통적인 서구 자동차 제조사를 위협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2024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CATL과 BYD는 각각 45.2%, 25.1%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두 기업의 점유율을 합치면 70%를 넘어선다. 압도적인 생산 규모와 가격 경쟁력으로 글로벌 전기차 생태계의 핵심 공급망을 형성한다.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의 주도권은 더 두드러진다. 전 세계 태양광 패널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미국을 제외하고, 유럽 등 재생에너지 전환 국가에 대량 수출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을 통해 육성된 첨단 제조업 분야는 미국의 관세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장을 중심으로 수출 증가를 보이고 있으며, 무역 흑자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 증가는 정부의 정책과 외부 시장 다변화 노력 외에 내수 경기 둔화라는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 부동산 시장 침체, 높은 청년 실업률, 이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 등 내수 경기 둔화에 직면했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헝다(Evergrande) 사태로 촉발된 위기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가계의 소비 여력을 급격히 위축시켰다. 또 제로 코로나 정책 장기화와 불확실한 경제 전망이 소비 지출을 크게 위축했다. 2023년 이후 중국 정부의 내수 진작 노력으로 소매 판매 증가율이 회복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2024년 12월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양적 완화를 통해 침체에 빠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다만 내수 수요가 예상만큼 증가하지 않자, 기업은 과잉생산된 제품을 해외시장으로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 재고 소진과 생산 라인 유지를 위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해외시장으로 제품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전체 수출 규모 증가와 무역 흑자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미·중 무역 갈등과 중국의 성장 잠재력 중국은 미국과 무역 갈등이 고조되자 단순한 방어적 대응을 넘어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력이 시장 다변화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2)로의 확장이다.
중국은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는 중국의 핵심 무역 파트너로 부상했으며, 고속철도 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제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운명 공동체를 내세우며 정치적 유대도 강화하는 중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24년 하반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조사에 착수하는 등 중국과 무역 불균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전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중국산 제품 수입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미국이라는 단일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경제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기술 자립과 내수 중심의 쌍순환 전략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경쟁이 기술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등 핵심 기술 분야 통제를 강화하자 중국은 기술 자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자체 반도체 생산능력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내수 시장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는 쌍순환 전략을 강화해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생산과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미국과 무역 갈등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무역 전쟁 시대의 교훈
중국의 수출 증가와 무역 흑자는 단기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지표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의문이 제기된다.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 모델은 글로벌 경기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공급과잉 문제를 구조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세 조치 역시 단기적 압박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구조적인 대응 없이는 지속적인 효과를 내기 어렵다. 중국은 무역 전쟁의 충격을 수출 전략 고도화, 공급망 다변화,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상호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보호무역주의의 부활이 결코 자국 산업 보호로 직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복잡한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용어설명
- 1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USMC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무역협정으로, 2020년에 발효됐다. 자동차 산업 규제, 농업 수출 확대, 디지털 무역 규정 강화, 지식재산권 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규제를 담고 있다.
- 2글로벌 사우스 (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을 통칭하는 말이다.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멕시코를 비롯한 120여 개국이 해당한다.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보통 포함되지 않는다. 북반구에 있는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은 글로벌 노스(Global North)라고 불리며, 글로벌 사우스와 대비된 개념으로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