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 인터뷰 Interview 조너선 홈 취리히 연방공대(ETH 취리히) 물리학 교수 “고속 성장 韓, 양자 컴퓨터 분야는 장기 접근·지원 필수”
  • 이용성 기자
  •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리량 최소 단위인 양자(퀀텀·Quantum)를 이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양자 컴퓨터는 국가의 미래 경제·사회·안보 등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미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2024년 23억달러였던 양자 컴퓨터 시장 규모가 2033년에는 246억달러로 10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방한한 조너선 홈(Jonathan Home)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취리히) 교수는 양자 컴퓨터에 대해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도 양자 컴퓨터가 하는 작업을 전부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탁월하다”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기술력을 많이 끌어올려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ETH 취리히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 22명을 배출한 유럽 최고의 명문 공대이자 세계 최고의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 중 하나다. 영국 출신인 홈 교수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양자 컴퓨팅 전문가 중 하나다. 현재 ETH 취리히 물리학부 학장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양자 기술 행사 ‘퀀텀 코리아 2025’ 참석을 위해 방한한 홈 교수를 서울 서대문구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만났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퀀텀 코리아 2025 기간 중 스위스 양자 생태계를 소개하는 부스를 운영하고, 고위 정책 라운드테이블 및 비즈니스 네트워킹 세션에도 참여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 박사, 현 ETH 취리히 물리학부 학과장, 전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방문교수

    양자 컴퓨팅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 부탁한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입자 성질이 파도와 비슷하다. 두 파도가 만나면 더 높은 파도가 생기고 마루와 골이 만나면 서로 상쇄돼 물결이 사라지기도 하지 않나. 양자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입자도 이와 비슷해서 동시에 많은 경로를 살펴볼 수 있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방법을 총동원해도 양자 컴퓨터가 하는 작업을 전부 기록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기존 컴퓨터보다 성능이 훨씬 탁월하다.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기술력을 많이 끌어올려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한 번에 오직 0 또는 1 중 하나의 값만을 가질 수 있는 ‘비트’를 최소 단위로 사용한다. 반면 양자 기술은 ‘큐비트’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 상태를 활용,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복잡한 연산을 병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접목이 유망한 분야를 꼽는다면.

    “양자역학 관련 계산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양자 컴퓨터가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화학반응이 중요한 과학 연구 분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기존 슈퍼컴퓨터로도 양자역학 계산을 많이 했는데, 양자 컴퓨터가 관련 연구에 속도를 더할 것이다. 암호 작성 해독(cryptography) 분야에도 쓸모가 많을 것이다. 보안 관련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기존 RSA 암호화 알고리즘을 깨고 과거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가 1990년대부터 양자 컴퓨터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은 이 같은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 보안 핵심을 담당하는 RSA 암호화는 1977년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세 연구자 로널드 리베스트, 아디 샤미르, 레너드 애들먼이 개발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열쇠를 사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개 키(Public Key)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열쇠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사용한다. 개인 키(Private Key)는 오직 나만 가지고 있는 비밀 열쇠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할 때 사용한다.

    인공지능(AI)과 양자 컴퓨터의 관계는.

    “엄밀히 말하면 둘은 분야가 다르다. AI는 많은 데이터를 현명하게 이용하고 저장하는 방식이다. 매우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머신러닝을 통해 최적화하고, 결과를 도출한다. 최적화 부분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도움 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 업로드는 느릴 것이고, 트레이닝에 썩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AI가 양자 컴퓨터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양자 컴퓨터는 언제쯤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양자 컴퓨터로도 어느 정도 신뢰도 높고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관련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오류가 없는 양자 컴퓨터가 나와야 ‘사용할 만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많은 기업이 그렇게 되기까지 3~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내가 보기엔 10년은 더 걸릴 것 같다.”

    그동안 양자 컴퓨터에 회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얼마 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내가 아는 한 그렇게 단기간에 입장을 바꿀 만한 상황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혹시 그가 관련 분야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웃음)? 물론 그사이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이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사람들의 관심과 투자에 따라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젠슨 황은 지난 1월 양자 컴퓨터 도래 시기를 묻는 말에 “5년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초기 단계일 것이고 30년은 후기 단계일 것”이라며 “20년을 선택한다면 많은 사람이 믿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용한 양자 컴퓨터가 나오기까지 20년은 걸릴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랬던 그가 6월 “향후 몇 년 안에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에서 양자 컴퓨터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자 컴퓨터는 변곡점에 진입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양자 컴퓨팅 관련 스위스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

    “스위스는 기초과학 연구 지원이 탄탄하다. 성과도 좋다. 내 연구도 스위스 정부로부터 장기 지원을 받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기업 R&D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 민간 벤처캐피털(VC)이 활성화된 미국에 비해 스위스의 투자 환경은 좀 더 조심스럽다.”

    (박사 학위를 받은) 옥스퍼드대는 어땠나.

    “교수 중에 오랫동안 논문을 거의 쓰지 않고 관리 업무도 안 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공부하는 이가 종종 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그런 접근을 해야 한다. 양자 컴퓨터도 그런 분야다.”

    한국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고속 성장을 일궜다. 그래서 성과를 위해 밀어붙이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 같은 분야는 장기적인 접근과 지원이 필요하다. 어려운 목표일수록 지속적이고 끈질긴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