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통상 현장 Interview 칼리드 압델라흐만 주한 이집트 대사 “수교 30주년 맞은 한·이집트 협력, ICT·AI로 확대 필요”
  • 이용성 기자
  • 멀리 피라미드가 보이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

    “투자·무역·관광 분야에서 이집트와 한국의 협력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매일 카이로와 서울을 오가는 직항편을 개설해 운항하는 것이다. 현재 카이로는 일본 도쿄 그리고 중국 여러 도시와 직항으로 연결돼 있다. 직항편은 두 나라 간 무역·관광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집트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길목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약 1억1800만 명에 달하는 인구 중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 젊은 층이므로 성장 잠재력도 크다. 인구는 나이지리아(2억3700만 명), 에티오피아(1억3500만 명)에 이은 아프리카 3위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177달러(2023년 세계은행 기준)로 나이지리아(2460달러), 에티오피아(890달러)에 크게 앞선다. 이집트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제조 강국이기도 하다. 제조업은 이집트 GDP의 약 17%를 차지한다. 그런데 인건비는 동남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집트는 유럽연합(EU),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남미공동시장 메르코수르, 튀르키예,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 범아랍자유무역지대(GAFTA)를 통해 약 105개국과 FTA를 맺고 있다. 이집트에서 현지 생산하면 이런 시장으로 수출이 용이하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국가이면서 중동 국가이기도 하다. 이른바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주요 구성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투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을 연결하는 이집트의 위상이 높아졌다.

    올해는 한국과 이집트 수교 30주년(4월 13일)을 맞은 해다. 지난 30년간 한국과 이집트의 관계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양국 교역액은 수교 당시보다 다섯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30억달러를 돌파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집트에 공장을 세우고 TV·휴대폰 등을 중동·아프리카·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다. LG전자는 1990년부터 이집트에서 가전제품을 생산해 왔다. 삼성전자는 2013년 이집트에 진출해 햇수로 13년째 공장을 가동 중이다.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칼리드 압델라흐만 주한 이집트 대사를 만났다. 압델라흐만 대사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주최한 행사 참여를 위해 이 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투자·무역·관광 분야에서 이집트와 한국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서울을 매일 오가는 직항편을 개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압델라흐만 대사는 국립 카이로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이집트 외교부에 입부해 쿠웨이트와 영국 런던, 체코 프라하 등에서 근무했고, 주앙골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주한 이집트 대사로는 2022년 2월 임기를 시작했다. 다음은 압델라흐만 대사와 일문일답.

    칼리드 압델라흐만 주한 이집트 대사. 카이로대 정치경제학, 전 주쿠웨이트 이집트 대사관 참사관, 주체코공화국 이집트 대사관에서 차석, 전 주앙골라 이집트 대사

    올해가 한국과 이집트 수교 30주년이다. 지금까지의 양국 협력 관계, 어떻게 평가하나.

    “양국은 지난 30년 동안 상호 존중과 공동 관심사를 바탕으로 경제와 산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굳건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집트는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경제 및 산업 분야에서 그렇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對)이집트 투자 규모는 8억달러에 달했다. 전자, 정보기술(IT), 섬유, 자동차 부품, 화학, 건축자재, 재생에너지, 건설, 운송, 물류 등 주요 부문 204개 기업이 대상이었다. 한국은 대(對)이집트 투자 규모로 20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양국의 탄탄한 경제협력 관계를 보여준다. 이집트와 한국은 상호 보완적인 강점을 활용해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올해는 이집트·한국 관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지정학적 갈등을 비롯한 불확실성 확대로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이집트는 어떤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경제의 상황 변화는 나라마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다르지만, 이집트 경제는 2024년에 플러스 성장(2.4%·세계은행 집계 기준)을 기록하며 회복력을 보여줬다.”

    이집트 경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밀 가격 폭등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외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2024년 3월 변동환율제 도입과 UAE의 35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세계은행 60억달러, EU의 74억유로 자금 지원, IMF 차관 50억달러 증액 등으로 외환시장이 빠르게 안정됐다. 한때 연 40%를 상회하던 물가 상승률도 10% 초반 수준으로 완화됐다. 이 같은 상황 변화 속에 중국, EU 등 기업의 이집트 진출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집트에서 한국 기업 투자는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지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대이집트 투자는 분야별로 제조업(97.27%), 서비스업(1.99%), 정보통신(0.60%), 건설업(0.12%), 관광업(0.02%), 농업(0.01%)순으로 규모가 크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규모 산업 투자와 섬유를 비롯한 노동집약적산업 등 분야가 다양하다. 두산중공업 화력발전소 프로젝트, GS건설이 시행하고 있는 한국수출입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국제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23억달러 규모의 모스토로드(ERC) 정유 플랜트 프로젝트, 현대로템이 이집트 철도산업회사(NERIC)와 협력해 이집트 내 철도 및 지하철 차량을 제조·공급하는 프로젝트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2012년 베니수에프주 와스타시 콤 아부라디 공단에 공장을 설립, 이듬해부터 TV와 모니터 생산 시설 가동에 돌입했다. 2017년까지 1억 8300만달러를 투입한 데 이어 2021년 3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태블릿 PC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2023년부터는 베니수에프주 공장의 휴대폰 생산 라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생산량을 기존 연간 120만 대에서 600만 대로 늘렸다. 올해 안에 9000㎡ 규모의 휴대폰 새 공장을 완공해 2026년 1분기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집트 정부는 삼성전자에 관세 면제, 세금 감면, 행정 업무 우선 처리 등 여러 가지를 지원하고, 2024년에는 ‘특별 허가’도 내줬다. LG전자는 1990년부터 이집트에서 가전제품을 생산해 왔다.

    두산중공업은 2010년 한화 약 4000억원 규모의 이집트 아인 소크나 화력발전소의 보일러 공급 및 설치 공사를 수주해 공급했다. GS건설은 2007년 이집트에서 20억달러가 넘는 ERC 수첨분해(HCU·수소 등 촉매를 활용한 정제 기술) 시설 프로젝트를 수주해 2020년 2월 준공했다. 한국 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단일 플랜트 최고 계약으로 화제를 모았던 프로젝트였다. 현대로템과 NERIC는 2022년 8월 이집트 교통부로부터 약 7500억원 규모의 전동차 공급 사업을 따냈다. 2호선(슈브라역~엘무닙역·21.6㎞) 56량, 3호선(아들리 만수르역~카이로 대역·41.3㎞) 264량 등 총 320량을 2028년까지 납품한다. 48량을 한국에서, 나머지를 이집트 신공장에서 만들기로 했다. 차량 납품 후 보증기간이 지나면 8년간 차량 유지·보수도 함께 담당한다. 현대로템은 이집트 생산 공장을 발판 삼아 추가 수주에 적극 나선다. 이집트는 5000억원 규모의 탄다~엘마수라~타미에타 철도 현대화 사업 발주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한·이집트 경제협력에서 기대하는 점은.

    “이집트 시장은 품질에 대한 평판이 좋은 한국 제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도 감자·포도·석류·망고 등 일부 신선 농산물을 포함한 이집트 제품에 대해 시장을 더 개방하길 기대한다. 또한 한국 기업이 이집트를 제조 및 수출을 위한 전략적 산업 허브로 고려해 주길 바란다. 이집트는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유럽·아프리카·아랍 국가 등 주변 지역으로 진출이 용이하다. 이집트에서 생산된 제품은 합의된 원산지 규정을 준수하면서 관세 면제를 통해 여러 시장에 진출할 수 있으므로 경쟁 우위 확보에 유리하다.”

    협력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면, 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투자·무역·관광 분야에서 이집트와 한국의 협력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카이로와 서울을 매일 오가는 직항편을 개설해 운항하는 것이다. 현재 카이로는 일본 도쿄 그리고 중국 여러 도시와 직항으로 연결돼 있다. 직항편은 두 나라 간 무역·관광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 어떤 분야의 협력이 유망할 것으로 보나.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에 우선순위를 두고, 특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가전과 섬유 등 전통적인 협력 분야도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집트의 가전·섬유 분야에서 한국 제조업의 영향력을 확대하면 양국이 함께 지역 시장 전반에서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성 AI(Generative AI) 확산 등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이집트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전력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스마트하며, 효율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기존 연료와 재생에너지를 아우르는 에너지원 다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발전 용량을 늘리고,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원을 적극 수용하며, 국가 전력망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

    모아멘 구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이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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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기업, 아프리카 잘 모른다…‘빨리빨리’ 집착 곤란”

    모아멘 구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중동아프리카학) 교수는 국내에서 매우 보기 드문 아프리카 출신 경제 전문가다.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독일 마르부르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온 지 올해 꼭 11년이 됐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이집트 산업부에서 경제분석관으로 근무했다.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에서 한국 이미지가 어떤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지난해 주이집트 한국 대사관이 한국어 코스를 개설하고 관련 광고를 냈는데, 150명 정원에 무려 3만 명이 신청했다”면서 “그만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는 이야기다. 한국 기업이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한국 기업이 현지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지만, 중소기업은 정보를 접할 기회 자체가 드물다”고 쓴소리도 했다. 아프리카는 중동, 남미와도 다르다. 갈등도 많고 언어와 문화도 매우 복잡하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자 “한국 기업 중에는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인구 등 시장 매력만 보고 달려드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 

    무역 규모도 봐야 하고 부채 흐름도 살펴야 한다. 법과 규제도 잘 알아야 한다. 너무 ‘빨리빨리’ 스타일로 치우쳐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근 사우디와 UAE 등 중동 국가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졌고 탈(脫)석유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원 확보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사우디와 UAE는 자원과 항만, 네트워킹 등을 두고 늘 경쟁해 왔는데, 이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시장을 두고 건전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