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 인터뷰 Interview 英 무역 특사로 한국에 온 톰 왓슨 상원의원 “같은 곳 향하는 韓·英, AI·재생에너지 분야 시너지 클 것”
  • 이용성 기자
  • 영국 헐(Hull)대 정치학, 현 영국 음악협회 (UK Music) 회장,전 영 재무부 최고집행위원, 전 국방부 정무 차관, 전 내각부 정무 장관, 전 노동당 부대표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가장 오랜 시간 개방을 유지해 온 시장이라는 것이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영국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국 정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영국 정부의 무역 특사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톰 왓슨(58) 상원의원은 재무부 최고집행위원과 국방부 정무 차관, 내각부 정무 장관, 현재 집권당인 노동당의 부대표 등 정관계 요직을 두루 역임한 영국 정계의 거물이다. 그런 그가 한국 담당 무역 특사를 자원해 맡은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6월 9~13일 닷새 일정으로 한국에 온 왓슨 상원의원을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만났다.

    ‘경(Lord·영국 상원의원 이름 앞에 붙는 호칭)’으로 불리는 영국 신사답게 햇살이 제법 따가운 초여름 날씨에도 위아래 흰색 슈트와 붉은 넥타이, 알이 큰 검은 뿔테 안경으로 멋지게 차려입었다.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기 가득한 표정과 다정한 말투에서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 경제를 위한 조언을 구했더니 “경청하고 배우러 온 것이지, 조언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다음은 왓슨 상원의원과 일문일답.

    한국 담당 무역 특사로 자원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만큼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낼 구실을 찾고 있다(웃음). 국무조정실에서 근무하던 2000년대 중반에, 한국에 대해 매우 관심을 두게 됐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 비율이 9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계기였다. 깜짝 놀라서 비서에게 그런 비율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매력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나라라고 생각하게 됐다.”

    무역 특사의 주된 임무는 뭔가.

    “몇 년 전에 서명한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앞으로도 몇 차례 한국을 더 방문하면서. 정계 인맥을 활용해 양국 간 업무 진행을 도울 것이다.” 한영 FTA는 2021년 1월 1일 발효했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FTA는 2011년 발효했는데, 영국이 2020년 EU를 탈퇴하면서 따로 FTA를 맺었다. 이후 무역과 성평등, 디지털 무역, 바이오 경제 등 신통상분야 신규·개선 규범을 반영한 높은 수준의 FTA를 마련하기 위해 2023년부터 FTA 개선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양국 교역 규모는 FTA 이전인 2020년 1∼11월 79억5700만달러에서 FTA 발효 이듬해인 2022년 같은 기간에는 112억3500만달러로 41.2%(32억7800만달러) 늘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왼쪽)이 6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풍산빌딩을 내방한 영국 톰 왓슨 한국담당 무역특사와 면담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양국이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안정적이고 개방된 시장을 보유한 양국 정책 방향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에 대해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두 나라 모두 정권이 바뀌면서 재생에너지와 인공지능(AI) 등 관심사가 비슷해졌다. 협력이 가능한 산업 분야가 많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가장 오랜 시간 개방을 유지해 온 시장이라는 것이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영국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국 정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분야의 협력이 특히 유망할까.

    “양국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관련 분야에서 공통의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현대 산업 전략(Modern Industrial Strategy)’ 관련 협력도 무척 기대된다. 앞으로 향후 10년간 추진할 프로젝트인데, AI와 재생에너지 등 핵심 인프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련 연구 개발(R&D) 환경이 양국의 협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잘 갖춰지길 바라고 있다.”

    영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청정에너지, 첨단 제조,디지털, AI, 생명과학, 국방, 금융 서비스, 비즈니스 서비스, 창조 산업의 8대 핵심 산업 분야에 전략적 투자를 집중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현대 산업 전략을 6월 23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했다.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안정적이며 글로벌 연계성이 높은 산업 강국 지위를 다진 다는 목표도 세웠다.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는 점에서 AI와 에너지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양국 모두 AI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데이터센터 증가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도 늘려야 한다. 원전도 탈탄소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믹스의 중요한 부분이다. 장기적으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에너지 믹스를 최대한 다양하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동부 서퍽에 신규 원자력발전소 사이즈웰C를 짓는 데 총 142억파운드(약 26조1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6월 10일 밝혔다.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가 1만 개에 이르며, 원전이 준공되면 약 600만 가구에 청정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방위산업 분야의 협력은 어떨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나라마다 방위비를 크게 늘렸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한국과 영국은 같은 배에 타고 있다. 협력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한국 기업의 이미지와 위상은 어떤가.

    “자동차와 TV를 비롯해 매일 최소 몇 개의 한국 브랜드를 접하지 않고 사는 영국인은 없다. 음식과 영화, 대중음악 등 한국 문화가 영국인 일상의 일부가 된 건 부인할 수 없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건 경제협력에도 도움이 된다. 문화 산업 자체도 양국 간 협력이 유망한 분야 중 하나다. 영국과 한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을 포함해 셋뿐인 대중음악 순수출국이기도 하다. 영화 특수 효과 분야에서 영국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이 K-팝으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영국도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