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은 기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또 데이터·알고리즘 등 AI의 핵심 자원뿐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 걸친 독과점 구조도 견고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24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주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AI 스타트업 투자 관련 시장 경쟁 저해 여부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이렇듯 플랫폼과 AI에 대한 전통적 반독점 법제 적용 한계를 드러내면서, 새로운 규범 질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오늘날 빅테크는 단순 온라인 중개자를 넘어 AI 생태계 전반을 지배하는 인프라 사업자, 알고리즘 운용자이자 데이터 보유자 역할을 한다. 거대 언어 모델(LLM)의 학습과 운용을 위한 클라우드 연산 자원은 아마존, MS, 구글 등 소수 기업에 집중돼 있는데, 이를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은 자사 우대나 멀티 호밍 제한, 데이터 결합1) 등으로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한 규제 당국은 사후 처리 중심인 경쟁법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사전 규제 중심 법규를 모색 중이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이른바 ‘게이트키퍼’ 기업을 지정하고 자사 우대, 끼워팔기, 최혜 대우 요구, 안티 스티어링(대형 플랫폼이 자사 결제 시스템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등을 규제한다.
미국은 기존 경쟁법의 틀 안에서 빅테크에 대한 적극적 소송을 병행하고 있으나, 사전 지정 방식이나 디지털 시장 특유의 플랫폼 상황을 반영한 독립 입법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FTC의 다양한 소송 사례에서 보듯, 새로운 경쟁 제한 시스템이 출현하고, 이를 강력하게 집행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후 규제라는 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신속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한국 역시 플랫폼 독과점 문제에 대해 다층적인 입법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5월 현재 약 18건의 입법안이 국회 계류 중인데, 이들 법안은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거나 새롭게 만든 것이다. 과거 한국은 EU의 DMA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의도가 있는 가칭 ‘온라인플랫폼경쟁촉진법’2)을 제정하고자 했지만, 통상 마찰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독과점 폐해 방지’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플랫폼과 입점 업체 관계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으로 대응하고자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올해 초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인사청문회에서 한국 등의 미국 플랫폼 기업 규제를 지적하면서 통상 마찰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한국은 2020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소가 없는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도입했는데, 당시에도 미국 측 반발이 있었다. 해당 개정안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12.5조에 따른 현지 주재 의무 부과 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2021년 개정한 전기통신사업법상 인앱 결제 강제 금지 관련 조항 역시 한미 FTA에 따른 시장 접근 제한 금지 의무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검토 보고서에 정부는 국제 통상 규범을 운영할 때 위반 소지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지난 3월 발표된 미국무역장벽(NTE) 보고서는 한국의 ‘경쟁 정책’을 대표적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직접 명시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연간 6억2500만 달러) 및 한국(연간 3130만달러) 매출(2024년 기준)을 충족하는 특정 디지털 서비스 공급자를 규제하는 한국의 공정거래 관련 법안에 대해 네이버와 카카오 등 한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대기업이 대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또 이 같은 법안은 한국 시장 내 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전적(ex ante) 금지 및 의무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포괄적 시장 분석과 규제 영향 평가를 수행하는 등 보다 신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USTR은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10가지 불공정 디지털 통상 관행’ 중 첫 번째로 EU의 DMA와 DSA를 지적했다. 관련 게시물을 보면 EU 기업은 유사한 차별적 부담을 지지 않지만, 미국 기업은 EU 규제의 주요 타깃이기에 DMA·DSA는 미국 기업의 EU 시장 경쟁력을 잃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미국은 한국, EU 등의 독과점 규제를 자국기업에 대한 무역 장벽으로 간주하고 이를 철폐하기 위한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5월 28일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하워드 러트릭 상무 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 및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앞으로 보낸 서한에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통상 협상을 이용해 빅테크의 이익을 부당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주장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해당 서한에 따르면, 빅테크는 그간 다양한 특혜를 받았고, 이제는 통상 협상을 통해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공정 규제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특히, 워런 의원은 각국의 경쟁 촉진을 위한 입법 시도를 무역 장벽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각국의 규제가 빅테크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모두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각국의 공정 경쟁을 위한 조치가 부당한 무역 장벽으로 재정의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도 빅테크의 독과점 규제에 긍정적 의견이 여전히 있다. 이와 함께 FTC가 빅테크의 독과점에 대한 활발한 규제에 집중하는 점으로 미뤄, 한국 또한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제도 수립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 물론 통상 마찰도 최소한으로 가져갈 수 있는 현명한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AI 시대 플랫폼 독과점 문제는 단지 기술 기업 간 경쟁 문제를 넘어, 정보 흐름, 데이터 통제, 알고리즘 설계 기준과 투명성 등 민주주의와 지배구조로 전반에 파급력을 미친다. 규제의 목적은 단순히 경쟁 확보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공공성 확보와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보다 넓은 지평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접근권, 알고리즘 감시권, 사용자 선택권 보장 등 소비자 중심의 법제 설계가 요구된다. 또 통상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규범적 협력의 병행도 생각해 볼 만하다.
용어설명
- 1자사 우대, 멀티 호밍 제한, 데이터 결합
자사 우대는 플랫폼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타사보다 더 눈에 띄게 노출하거나 유리하게 배치하는 행위이며 멀티 호밍 제한은 이용자(또는 입점 업체)가 다른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거나 막는 것이다. 데이터 결합은 플랫폼이 다양한 서비스 간 사용자데이터를 결합해 타 기업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한 맞춤형 서비스나 광고를 제공하는 행위다. 이들 방법은 플랫폼이 방대한 클라우드 인프라와 데이터, 분석 능력을 활용해 시장 경쟁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 2온라인플랫폼경쟁촉진법
공정거래위원회가 2021년 추진했던 입법안으로,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사전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 공정거래법이 사후 규제 중심인 데 비해, 해당 법안은 플랫폼의 거래 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불공정 행위를 예방하는 사전 규제 방식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또 플랫폼 사업자가 입점 업체에 거래 조건을 명확히 고지하고, 계약서 발급을 의무화하는 등의 거래 공정성 제고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는데, 규제 대상이 모호하고 새로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산업계 반발과 자국 플랫폼 기업(구글·애플 등)에 차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미국 측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