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AI가 챗GPT-4를 공개한 2023년 3월 이후 생성 AI (Generative AI)1)는 글로벌 산업 지형까지 흔들었다. 이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기술 키워드는 바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다. 인간과 유사한 외형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한 휴머노이드는 단순 자동화 계기를 넘어 인간과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 경제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산업 현장의 인력난, 고령화, 디지털 전환 과제 속에서 고도화된 로봇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5년 기준 미국 테슬라(옵티머스), 중국 유비테크(워커 S1), 일본 도요타(CEU 6) 등 글로벌 기업이 휴머노이드 경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휴머노이드는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과 협력하는 ‘지능+신체’ 통합 솔루션이라는 점에서 기존 로봇 범주를 벗어난다. 휴머노이드에는 전자·기계·배터리·센서·소프트웨어가 종합되는 만큼, 국가 산업력 전반을 테스트하는 복합 솔루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는 “고성능 AI가 있더라도 이를 실체화하지 않으면 인간과 협업할 수 없다”라며 “생성 AI가 두뇌라면 휴머노이드는 그에 해당하는 몸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휴머노이드가 미래 산업의 축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경쟁력은 어떨까. 한 교수는 “우리(대한민국)는 반도체·배터리·액추에이터(구동장치) 등 휴머노이드의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이 높고, 산업 간 융합 속도도 빠르다”고 전했다. 과거 ‘기술 조립국’이었던 한국이 휴머노이드를 통해 ‘시스템 통합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실제 LG전자는 자율형 로봇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고, 두산로보틱스와 현대차도 자율 이동 로봇과 협동 로봇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경쟁은 시장 선점을 누가 얼마나 빠르게 하느냐에 달렸다. 한 교수는 “휴머노이드 경쟁은 결국 글로벌 운영체제(OS) 플랫폼 싸움”이라며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누가 더 많은 파트너와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은 AI와 로보틱스 통상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머노이드 시장에 대해 기계를 거래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모델과 데이터 플랫폼, 국가 브랜드를 함께 수출하는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윤리와 안전성 문제가 지적된다. 노동 대체 문제, 인간 유사성에 따른 사회적 수용성,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 등은 기술을 넘어선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숙제다. 한 교수는 “AI가 그랬듯, 휴머노이드 기술보다 ‘어떻게 사회에 맞출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했다.
생성 AI가 언어를 이해하는 컴퓨터라면, 휴머노이드는 행동하고 협력하는 기계다. 그리고 이는 AI의 다음 장이자, 새로운 기술 패권 경쟁의 서막이기도 하다. 이 기술의 주도권은 ‘제조 경쟁’에 달려있지 않고, 디지털 시대에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새롭게 제시하는 쪽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음은 한 교수와 일문일답.

생성 AI의 다음 기술의 장으로 휴머노이드가 주목받는다. 이런 트렌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휴머노이드는 AI와 별개 산업이 아닌, 연결된 산업이다. AI 서비스 방식이 지금은 모니터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면, 이런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실제 공간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수단으로 휴머노이드가 선택될 것이라는 얘기다. 인터넷의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스마트폰이라면, AI의 가치를 실현하는 폼팩터는 휴머노이드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생성 AI의 다음 단계가 피지컬 AI(Physica AI·자율주행차나 로봇 등 물리적 형태 가진 AI) 라고 얘기하면서 이를 실현할 도구로 휴머노이드를 언급하고 있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술 수준을 평가한다면.
“휴머노이드 회사마다 특색과 전략이 다르다. 테슬라는 자사 공장에서 실제 일하는 휴머노이드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공장 노동자의 행동을 훈련하고 있다. 피규어AI, 앱 트로닉,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대부분 미국 회사는 어떤 작업 공정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정부 통제 아래 여러 회사가 장기자랑 하듯 독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려고 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 경기나 복싱 경기, 텀블링하기, 만리장성 위 걷기 등 세간의 주목을 끌 이벤트와 퍼포먼스 중심으로 많은 연습을 하고 있다. 지향점이 달라 절대 비교는 어렵지만, 실제 업무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상당히 앞서가고, 중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열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다. 일단 휴머노이드를 전문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회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회 사는 에이로봇이 유일하다. AI 측면에서도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회사가 없다. 그러나 포기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장점이 한국에 많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산업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이제라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면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람과 가까운 ‘모빌리티+AI’ 플랫폼으로서 휴머노이드가 갖는 산업적 의미는.
“휴머노이드 본질은 다양한 목적에 쓸 수 있는 범용성이다. 하나의 로봇이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면, 하나의 일이 끝나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그 로봇이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루 종일 일해 투자대비이득(ROI)을 극대화한다는 게 기존의 특정 산업 로봇과 가장 큰 차이다. 수많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AI고, AI 발전이 휴머노이드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할 키워드다.”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막는 기술적 병목은 무엇인가.
“하드웨어 측면에서 배터리, AI 반도체, 액추에이터가 가장 큰 과제다. 현재 배터리 기술로는 휴머노이드를 길어야 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에너지밀도가 높은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더욱 다양한 일을 하려면 AI 반도체가 발전해야 한다. 빠른 연산과 저전력을 위해서라도 AI 반도체가 절실하다. 로봇 관절을 움직이는 기계를 액추에이터라고 하는데, 인간 움직임을 모방하려면 다양한 종류의 액추에이터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로봇 파운데이션 AI 모델2) 개발이 필요하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로봇 AI 모델을 개발하고, 엔비디아 역시 그루트라는 이름의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개했다.”

한국형 휴머노이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과제는.
“4월 10일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식이 있었다.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부품 생산 기업을 비롯해 완성 로봇 제작 업체, AI 개발 연구진과 AI 반도체 개발 기업까지 모두 모였다. K휴머노이드 연합3)을 통해 한국이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본 것이다. 앞으로 실제적 협업과 연대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기업의 합종연 횡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휴머노이드로 부가 가치를 일으킨 기업은 없다. 산업이 극초기 상태여서 누구라도 먼저 산업 현장서 휴머노이드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면 앞서 나갈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속도전이고, 빠르게 현장에 들어가는 일이다. 한국은 늦었지만, 재빨리 진입 할 경우 경쟁에서 겨뤄볼 만하다. 한국이 먼저 진입한다면, 한국이 휴머노이드 표준을 이끌어 갈 원동력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도록 기반을 조성해 줘야 한다. 현재 휴머노이드 제어는 로봇 파운데이션 AI 모델이 담당하고, 이 AI 모델의 학습을 위해 많은 양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하다. 양질의 GPU를 다수 확보한 데이터센터의 구축은 작은 기업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인프라 개념의 사업이다. 정부가 도로와 항만을 구축하는 사회간접자본(SOC) 개념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
정부도 휴머노이드 관련 전략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산업 전반에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접목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일손이 부족한 곳부터 휴머노이드를 투입해야 한다. 한국은 저출생, 고령화 현상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있어 산업이 활기를 잃고,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위험이 크다. 이럴 때 산업 현장에서 일손이 부족한 곳에 휴머노이드가 투입돼, 사람과 협업할 수 있다면, 지속적이고 견고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가 제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한국의 성장을 견인하는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국가별 휴머노이드 공개 규모

휴머노이드와 생성 AI의 결합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생성 AI를 업그레이드해 휴머노이드에 적용하는 것이 최근 언급되는 피지컬 AI다. AI는 휴머노이드를 이루는 큰 축이고, AI 발전이 진정한 범용성을 지닌 휴머노이드를 만들 것이다. AI는 물리적 작업을 넘어 인간과 감성을 교류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인간과 소통하면서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인간로봇상호작용(HRI·human robot interaction)4) 분야는 현재 로봇 연구에서 가장 큰 연구 영역이자,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현재 연구 중인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는.
“에이로봇(한재권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로 있음)은 범용 휴머노이드 ‘앨리스 4세대’를 개발하고, 현장에서 작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 HD현대미포조선, 포스코이앤씨 등 여러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휴머노이드를 투입할 단계적 전략을 수립 중이다. 로봇 파운데이션 AI 모델은 엔비디아의 그루트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전자 박람회인 ‘컴퓨텍스 2025’에서 에이로봇은 현장에 모인 스타트업과 기술 경합을 벌였고, 최고 기술상인 엔비디아 상을 받았다. 에이로봇은 모방 학습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이 시스템으로 현장 데이터를 모으고, 시뮬레이션 및 코스 모스 플랫폼으로 데이터를 합성해 증폭, AI 모델을 만들 예정이다. 여기서 만든 AI 모델을 엘리스에 적용해, 현장 파인 튜닝(사전 훈련 모델을 특정 작업에 맞게 추가 학습시키는 과정)으로 완성도를 높인다면 엘리스가 실제 일하는 장면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빠르면 올 연말에 로봇이 수행하기 쉬운 작업부터 단계별로 엘리스가 작업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향후 5~10년간 휴머노이드 시장은 어떤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나.
“2030년 이전에 산업 현장에서 휴머노이드가 활용되는 광경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처음에는 쉬운 작업으로 시작하겠지만, 빠르게 작업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본다. 2035년에는 어쩌면 가정에서도 휴머노이드가 활용되는 것을 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2040년이 되면 휴머노이드 산업은 자동차 산업보다 더 큰 규모를 형성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휴머노이드 산업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중심에 놓일 것이다. 이 휴머노이드 산업을 장악하는 국가는 세계 패권을 장악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고 휴머노이드를 어느 특정 국가가 독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 자동차나 스마트폰 등 규모가 큰 산업은 2, 3등도 산업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이 앞서 가는 건 분명하나 한국이 빠르게 따라붙는다면, 우리의 장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하고,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용어설명
- 1생성 AI(Generative AI)
텍스트, 이미지, 음성, 코드 등 새로운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AI 기술. 주어진 데이터를 학습한 후, 사람처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창의적인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2로봇 파운데이션 AI 모델
다양한 로봇 작업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된 범용 AI 모델. 기존에는 특정 작업에 맞게 AI를 개별 설계했다면,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영상, 센서 정보, 언어 등)를 기반으로 훈련돼 물체 인식, 경로 계획, 인간과 상호작용 등 여러 작업을 하나의 모델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적응하는 범용 로봇 지능(AGI)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 3K휴머노이드 연합
한국 내 휴머노이드 산업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산업계와 학계, 정부 기관이 협력한 협의체. 국내 기술력을 바탕으로 로봇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AI, 센서, 부품 등 휴머노이드의 전 주기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기술 개발, 표준화, 정책 제안,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한다. 한국형 휴머노이드 산업의 전략적 연대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 4인간로봇상호작용(HRI·human robot interaction)
사람과 로봇이 정보를 주고받고, 함께 작업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음성·제스처·표정 등을 통한 자연스러운 소통, 로봇의 자율성 및 사회적 반응성, 신뢰와 감정의 형성, 협업의 효율성 등까지 포함한다. 최근 AI, 감성 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 다양한 기술을 HRI와 융합해 로봇이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