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전부터 인간을 닮은 기계인형을 꿈꿔 왔지만,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양팔을 사용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직립 자세는 능동적으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자세이며, 다리를 사용해 온몸의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힘을 낼 수 있는 구동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관을 딛고 독자적으로 이족 보행을 구현한 전신형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반으로, 그 후 2000년대 초반까지 휴머노이드 개발은 일본에 의해 주도돼 왔다. 1973년 일본 와세다 대에서 개발한 ‘와봇(WABOT) 시리즈’는 인간과 자연어로 대화하고, 휴모노이드 핸드를 사용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선보였다. 일본 혼다는 1980년대부터 휴머노이드 개발을 시작해 2000년 ‘아시모’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아시모는 부드러운 동적 보행을 바탕으로 계단 오르내리기, 음성 인식 및 대화, 달리기까지 대중 앞에서 시연해, 현실에서 동작가능한 휴머노이드 기술력을 널리 알리게 됐다.
일본의 산업기술총연구소(AIST)는 2003년부터 상용 휴머노이드인 ‘HRP-2’, 최초의 여성형 휴머노이드인 ‘HRP-4C’, 중량 작업이 가능한 ‘HRP-5P’ 등 다수의 상용 휴머노이드를 개발해 왔고, 도요타도 자사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인 ‘THR3’을 시연한 바 있다.
유압에서 전동으로…DRC 이후 부흥기 맞은 휴머노이드
이렇듯 일본에 의해 주도되던 휴머노이드 개발은 2010년 전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1980년대부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레드 랩(Leg Lab)에서 ‘외다리로 점프하며 균형을 잡는’ 로봇 연구를 시작한 마크 레이버트 교수는 본인 연구를 바탕으로 상용 족형 로봇을 만드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1992년 설립했고, 강력한 유압 액추에이터(actuator·작동기)와 진보된 제어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기존 로봇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험지를 주파할 수 있는 사족 보행 로봇인 ‘빅 독(Big Dog)’을 2005년 공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 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유압 액추에이터를 사용해 험지를 동적 보행할 수 있는 최초의 전신형 휴머노이드인 ‘펫맨(PETMAN)’을 2009년에 공개하고, 펫맨 발전형으로 다양한 양손 작업이 가능한 로봇인 ‘아틀라스(Atlas)’를 2013년에 공개하게 된다.
2013~2015년 열린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재난 구호 챌린지 대회, 이른바 ‘DRC(DARPA Robotics Challenge)’는 전 세계 휴머노이드가 성능을 겨루는 각축장이 됐다. 자체 제작 로봇을 사용하는 ‘트랙 A’ 리그에는 일본 HRP와 샤프트(SCHAFT), 한국 휴보와 똘망, 이탈리아 IIT의 워크맨(WALK-MAN),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로보시미안 등 다양한 로봇이 참가했다.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 성능을 겨루는 ‘트랙 B’ 리그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아틀라스 휴머노이드를 제공하고, 각 팀은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경쟁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보행 로봇 휴보가 모든 임무를 완성하고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이 대회는 당시 휴머노이드 기술력의 큰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참가한 로봇은 인간보다 훨씬 천천히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환경에서 보행 도중 다수의 로봇이 넘어져 파손됐기 때문이다. DRC 대회 이후 큰 한계에 부딪혔던 휴머노이드는 구동계 기술과 인공지능(AI) 발달로 인해 2020년 이후로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된다. MIT의 치타 로봇으로부터 시작된 ‘저(低)기어비 고(高)토크 전기’ 구동계 보급은 기존의 느리고 역구동이 불가능했던 관절을 빠르고 외력에 순응하며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줬고, 로봇의 기계적 복잡도를 크게 낮추고 구동계 투명성을 확보해 시뮬레이션과 실제 로봇의 차이를 줄일 수 있게 해 줬다.
그 결과 평지 위주 보행만 가능했던 기존 보행 알고리즘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형의 시뮬레이션을 사용한 강화 학습을 적용해 로봇의 보행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로봇 가격이 하락하고 안정된 보행 성능이 확보된 결과, 현재 휴머노이드를 공장, 가정 등 다양한 실제 용도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휴머노이드 패권 노리는 중국, 하드웨어와 가격으로 승부
현재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의 최대 강자는 자타공인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2000년 중국 국방기술대에서 최초의 휴머노이드를 개발한 이래 다년간의 드론 및 전기차 연구, 개발, 양산을 통해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센서, 액추에이터, 배터리 등 모든 구성 요소를 낮은 가격으로 대량생산할 능력을 갖췄다. 이미 2019년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에서 중국 로봇 기술 기업 유비테크 로보틱스는 자율 휴머노이드를 사용해 다양한 가사 서비스를 하는 데모를 선보인 바 있다. 2020년 이후에는 로봇 기업 유니트리에서 다양한 사족 보행 로봇을 성공적으로 개발, 상품화해 전 세계에 보급한 이후,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2023~2024년 매우 저렴한 가격의 상용 휴머노이드 제품인 ‘H1’과 ‘G1’을 시장에 출시했다. 푸리에 인텔리전스, 엔진 AI 등 다수의 다른 회사도 경쟁적으로 상용 휴머노이드를 개발·출시하고 우수한 운동 능력을 뽐내고 있다. 이들 로봇은 우수한 하드웨어 성능에 더불어 강화 학습을 사용한 최신 보행 및 동작 제어 기술력이 결합해 있으며, 무엇보다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생산돼 향후 상용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큰 입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에서 접수된 휴먼로이드 특허 출원 건수는 퇴근 5년간 5688건으로 미국(1483건)과 일본(1159건)을 크게 웃돌았다.
미국, 공장용 휴머노이드 경쟁 본격화
전통적인 로봇 강국인 미국의 경우, 휴머노이드를 사용한 공장 작업을 주목표로, 휴머노이드를 개발 중이다. 유압 로봇을 선도하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시대 흐름에 따라 전동 구동계로 변경된 신형 아틀라스를 2024년 출시했고, 회사의 특장점이던 다이내믹한 운동 능력에 추가해 실제 공장 환경에서 자율 작업을 하는 능력을 시연하고 있다. 또한 미시간대에서 2015년 스핀오프(spinoff·분사)한 스타트업인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는 우수한 보행 능력을 갖춘 경량 이족 로봇 캐시(Cassie)와 양팔을 갖춰 작업이 가능한 디짓(Digit)을 개발해 물류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물체를 배송하는 능력을 시연했고, 2022년 설립된 피규어 AI(Figure AI)의 휴머노이드 ‘피규어 01(Figure 01)’ ‘피규어 02’는 AI를 사용해 지능적으로 비전·언어·행동을 통합해 인간 명령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을 선보였고, BMW와 협업해 자동차 공장에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미국 휴머노이드의 필두는 단연 테슬라라고 할 수 있다. 테슬라는 로봇 개발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휴머노이드 개발을 발표한 이래 대규모 인력과 자금력, 자사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노하우를 투입해 매우 빠른 속도로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개발했다. 2022년 최초로 보행이 가능한 버전이 공개된 이후 2024년 대규모 시연을 시행했고, 2025년 현재는 강화 학습을 사용한 험지 보행, 동적인 댄싱 및 인간 작업 영상으로부터 학습된 지능적 작업 수행 능력을 보여줬다. 이동, 지능 및 조작 등 모든 분야에서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는 옵티머스를 저가로 대량생산해 자사의 공장 및 기타 상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韓, 한국형 휴머노이드 개발 힘써야
한국은 휴머노이드 선도국 중 하나로, 2004년 휴보를 만들고 2015년 DRC 대회에서 우승한 저력이 있다. 또한 한국은 2024년 기준으로 산업 현장에 1만 명당 1012대의 로봇이 보급돼 있어, 세계에서 가장 로봇 밀도가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저출산으로 향후 지속적인 노동력 부족이 예상돼 휴머노이드 대량 공급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현재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은 기술 성숙과 상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과도기다. 한국은 하드웨어 경쟁력과 AI 소프트웨어 경쟁력 양자를 발전시켜, 향후 사회 및 산업계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휴머노이드 수요에 부응해야 할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이나 테슬라 등에서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는 휴머노이드 하드웨어에 탑재할 한국형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 또 한국의 가정, 의료 및 산업 환경에 적절한 행동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테스트베드를건설해 각 환경에서 행동 양식을 학습시켜 실제 임무 수행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보유한 액추에이터, 감속기, 배터리 등 다양한 원천 기술이 내재된 한국형 휴머노이드 하드웨어를 개발 및 양산해 국내외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