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20일(현지시각) 미국 상원에서 ‘미국 스테이블 코인1)을 위한 국가 혁신 유도·확립법(지니어스액트·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 coins Act)’이 통과됐다. 지니어스액트(GENIUS Act)2)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명확한 규제 체계를 마련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디지털 자산 분야의 혁신 촉진에 목적이 있다. 또 외국 코인 발행자에 대한 규제로, 미국 내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추구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인공지능(AI)과 암호화폐 정책을 총괄, ‘암호화폐의 차르’라 불리는 데이비드 삭스(David Oliver Sacks)는 “이 법이야 말로 미국 국채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주류 금융에 진입하고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전통적인 국제무역이 진화하면서 인터넷으로 시작된 전자상거래는 디지털 경제로 이어졌고, 이제는 여기에 AI나 블록체인 같은 첨단 기술이 가세하는 추세다. 이 가운데 스테이블 코인에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공하는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도래는 디지털 무역 환경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로 부상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이런 디지털 전환을 가속한 계기를 제공했다.
팬데믹 당시 물리적 문서에 의존하던 무역구조는 글로벌 봉쇄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블록체인과 전자 문서 기반 거래 시스템이 필수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무역센터(ITC)가 공동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에서는 블록체인을 ‘변경이 어렵고 탈중앙화된 거래 기록의 디지털 기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이 단순한 데이터 저장 기술을 넘어서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3)의 일환으로, 다수 참여자가 동시에 거래 내역을 공유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블록체인은 무역·금융·물류·인증 등 국제 통상 전 영역에서 구조적 전환을 견인하고 있다. 최근 들어 AI가 국제 통상을 더욱 확대하고,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획기적인 도구가 된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 역시 국제무역을 혁신하기 위한 효율적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무역 분야에서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가장 획기적인 가능성은 종이 없는(paperless) 무역 실현이다. 현재까지도 대부분 국제 거래는 수십 개 이상의 문서가 동원되는 복잡한 절차가 수반되는데, 이 과정에서 각종 오류와 위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대표적 사례로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MAERSK)와 정보기술(IT) 기업 IBM은 국제무역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합작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이들은 글로벌 해운 및 공급망에 특화된 디지털 플랫폼을 공동 개발해 실시간 데이터 공유와 문서 자동화, 스마트 계약을 통한 무역 절차 간소화를 목표로 하고, 운송 정보 가시성을 높여 통관 지연과 행정 비용을 크게 줄이고자 했다.
비록 현재는 중단됐지만, 머스크와 IBM의 시도는 국제무역 구조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블록체인의 상용화 사례로 주목받았다. 무역금융 역시 블록체인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다. 이미 공급망 금융의 디지털화를 통해 실시간 정보 공유, 리스크 최소화, 지속 가능한 생산 감시 등 다각적인 혁신이 실현되고 있다. 세관 절차 또한 블록체인의 잠재적 수혜 분야다. 관세 당국 간 상호 인정을 위한 분산원장기술 기반 시스템을 통해 문서 위조 방지, 통관 효율성 제고 등의 성과를 도모할 수 있다. 지식재산권 보호도 블록체인의 유망한 적용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위조품 유통은 국제 무역 신뢰를 저해하는 대표적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블록체인은 제품 진위를 추적하고 원산지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특히 블록체인을 통해 무역 비용 절감을 도모할 수 있는데, 금융⋅물류⋅인증⋅결제 관련 절차의 자동화와 투명성 제고로 비용을 15~30% 절감하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비용 효율은 중소기업(MSMEs⋅micro, small and medium enterprises)과 개발도상국 소규모 생산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무역 참여 문턱을 낮추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실현하려면 디지털 역량과 인터넷 접근성이 확보돼야 한다. 기술 격차의 해소가 핵심 과제인 것이다. 특히 개도국은 블록체인 같은 새 기회를 활용하려고 해도 IT 인프라나 인력⋅자금 등이 부족하다.
나아가 블록체인 적용 확대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확장성, 상호 운용성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법적 측면에서는 블록체인상 거래 기록의 법적 효력, 정보 보호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무역 규범이 미비한 개발도상국이나 법적 기반이 불명확한 국가에서는 블록체인 도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는 기술 표준화와 규제 프레임 워크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산하 기술위원회인 ‘ISO/TC 307 전문위원회’는 블록체인과 분산원장기술 관련 국제 표준을 마련하있다. 한국은 해당 절차에 적극 참여 중인데 그 결과 ‘ISO 23257 블록체인 및 DLT-참조 구조’ 국제 표준이 제정됐다. 블록체인은 국제무역을 더 ‘스마트’하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나 그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한 규범⋅표준화’가 필요하고, 여기에 더해 ‘스마트한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법적 측면에서도 해결이 필요한 쟁점이 많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거래의 법적 효력이 국가마다 인정되지 않거나 불명확할 수 있고, 나라별로 법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국제적 상호 인정 등 체계가 따라줘야 한다. 나아가 블록체인상 국제 상거래의 법적 효력 인정, 관련 법률의 적용 범위 및 책임 문제, 데이터 접근 및 활용 규제 등도 논의된다. 또한 유럽연합(EU)의 일반정보보호 규정(GDPR) 등에서는 데이터의 삭제 권리가 명시돼, 잊힐 권리가 인정되고 있으나, 블록체인의 불변성이라는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데이터 삭제가 어렵다는 법적 충돌 문제가 제기됐다. 일부 국가는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해 법적 기반을 마련해 뒀지만, 국제적으로 통일된 규범은 아직 없다.
따라서 블록체인을 국제무역에 활발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정부⋅기업⋅학계⋅시민사회·국제기구 등)의 협력과 논의가 필요하고, 인터넷 지배구조 모델과 유사한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TO 같은 국제기구도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정책적⋅실무적 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기술의 제도적 수용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용어설명
- 1스테이블 코인
말 그대로 가치가 안정적인 암호화폐를 뜻한다. 주로 ‘1코인 = 1달러’처럼 법정화폐에 연동돼 비트코인과는 달리 가격이 크게 출렁이지 않아, 안정적인 거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 2지니어스액트 (GENIUS Act)
미국이 달러 연동 암호화폐 (스테이블 코인)를 안전하고 투명하게 발행·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미국 연방 차원의 기준과 규제.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의 급성장과 글로벌 디지털 통화 경쟁 속에서 금융 안정과 달러 패권을 동시에 지키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법은 은행과 비은행 모두에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허용하되, 100% 준비금과 연방 차원의 면허·감독 체계를 의무화해 안정성을 추구한다.
- 3분산원장기술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중앙 서버 없이 여러 참여자가 동일한 거래 기록을 공동으로 보관하고 검증하며 관리하는 디지털 데이터 저장 방식. 기존에는 거래 내역이 중앙 기관(은행·정부 등)에 의해 관리됐지만, 분산원장기술은 이 역할을 여러 컴퓨터(노드)가 분산돼 수행해 투명성과 보안성, 무결성을 높인다. 가장 잘 알려진 형태가 블록체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