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주한 미군 4500여 명을 한국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가 5월 22일(현지시각) 나왔다.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 주한 미군 병력 2만8500명 중 16%를 미국령 괌 등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WSJ의 보도대로라면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만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실행 가능성이 충분하다. 트럼프 정부는 1기 때도 주한 미군 철수를 검토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미 의회와 행정부 내 반대 의견이 많아 실행하지 못했다.
‘미국의 본심’은 ‘트럼프 2.0 시대에 글로벌 각자도생 시나리오’라는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변화한 미국과 미국 정책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담았다. 저자는 미국에서 학사와 석사, 중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 조지 H.W. 부시 미·중 관계위원회 선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중 관계 전문가다. 그는 미·중 갈등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취약한 한국에 현재 상황은 양쪽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손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한국이 중립을 선택하거나 미·중 갈등을 유리하게 활용할 여지가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지난 대선 결과를 토대로 미국을 철저하게 분석해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배경에 대해 1950년대 미국 영화에 주로 등장하던 ‘중산층의 향수’와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동시에 자극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1950년대는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경제적인 번영을 본격적으로 누린 시기다.
또 흑인 등 유색인의 민권운동이 본격화하기 전이다. 즉 시민운동과 복지국가 이전의 미국에 대한 향수적 인종주의(Nostalgic Racism)1)가 드러났다고 분석한다. 향수적 인종주의는 특정 인종(백인)이 주류였던 과거를 이상화하는 만큼 현재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부정적으로 본다. 동시에 이민자나 소수 인종에게 배타적이다. 트럼프 지지 기반은 압도적으로 백인 비율이 높다. 백인 남성 59%, 백인 여성 53%가 지지했다. 여기에 강력한 마초 이미지로 전통적인 성 역할을 중시하는 히스패닉 남성 표도 공략했다. 반대로 불법 이민자에게 관대했던 조 바이든 정부 정책은 중산층과 서민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원인이 됐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저자와 인터뷰에서 “현직에 대한 반대 정서, 인플레이션, 이민 문제가 트럼프가 지지받은 이유”라고 했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미·중 갈등이 민간 영역으로 확산하는 사례도 열거했다. 특히 미국의 구직 서류에서 인종 범주의 예를 종전 ‘아시안’에서 중국계, 인도계, 일본계 등 출신 국가를 명시하자는 제안까지 나온다고 소개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80% 이상이 중국에 대해 비호감을 표시했다는 내용도 있다.
저자는 미국 내 반(反)중 정서가 중장기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지속할 것이며, 이는 향후 미·중 관계 향방을 결정짓는 데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사실을 한국은 주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이제는 트럼프가 바로 미국”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이익 확대를 위한 ‘팽창주의’의 민낯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 우방국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고, 북한도 신경 써야 하는 한국에는 커다란 도전이다.
윌리엄 허드 전 CIA 요원 및 연방 하원 의원은 저자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미국이 독립한 1776년 이후로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영구 집권을 시도하면서 대만 통일 의지를 표명하고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어 군용 활주로를 건설하는 등 영토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미국은 경제·기술·군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맹국에 중국 견제라는 미국 전략 목표에 부합하는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칩4 동맹(CHIP 4 Alliance)2) 같은 시도다. 한국·일본·대만 등 참여국은 중국과 관계 악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인터뷰한 나이 교수는 “두 개의 대국 사이에 위치한 중견국은 미국처럼 먼 거리에 있는 강대국의 영향을 끌어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중견국은 이웃 강대국의 영향력에 쉽게 포획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저자는 세 가지 중심축으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무역정책과 관세를 통해 구체화될 경제적 영향력 강화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지다. 세 번째는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한 중동 동맹 관계 전면적 재편이다.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는 동맹 관계를 단순한 비용과 이익 문제로 환원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미국 패권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바이든 정부에 이어 지속될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민주당·공화당을 떠나 미국의 기본적인 국제 관계와 통상 원칙의 중심축이 됐다. 저자는 트럼프 2기의 외교정책이 궁금할 때는 그것이 중국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의 미·중 관계는 냉전 시대의 미·소 경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기감이 크다고 진단한다. 대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무력 충돌을 고려한 ‘열전’ 가능성까지 포함하고 있어, 미·중 관계의 위기감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도 한국 정부와 사회가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을 필요로 하기에 중간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처세론이나 ‘미·중 중립론’ 같은 비현실적인 담론이 그래서 나온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남중국해 문제(2015년), 사드 배치 논란(2016년), 화웨이 제재(2019년), 주요 11개국(G11) 참여문제(2020년)와 관련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인 곤경에 빠진 경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현재 한국이 조선 말기보다 더 영리한 전략적 사고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정책 등 외교가 180도 달라지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정책 연속성과 일관성 결여는 물론, 대외 협상력이 떨어지는 요인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할수록 한국은 앞으로 더 많은 선택지 앞에서 압박받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패권 전략에 국가 ‘줄 세우기 정렬’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음을 환기시켰다. 100년 전 조선 말기 한국의 지식인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사이의 역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국가 주권을 상실했다.
미·중 패권 전쟁은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최고 지도자의 부주의한 외교적 실수가 되풀이되고 있으며, 그 대가를 국민과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국제정치의 기본 원리는 국력이고 힘이다. 저자는 미·중 패권 전쟁 사이에 끼인 한국은 외교 안보 역량 강화와 대외 정책의 일관성만이 생존 전략임을 강조했다.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 같은 낭만적인 시각에 기반한 모호한 전략은 한국을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했다.
용어설명
- 1향수적 인종주의(Nostalgic Racism)
미국인은 1950~60년대 초반을 미국 역사에서 황금기(Golden Age)라 부른다. 이 시기의 향수는 주로 중산층 이상 백인의 시각에 기반한 것이다. 현실을 미화하거나 인종차별·성차별적 질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유색인종과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만연했기 때문이다.
- 2칩4 동맹 (CHIP 4 Alliance)
2022년 초 미국 주도로 추진된 미국·한국·일본·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 협의체다. 중국에 첨단 반도체 기술이전을 제한하고, 동맹국과 협력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미국과 전략적 협력과 중국과 경제 현실 사이에서 대중국 압박이 한계라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