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상호 관세 추진과 한국의 대응 방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미국의 통상정책은 또 한 번 강경한 보호무역주의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다. 특히 4월 2일(현지시각)에 발표된 ‘상호 관세 행정명령’은 미국의 교역 상대국이 자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율에 상응하거나 이를 초과하는 수준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단순한 전면 관세 인상이 아닌, 특정 국가 또는 품목을 대상으로 표적화된 맞춤형 관세 전략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번 상호관세 조치에 앞서 국가 안보와 공중 보건 이슈를 결부시켜 관세 부과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시도도 있었다. 예컨대 트럼프는 불법 펜타닐 및 이민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캐나다 및 멕시코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국경 및 공중 보건 비상사태와 결부시켰다. 다만 미국의 대(對)멕시코 및 대캐나다 수입에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양허 대상 품목의 비중이 대략 60%를 차지할 만큼 역내 공급망이 긴밀하게 얽혀 있어 이번 상호 관세 조치에서 USMCA 양허 대상 품목은 배제됐다. 또한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통해 이미 25%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철강 및 알루미늄, 자동차와 향후 제232조 관세가 부과될 예정인 자동차 부품, 구리, 목재, 반도체, 의약품도 상호 관세 부과 대상에서는 빠졌다. 이들 품목을 제외하고 미국 교역국 상품에 일괄적으로 10%포인트의 보편 관세가 부과되고 있으며, 향후 특정 교역국에 의한 보복 조치가 발생할 경우 추가적인 세율 인상이나 새로운 품목 지정이 가능하다는 점도 상호 관세 행정명령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 통상정책의 급진적인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미국과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한국은 비교적 안정적인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여전히 유효하며, 협정 내 명시된 무관세 조항과 분쟁 해결 절차는 강한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미 FTA는 대부분 산업재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거나 낮은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디지털 무역, 지재권, 투자 보호 등의 규범 체계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미국의 일방적인 고율 관세 조치가 실제로 한국 제품에 적용되기 어렵게 하는 방패막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철강의 경우, 한국은 이미 2018년 미국의 제232조 조치에 대해 수출 쿼터를 조건으로 고율 관세를 회피한 선례가 있어 예외 적용을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논거가 있다. 또한 한국 기업은 미국 내 투자 확대와 현지 생산 기지 구축을 통해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텍사스 반도체 공장, 현대차 조지아 전기차 공장, SK온과 LG에너지 솔루션의 배터리 생산 시설은 모두 미국 내 고용 창출과 제조업 부활 전략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정부가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조처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기업이 취한 현지화 전략은 매우 유효한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호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지금이야말로 더 정교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임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미 FTA의 법적 지위를 재확인하고, 협정 내 원산지 기준과 유보 목록 등을 정밀하게 검토함으로써 관세 예외 적용을 위한 근거를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이 관세 부과를 통해 실질적으로 압박하고자 하는 산업 또는 제품군에 대한 민감도 분석을 강화하고, 정부 간 협의 채널을 통한 사전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미국 내 제조업 중심지에 대한 투자 확대와 공급망 안정화 노력이 단기적 관세 회피 이상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고 양국 경제 간 상호 보완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상호 관세정책은 단지 통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일정, 특히 내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통해 핵심 지지층의 결집을 꾀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통상정책은 대내 정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1기 정부 시기와 지금의 미국 경제 현황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1기 정부 시기였던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미국은 연평균 2.7%의 양호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무역확장법 제232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무역법 제301조 대중국관세 부과에도 버텨 낼 여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육박하는 민간 소비 지출 증가세는 꺾이고 있으며, 경기 선행 지표인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 지수 역시 50 이하로 떨어지며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를 위시한 공화당 우위의 양원 의회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경기 침체 상황의 반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의 외교적 대응 역시 단기적 관세 이슈 해결을 넘어 장기적인 정치·경제 환경 변화까지 고려한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 이외 대체 시장 발굴 및 다변화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인도, 아세안, 유럽 등과 FTA 활용도 제고, 새로운 디지털 및 친환경 공급망 협력구상은 트럼프발 통상정책 추진 리스크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다. 또한 국가를 가리지 않는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는 대상국이 다자간 연대를 통한 미국 정부의 일방적 통상정책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은 예정된 미국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는 작업과 함께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 입장국(like-minded countries)과 협력을 통해 미국 연방정부의 통상 조치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요컨대, 미국 정부의 상호 관세는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지만, 한국은 한미 FTA라는 제도적 기반과 기업의 대미 현지화 전략 그리고 외교적 협상 역량을 통해 이러한 도전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관리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통상 환경 속에서 이제는 제도, 투자, 외교를 아우르는 통합적 대응 전략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지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