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15일(현지시각)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칩 업체가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저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대중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자국 AI 기업인 엔비디아가 이 조치로 회계연도 2025년 1분기(2월~4월)에만 55억달러, 연간 100억달러 이상의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 정부가 그만큼 중국의 AI 발전에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발 AI 스타트업 ‘딥시크’ 쇼크 후 전 세계의 국가 간, 기업 간 AI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딥시크는 AI 모델 개발 훈련에 560만달러만을 썼다고 밝혔다.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1억달러 정도를 쓴 것과 비교해 20분의 1이다. 의심의 눈길이 많았지만, 딥시크는 이 기술을 공개했다. ‘AI 패권 전쟁’은 AI 패권 경쟁에서 당장은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부각되고 있지만 향후 기업 간 전쟁이 더 치열해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AI가 확산한 후 산업과 미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의 통찰 중에는 귀를 기울여 볼 만한 내용이 많다. 첫째로 딥시크가 저렴한 비용과 오픈소스로 기술을 공개한 것을 AI 생태계 전반을 바꿀 변곡점으로 본 것이다. 이미 개발한 기술을 공유해 다음 개발자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AI 혁신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됐다는 의미다. 이는 AI 개발을 포기했던 기업과 나라가 공개된 기술을 바탕으로 AI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빅테크 위주의 AI 생태계가 전개되는 미국보다 스타트업과 오픈소스 기반 생태계가 전개되는 중국이 한국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기업도 기술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가며 실리를 취하자는 것이다.
둘째로 ‘기득권 존(Zone)’이 생기기 전에 국내 AI 모델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AI 가이드라인이나 윤리 등 AI 영역에서 선도국은 자국에 유리한 기득권 존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제한 없는 개발 경쟁이 계속된 후 일정 시점에 미국과 중국 등이 국제 협약을 주도해 만들 경우 뒤처진 나라는 AI 개발에서 족쇄를 찰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이미 각국의 GPU 보유량까지 통제하는 ‘AI 확산 규정’을 준비 중이다. 챗GPT가 처음 등장한 2022년 말까지만 해도 한국의 AI 역량은 중국과 격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2년여 만에 격차가 크게 늘어나면서 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프랑스, 일본 등 두 번째 그룹 정도로 분류된다. 한국의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아직 소버린 AI(Sovereign AI·특정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AI)를 구축하지 못했다. 저자는 딥시크 사례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된 국내 스타트업에서 한국형 AI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기대한다.

셋째로 저자는 진짜 AI 패권 전쟁은 국가 간 경쟁보다 기업 간 경쟁, 즉 합종연횡이 공존하는 단계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념보다는 이익에 움직일 가능성이 더 큰 AI 패권 전쟁을 ‘기업 vs 기업’ ‘국가 vs 기업’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 진영이 가장 앞서 있다. 구글은 자본과 데이터가 많아 언제든 패권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GPU를 판매하는 엔비디아도 피지컬 AI(Physica AI)1)를 통해 AI 비즈니스로 수직 계열화할 능력이 있다. xAI라는 AI 회사를 가진 일론 머스크는 AI를 적용할 소셜미디어(SNS) X와 피지컬 AI를 적용할 테슬라를 갖고 있다. 독자 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미래 AI인 ‘인공 일반 지능(AGI)’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한다. AI가 이미지 인식 기능을 갖추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AGI로 나아가게 된다. 오픈AI가 2025년 2월 출시한 AI 에이전트2)인 딥리서치는 AGI로 나가는 단계로 평가된다. AI는 엄청난 데이터양을 처리할 수 있는 속도를 갖고 있다. 인간 수준의 추론력까지 갖춘 AGI는 전 지구를 뒤흔들 혁명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그러면서도 의식은 없고 지능만 있는 AI는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누가 소유하고 어떤 정치적 의도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핵보다도 더 악용될 소지가 있다. ‘특이점이 온다’를 쓴 레이 커즈와일이나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일론 머스크도 “AGI로 인류가 초인으로 진화하든 멸망하든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저자는 AGI가 상용화하면 직업의 대전환과 빅블러 현상으로 현대판 신분제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존 직업 상당 부분이 AGI로 대체될 것이고 직업 간 경계도 흐려질 수 있다. 법조인,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 기득권의 핵심 요소인 정보가 AGI에 의해 늘어나면 전문직은 해체될 수 있다. 이들의 업무는 비용이 높아 AGI의 대체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감정적 공간이 필요하면서도 더 낮은 비용이 필요 없는 베이비시터나 강아지 산책 같은 일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저자는 AI가 변화시킬 산업별 미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이미 의료 장비 고도화와 의료 데이터를 통한 질병 예방 및 진단, 맞춤형 치료, 초미세 수술, 신약 개발 등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다. 교육 분야는 AI가 많은 것을 변화시킬 분야 중 하나다. 우리 정부도 초·중·고등학교에 AI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획일화가 특징이었던 교육 현장에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AI가 단독으로 존재할 때보다 인간과 공존해 인간 의지에 AI 능력이 더해질 때가 가장 공포스럽다고 말한다. 이기적이고 사악한 의지를 가진 개인이 AI를 이용해 나쁜 행위를 할 때 문제가 훨씬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AI 문제는 인간성, 인간 정신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AI가 인간의 사회 시스템에 불러올 ‘경계 문제’를 거론한다. 일의 경계, 국가의 경계, 인간의 경계 문제다.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면 결국 기계세를 걷고 사회는 기본 소득 시스템이 된다. 이때 인간은 노동 욕구를 충족할 수 없으니 결국 ‘어떻게 노는 사람이냐’가 그 사람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성과 AI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화두로 떠오르기 전에 인간과 AI가 결합하는 신인류인 증강 인간3)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AI의 발전 속도와 패권을 가지려는 인간 욕망의 질주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 세계가 합의하는 속도보다 AI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인용하면서 “인류가 AI로 영생을 얻게 되는 미래가 머지않은 만큼, AI 세계를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서 기술의 발달 속도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용어설명
- 1피지컬 AI
물리적 환경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작업을 수행하는 AI.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된 형태로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등이 해당한다.
- 2AI 에이전트
특정 목표를 지정해주면 사용자와 환경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지능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결정하는 AI 시스템
- 3 증강 인간
인간의 신체적, 지능적, 감각적 능력을 로보틱스 등 기술을 통해 향상시키는 것. AI, 증강현실(AR), 생체공학, 웨어러블, 신경 인터페이스 기술 등과 관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