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의 디지털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서비스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이전 투자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중략)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 중앙에 있는 태국은 역내 2위 경제 대국이면서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6억8400만 인구의 아세안 시장을 염두에 두고 태국에 진출하는 건 한국 기업에 좋은 전략임이 틀림없다.”
태국투자청(BOI) 서울사무소의 끄릿싸나 쌔헹 소장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산업 발전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BOI는 한국의 스마트 가전과 반도체, 차세대 자동차 산업을 태국 투자 유치 핵심 분야로 보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의 1, 2위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3위인 아세안의 수출 시장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쌔헹 소장을 서울 중구에 있는 BOI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BOI는 1966년 설립한 태국 총리실 산하 기관이다. 뉴욕, 베이징, 파리, 도쿄, 프랑크푸르트, 시드니, 타이베이 등에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쌔헹 소장은 킹 몽쿳 공과대 랏끄라방(KMITL)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하고 태국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쭐라롱꼰대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BOI 소속으로 석유화학, 의료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투자 유치 업무를 담당했고, 2024년 3월 BOI 서울사무소 소장으로 부임했다. 다음은 쌔헹 소장과 일문일답.

BOI의 역할 소개 부탁한다.
“지난 50년 동안 태국 정부에서 태국 투자를 촉진하는 메인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조세 및 비조세 인센티브를 제공해 태국으로 투자를 유도한다. 투자 관련 문제와 장애물을 해결하고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태국의 다른 정부 기관과 폭넓게 협력한다. 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를 연결 (매칭)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태국이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게 우리의 목표다.”
중진국 함정은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으로 진입한 뒤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 경제 발전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했다. 세계은행은 1960년대 중진국으로 평가되던 114개국 가운데 2008년까지 중진국 함정을 성공적으로 탈출한 나라는 한국과 아일랜드·대만·싱가포르 등 13개국뿐이라고 분석했다. 경제개발 초기의 성장을 지속해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서울사무소의 경우는 어떤가.
“BOI 서울사무소는 2009년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에 투자하는 태국 투자자와 태국에 투자하는 한국투자자를 양방향으로 돕는다. 여러 한국 기업이 태국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연락해 온다. 어느 지역에 진출해야 할지, 회사 설립 방법은 어떻게 되는지. 등록은 어떻게 해야 하며, 인건비는 어떤지 등이다. 그런 질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새로운 한국 기업이 태국에 오면 기존 한국 기업과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BOI를 통한 태국 기업의 한국 진출 사례가 있으면 소개 부탁한다.
“태국 투자 기업 비그림(B.Grimm)그룹의 신재생 에너지 전문 계열사인 비그림파워가 710㎿ 규모의 전라남도 영광 해상 풍력발전 프로젝트에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그림그룹은 2019년 2월 한국 법인을 세운데 이어 지난해 비그림파워코리아의 자본금을 2000억원 증자하며 한국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비그림그룹은 한국에 5억달러를 투자해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고, 제조공장에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이 태국과 ‘윈윈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다양한 산업 분야의 눈부신 발전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BOI는 한국의 스마트 가전과 반도체, 차세대 자동차 산업을 태국 투자 유치 핵심 분야로 보고 있다. 태국의 국가 발전 계획과도 방향이 잘 맞는다. 삼성과 LG, 현대차 등 한국의 주요 기업은 이미 태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중국 경쟁사에 비해 건전한 기술 협력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활약을 기대한다.”
태국에서 전기차(BEV)와 디지털 산업 외에 또 어떤 분야의 투자가 유망하다고 보나.
“태국은 아시아의 메디컬 허브다. 의료 인력 수준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2018년 기준 국제의료기관 평가위원회(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병원이 60개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았다. 태국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메디컬 투어리즘과 태국에 사는 외국인을 위한 의료 서비스 수요도 충분하다. 로봇과 정보통신기술 (ICT) 등 한국의 앞선 첨단 기술을 접목해 시니어홈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JCI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 품질과 환자 안전에 대한 표준을 제시하는 비영리단체다. JCI 인증 프로그램은 매우 엄격하게 운용되며, 최고 수준의 병원과 의료 기관만이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공신력 있는 의료 기관 인증제도로 감염 관리, 의료의 질, 환자 진료, 국제 환자 안전 목표, 리스크 예방, 감염관리 추적 조사 시스템 등 총 298개 부문 1271개 항목을 국제 기준에 따라 심사·평가해 검증한다.
한국 기업이 아세안 시장 진출 교두보로 태국에 우선 진출하는 건 좋은 전략일까.
“아세안 지역의 중앙에 있는 태국은 역내 2위 경제 대국이면서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6억8400만 인구의 아세안 시장을 염두에 두고 태국에 진출하는 건 한국 기업에 좋은 전략임이 틀림없다. 국경 지역 투자 활성화를 위해 태국 정부는 10개 특별 경제구역(SEZ·Special Economic Zone)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SEZ에 진출한 업체를 포함해 BOI가 승인한 사업에 참여하는 해외 기업과 투자자는 산업군에 따라 최대 13년 동안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처음 태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투자자가 주의할 점은 없나.
“태국의 별명이 ‘미소의 나라’ 아닌가. 문화 충격을 겪을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방콕 시내에는 한인타운도 있고, 차이나타운과 리틀 인디아(인도 거리)도 있다. 문화적으로 다채롭고 중립적이라는 뜻이다. 다만 토지 종류에 따라 주거용 건물만 지을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에 사무실이나 생산 시설을 지으려면 잘 알아봐야 한다. BOI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SEZ에는 제조 시설을 만들 수 있다.”

+PLUS POINT
글로벌 빅테크, 車 기업 몰리는 태국
만성적인 미·중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도 한국은 2024년 역대급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총수출액 6838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 이전 최고 기록인 2022년(6836억달러)보다 2억달 러가 늘어난 액수다. 수출 1위와 2위 대상국은 무역 갈등 당사국인 중국과 미국이 각각 차지했다. 3위는 아세안이다. 이 기간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액은 전년 대비 4.5% 증가하면서 1140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면, 아세안은 16.7%로 중국(19.5%), 미국(18.7%)과 함께 3대 주요 수출 시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을 구성하는 10개국 중에서는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이 수출 비중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뒤를 잇는다.
미·중 갈등은 아세안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미·중 갈등 격화 여파로 중국 시장의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고, 부동산 침체와 경기회복 부진 등 기업이 감내해야 할 위험 부담이 커지면서 중국을 떠나는 기업이 늘어났고, 아세안 국가가 중국을 대체할 ‘제2의 생산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에 이은 역내 2위 경제 대국인 태국 시장은 최근 디지털 경제로 전환을 가속화하며 투자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구글은 10억달러를 들여 태국에 데이터센터 등 클라우드·인공지능(AI) 인프라를 짓겠다고 지난해 9월 발표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37년까지 태국에 5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또한 지정학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2024년 5월, 태국 최초의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한때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로 불릴 만큼 융성했던 태국의 자동차 산업에 서도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도요타 와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이 1960년대부터 태국을 생산 기지로 삼아왔지만, 최근에는 비야디(比亜迪·BYD)와 상하이자동차(上海汽車·SAIC) 등 중국 전기차 업체가 점유율을 크게 늘리고 있다. 태국 정부는 2030년까 지 자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30%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지 생산 계획을 제시한 업체에 전기차 한 대당 최대 15만바트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24년 8월 태국 현지에 10억바트를 들여 전기차 조립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BOI도 관련 투자 계획을 승인했다. 현대차가 태국 현지 자동차 조립 회사인 톤부리 오토와 손잡고 방콩 남동쪽 사뭇쁘 라깐주에서 위탁 제조하는 방식이다. 2026년 가동이 목표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전기차 판매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다수의 중국 자동차 제조 업체가 태국을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다. 아이 온(埃安·Aion)은 23억바트를 투자해 연간 2만 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설립했으며, BYD는 4억8600만달러를 투자해 라용에 연간 15만 대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건설, 2024년 7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창안(長安)은 연간 10만 대 생산 규모의 첫 전기차 공장을 태국에 건설할 계획이며, 치루이 (奇瑞·Chery)는 2025년까지 연간 기준 5만 대, 2028년까지 8만 대 생산을 목표로 공장을 설립 중이다. 글로벌 기업의 태국 투자 러시는 아세안 중심에 있는 지리적 이점과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 매력적인 투자 인센티브, 89.5%에 달하는 높은 인터넷 이용률, 저렴한 전력 비용 및 노동력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 BOI는 클라우드, AI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기업에 최대 8년간 법인세 면제를 포함한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