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9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이하 EU 집행위)는 유럽 미래 세대의 농업 및 농식품 부문 미래 보장을 위한 ‘농업 및 식품에 대한 비전(Vision for Agriculture and Food)’1)을 발표했다. EU 집행위는 이를 통해 농업 및 식품 부문은 물론, 생산에서 최종 소비에 이르는 글로벌 가치 사슬(GVC) 전반에 걸쳐 상호 신뢰와 대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전은 ‘EU 농업의 미래에 대한 전략 대화(Strategic Dialogue on the Future of EU Agriculture)’2)를 바탕으로, 유럽농업식품위원회(EBAF)와 협의해 EU 농업 및 식품 부문의 장기적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농업 생산비 급증과 시위에 대응해 ‘농업의 미래에 관한 전략 대화’ 시작
EU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보유한 최대 경제 공동체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농식품 분야에서 최대 수입국이자 세계 2위의 수출국이다. EU회원국이 가진 토지의 약 절반이 농지다. 농식품 생산, 가공 및 수송 등이 온실가스 배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EU에서 농업은 그동안 EU 차원의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아왔으며 시장 지원 제도, 지원 프로그램, 농가 보조금 등을 포함하는 공동농업정책(CAP) 지원을 꾸준히 받아왔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2022년 EU 농식품 시스템에서 창출된 총부가가치는 9000억유로에 달한다. 또한 EU 농식품 부문에는 약 3000만 명이 종사하고 있지만, 그중 40세 미만은 12%뿐으로 젊은 노동력이 잘 유입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EU 농식품 부문은 EU 차원의 그린딜(Green Deal)3) 환경 목표 달성과 지속 가능한 녹색 전환을 위해 과도한 환경규제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은 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로 에너지 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농업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EU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농산물에 대해 수입관세 및 쿼터를 면제했다. 이로 인해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중동부 유럽 국가의 농산물 가격이 시장에서 급격히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24년 1월부터 유럽 농업인의 시위가 거세졌으며,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전후로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폴란드 등 유럽 전역에서 대규모 농업인 시위가 발생했다. 또한 2024년 12월, EU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농업인은 수입 농산품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유럽 농업인의 시위가 거세지던 2024년 1월, EU 집행위는 ‘EU 농업의 미래에 관한 전략 대화’를 제안했다. 이 대화에는 농업계, 소비자, 농촌 커뮤니티, 유통 업계, NGO 등 농식품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다. 약 8개월에 걸친 전략 대화 결과, 2024년 9월 최종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EU 농업·식품 시스템의 경쟁력, 회복력,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과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과 선택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권고를 포함하고 있다.
비전 통해 농업인 지원 강화,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마련
2024년 12월 1일(이하 현지시각) 공식 출범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2기 EU 집행위는 전략 대화 최종 보고서를 바탕으로 향후 5개년 EU 농업정책 로드맵을 설정하기 위해 2월 19일 ‘농업 및 식품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이는 유럽 그린딜의 세부 전략의 일환으로, 2020년 5월 발표된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4)전략의 후속 조치다. 이전 전략이 농식품 가치 사슬 전반에 초점을 맞춘 것에 비해 이번 비전은 유럽 농업인에게 훨씬 더 구체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농업 및 식품에 대한 비전’은 규제 간소화, CAP 지원의 선택과 집중, 바이오 경제 전략, 농업인의 위험 부담 완화, 수입 농산품과 공정 경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 비전은 농식품 산업 전반의 가치 사슬에서 농업인에게 공정한 소득을 보장하고, CAP의 농업인 지원 대상 구체화와 투명성을 촉진해 미래 세대가 지속 가능하게 식량 생산에 종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농업의 재정적 자립을 보장하고 불공정 관행에 대응할 수 있도록 농업인의 미래를 보호하며, 소득원을 다양화하고 산업 가치 사슬 전반에서 공정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친환경적인 농산품 생산에 적절히 보상하고 농촌 지역 젊은이를 위해 혁신적인 농식품 비즈니스의 기업가적 잠재력을 활용하고자 한다.
또한 기존의 획일적인 접근 방식을 벗어나 농업인의 개별 상황에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규제를 간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EU 집행위는 빠르면 2025년 2분기에 이와 관련된 간소화 패키지 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U 집행위는 규정 간소화와 함께 농업인이 스스로 지속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도록 농장의 지속 가능성 평가를 위한 자발적 벤치마킹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2020년 CAP의 농가 보조금은 농업인 평균 소득의 약 23%를 차지했다. 향후 CAP의 농가 보조금 지원은 더 간단하고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CAP는 농업인 소유 토지 면적에 비례해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연적 제약, 친환경 농업, 중소 농가 등을 대상으로 더욱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CAP는 까다로운 지원 조건에서 벗어나 유연성 있게 적용되는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원 시스템을 변화시킬 계획이다. 2027년 이후 CAP의 방향과 예산 변화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EU 총예산의 33%를 차지하는 CAP 예산의 감축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환경, 식량 안보, 혁신 등의 우선순위를 반영한 재정 지원 방향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EU 집행위는 올해 말 ‘바이오 경제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생명공학의 규모를 확대하고 바이오 기반 및 순환성 솔루션의 상업화를 가속화해 다른 산업과 투자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 전략을 통해 생명공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농가 소득원을 다각화하고, 잔여물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1차 생산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생명공학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또한 EU는 농촌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지역 식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EU 농촌행동계획을 개정하고, 농촌협약(Rural Pact)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식품 산업 가치 사슬 전반의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식품 간담회(Food Dialogue)’를 열고, 지속 가능한 식품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공공 조달 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다. EU는 단기 공급망 활성화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 거리를 단축하고, 지리적 표시(GI) 제도를 확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유럽 농식품의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EU 농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기후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리스크 등 단기 및 중기적 위험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위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EU는 농업인의 위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공적 자금과 민간 자본을 결합하는 혼합 금융(blended financing) 기법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EU 역내에서 안전한 식품 생산을 늘리고 수입 선을 다변화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농업인에게 생산자 조직이나 협동조합을 통한 위험 공유 방안을 적극 권장하고, 농산품 생산방식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 및 혁신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유럽투자은행(EIB), 보험 및 재보험회사, 농식품 생산 가치 사슬의 이해관계자가 협력해 농업 부문의 보험 접근성을 확대하고 농업인이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수입 농산품과 공정 경쟁을 위해 ‘거울 조항(mirror clauses)’5)을 도입해 EU 농업인이 생산한 가치와 규정을 수입 농산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식품 안전 규정을 EU 내에서 효과적으로 시행하도록 전문 인력 시스템을 모든 회원국에 구축하고 이를 수입품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환경보호, 노동 인권, 소비자 안전 등 EU의 기본 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규제가 EU 역내 농업인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이로 인한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EU 표준과 규제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동물 복지 기준을 유럽산 제품과 수입 제품에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법안을 개정해 유럽소비자가 훨씬 안전하고 윤리적인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로드맵이 무역 장벽과 경제적 피해 초래할 수 있어
이렇듯 유럽의 농식품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EU의 농업정책 로드맵은 품질 향상을 통해 역내 농업인의 경쟁력을 증대시키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품질의 안전한 제품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노동 인권, 동물 복지 등 범지구적 가치 실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식량 안보와 농업을 미래 세대에 유망한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EU 역외국에서는 EU의 농식품 수입 장벽 강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EU에 농식품을 주로 수출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점점 더 엄격해지는 민간 부문 식품 품질 기준이 사실상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EU 소비자에게는 수입 농산물의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먹거리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25년 2월 16일 EU 집행위가 추진 중인 농식품 수입제한이 EU에서 금지된 살충제로 재배된 미국산 대두 등을 주요 대상으로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근 미국 신행정부가 예고한 관세정책에 대한 EU의 대응으로 해석된다. EU 집행위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과 EU 간 통상 분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특히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 EU의 주요 농식품 수입국은 자국 농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3월 12일, 미국 신행정부의 EU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에 대응해 260억유로 규모의 미국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발표했으며, 4월에는 추가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2월 26일, 모든 EU 상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결정에 따른 대응이다. 이러한 상호 관세 인상은 양측 모두에 경제적 손실을 입히겠지만, 무역의존도가 높은 EU는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다. 특히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미국 시장에 의존도가 높은 EU 회원국은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통상 분쟁에서 EU의 제약과 자동차 부문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
EU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호 간 관세 인상을 막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겠지만, 협상이 결렬될 경우 상호 관세 적용, 미국에 대한 반강압 법안(Anti-Coercion Instrument) 발동, FDI(외국인직접투자) 및 지식재산권 관련 규제 등 전술한 농식품 수입제한을 통상 분쟁에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의 농업정책 로드맵이 향후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역외 농산품 수입장벽 강화를 얼마나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향후 EU집행위의 추가 조치가 어떻게 시행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2분기 중에 규제 간소화 패키지 법안이 발표될 예정이며, EU 농식품에 대한 불공정경쟁 대응을 위한 ‘통합안전망(Unity Safety Net)’구축 여부와 거울 조항의 도입에 대한 후속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EU 정책 방향은 이미 정해졌으며, 이는 우리 농식품 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농가의 소득원 다각화, 농업 부문의 위험 완화, 생산자와 소비자 간 격차 축소, 혁신 및 소농에 대한 지원 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다. 이와 함께 농식품 산업 관련 당국과 업계는 향후 EU 집행위의 추가 조치가 우리 농식품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특히 탄소 배출, 지속 가능성 인증, 노동 인권, 동물 복지 등은 우리 농식품의 유럽 시장 접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1농업 및 식품에 대한 비전(Vision for Agriculture and Food)
지속 가능하고 경쟁력 있는 농업과 식품 산업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EU 집행위의 보고서. 이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농업을 매력적인 직업으로 만들고, 공정한 시장 보장과 공공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신과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어 기후 목표를 달성하고, 농촌 지역의 생활과 근로 조건을 향상시키며, 농식품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 2EU 농업의 미래에 대한 전략 대화(Strategic Dialogue on the Future of EU Agriculture)
2024년 1월 유럽 농업인의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EU 집행위가 제안했다. 소비자, 농촌 커뮤니티, 유통 업계, NGO 등 농식품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약 8개월에 걸쳐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 2024년 9월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는 EU 농업·식품 시스템의 경쟁력, 회복력,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과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과 선택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 권고가 포함됐다.
- 3그린딜(Green Deal)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 배출 순 제로 지역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포괄적인 환경 정책. 기후변화 완화뿐만 아니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 4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EU가 발표한 식품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계획. 농업과 식품 생산, 유통, 소비,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농약 사용 감소, 유기농 생산 비율 증가, 식품 폐기물 감소, 지속 가능한 생산방식 촉진 등이 포함된다.
- 5거울 조항(mirror clauses)
계약서나 협정에서 한 국가나 당사자가 취한 규정이나 조건을 다른 국가나 당사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조항. 한 국가가 특정 법적 조치를 취할 경우 상대국도 같은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이를 통해 불공정한 거래나 규제 차이를 방지하고, 상호주의 원칙을 보장하려는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특정 제품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면, 상대국도 동일한 세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