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 인터뷰 INTERVIEW 제러미 코스트 GBK콜렉티브 파트너 "전기차, 장기적으로 전체 車 시장의 3분의 1 차지할 것"
  • 고성민 기자
  • 미국 푸제사운드대 경제학,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전 T-모바일 부사장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1)에 빠졌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순수 전기차(BEV·이하 전기차)가 총 1035만 대 판매돼, 신차 판매의 11.3%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판매량이 두 자릿수(16.3%) 늘어난 것이지만, 이는 중국 전기차 시장이 홀로 고성장한 영향이다. 지난해 중국에선 전기차가 630만 대가 팔려 전년 대비 판매량이 27.0% 늘었다. 전 세계에서 팔린 전기차 10대 중 6대가 중국에서 판매된 셈이다. 반면 지난해 유럽 전기차 시장은 1.3% 역성장했고, 미국 전기차 시장은 6.6% 성장하는 데 그쳤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이 14만6883대에 그쳐, 전년 대비 9.7% 역성장했다. 제러미 코스트(Jeremy Korst) GBK콜렉티브 파트너를 인터뷰했다. GBK콜렉티브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에릭 브래드로 교수가 공동 창립한 컨설팅 기업이다. 코스트 파트너는 마이크로소프트(MS), T-모바일 등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및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역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기차 시장 성장이 둔화하는 이유는.

    “전기차 시장은 혁신가(2.5%)와 얼리 어답터(13.5%)를 끌어들인 뒤, 전기 다수 수용자(34%)에게 도달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얼리 어답터는 신기술에 대한 흥미, 기후 위기 대응,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동기로 구매를 선택한 반면, 주류 소비자는 총소유 비용, 충전 편리성, 재판매 가치 등 실질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얼리 어답터와 전기 다수 수용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이 간극이 제프리 무어가 설명한 캐즘이다.

    이는 전기차 시장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과거 1세대 메인프레임(mainframe) 컴퓨터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로,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기술이 발전할 때도 비슷한 수요 정체 현상이 나타났다. 캐즘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 출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제품의 메시징, 가격, 사용자 경험 디자인 등 전반을 완전히 재정비해 소비자에게 ‘새로움’이 아닌 ‘유용함’을 전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동차 업계는 이제 단순히 수요를 창출할 것이 아니라 주류 구매층이 갖는 실용적·정서적·경제적 현실에 대응할 필요가 생겼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전기 다수 수용자를 망설이게 하고 있나.

    “우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는 전기차를 주로 ‘보조 차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주력 차량으로 선택하길 꺼린다.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최대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 충전 속도, 장거리 여행 시 충전 인프라 가용성을 우려한다. 또 배터리 성능 저하로 인한 중고차 가치 하락, 스포츠 유틸리티차(SUV) 같은 특정 유형의 전기차 모델이 부족한 점 등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런데도 탄소 중립 시대에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으로 여겨진다.

    “가정에서 세컨드 카(두 번째 차)로 전기차를 점점 받아들이고, 그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소비자 전반에서 수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 생각은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그룹 회장의 견해와 일치한다. 전기차는 궁극적으로 시장의 약 3분의 1 수준을 차지할 것이고, 나머지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2)와 수소전기차가 채울 것이라는 견해다. 따라서 자동차 기업에 중요한 것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전기차냐, 내연기관차냐’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대신, 소비자 생활 방식과 운전 습관, 구매 형태를 반영하는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다.

    다만 자동차 파워트레인(동력계)의 미래는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각 지역의 인프라 수준, 정책적 지원, 에너지 구성, 소비자 선호도, 기후 목표에 따라 매우 지역적인 특성을 갖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공격적인 정부 정책, 높은 도시 인구밀도, 현지 생산 이점 등을 바탕으로 전기차 보급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리라고 전망하지만, 지역별로 차이가 클 것이다. 정책 지원이 강력하고 인프라가 성숙한 지역, 얼리 어답터 소비자층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성장이 가속할 것이다. 이외 지역에서는 전기차 전환이 느리게 진행되면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나 일반 하이브리드차가 과도기적 역할을 할 것이다.”

    유럽연합(EU)이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법안을 유지할지는 주요 변수로 꼽힌다.

    “그동안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유럽에서조차 최근 전기차 시장이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다. 이로 인해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유럽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는 전기차 판매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BMW 경영진 역시 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규제가 소비자의 준비 상태를 초과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결국 규제는 시장 준비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정책 입안자는 더욱 유연한 태도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나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탈탄소화 경로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경직된 목표를 강요할 경우, 소비자 반발이나 예상치 못한 경제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신행정부에서 전기차 시장 전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기차를 비판해 왔는데, 최근 테슬라를 구매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3)은 전기차와 배터리의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미국 내 산업을 활성화했다.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IRA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철회된다면 현재의 전기차 성장 속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 성장을 이끄는 구조적인 요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요 자동차 제조사는 전기차 생산 시설과 공급망 구축에 수십 억달러를 투자했다. 또 캘리포니아·뉴욕·워싱턴주 등 주요 주 정부는 연방 정부의 정책 변화와 상관 없이 강력한 전기차 친화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연방 정부가 전기차를 덜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더라도 전기차 시장 성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 성장 속도는 느려질 수 있다.”

    용어설명
    • 1캐즘(chasm)

      첨단 제품이나 신제품이 초기에 성장세를 보이다,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 2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전기차처럼 외부 전원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순수 전기로만 달릴 수 있고, 내연기관차처럼 기름을 넣어서 달릴 수도 있는 자동차다.

    • 3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미국 정부가 2022년 8월 시행한 법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세액공제 적용 기간을 연장하는 등 세제 혜택의 범위를 확대했다.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10년간에 걸쳐 369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4차 산업 분야인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