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미국 신행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행정명령(executive orders)1)’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뿐만 아니라 각서(memoranda), 선언(proclamation) 등 다양한 형식의 대통령 문서도 빈번히 발표했다.
‘미국 대통령 프로젝트(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2)는 1789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이 발령한 각종 문서와 메시지 등에 관한 통계 및 정보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는데, 행정명령만 보면 2025년 3월 18일 기준으로 트럼프 1기(2017~2020년) 정부는 총 220건, 조 바이든 정부(2021~2024년)는 총 162건을 발동했다. 반면, 미국 신행정부는 임기 100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바이든 정부 전체 행정명령 건 수의 3분의 2인 93건을 이미 발동했다.
총 12년간 재임하며 3721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8년간 1803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 같은 역대 대통령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트럼프 1기 정부 첫 100일 동안 발동된 33건과 비교하면, 약 세배에 달한다. 참고로 바이든 정부는 임기 첫 100일 간 총 42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는데, 이 가운데 트럼프 1기 정부의 주요 행정명령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21건이 포함된다. 이런 수치를 종합해 보면, 미국 신행정부는 전임 정부의 주요 행정명령을 폐기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건수도 바이든 정부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대통령이 발동하는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채택하는 ‘행정조치(executive action)’의 하나로, 각서·선언 등도 이 같은 행정조치에 포함된다. 미국 신행정부 출범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행정명령 등의 역사적 배경과 법적 효력에 관해 간략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미국 역시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기초로 하며, 연방헌법 제1조에 따라 입법권은 미합중국 연방의회에 귀속된다. 따라서 연방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연방 법치주의의 근간으로 기능한다. 한편, 연방의회의 위임에 근거해 연방 행정부는 법률 집행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연방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미국 연방헌법은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 명시적 근거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연방헌법 제2조 제1항은 행정권(executive power)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 대통령은 연방 행정부에 대한 최고책임자로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 법령에 따라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시하거나 명령할 권한을 가진다.
좁은 의미에서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구체적 행위나 정책 방향을 지시하기 위해 행정기관 또는 공무원에게 직접적으로 부과하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변호사협회(ABA)는 행정 명령을 “대통령이 연방 정부 운영 및 관리와 관련하여 작성·서명하고, 연방관보법(Federal Register Act)에 따라 공표되는 문서 형태의 지시”로 정의한다. 결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헌법상 행정권 부여에 근거하거나 의회의 법률적 위임을 근거로 발동될 수 있다. 이 경우 법률의 명시적 위임뿐만 아니라 묵시적 위임에 의해서도 행정명령 발동이 가능하다. 아울러 미국 대통령이 가지는 고유하고 독자적인 권한(inherent powers)3)에 기초해 행정명령을 발동할 수도 있음을 법적 근거로 들 수 있다.
행정명령은 해당 대통령의 임기 동안 효력이 유효하지만, 후임 대통령에 의해 전면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회에서 제정된 연방법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1907년 미국 국무부는 1862년부터 발동된 행정 명령에 대해 일련번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1936년 연방관보법 제정 이후에는 행정명령 번호 체계를 확립함과 동시에 해당 문서를 공식적으로 보관하고 공개하는 절차가 마련됐다. 다만, 일반적 적용가능성 및 법적 효력이 없는 경우에는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행정명령과 함께 최근 발동이 잦은 선언 및 각서도 비교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5년 3월 18일(이하 현지시각) 기준 미국 대통령 프로젝트가 공개한 행정명령의 누적 수는 총 1만559개다. 한편, 선언과 각서는 각각 9477개 및 3564개로, 이 역시 대통령이 상당히 자주 이용하는 형식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이 연방 행정부를 관리하기 위해 지시하는 문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연방관보법은 행정명령 및 선언의 경우 출판의 대상이 된다고 명시한다.
선언은 휴일, 기념일, 사면 등 공공 정책 관련 지시를 하는 경우 주로 사용하는 반면, 행정명령은 국가의 긴급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의 범위 내에서 또는 연방의회가 제정법을 통해 권한을 위임한 경우에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각서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29건을 발동했다. 각서 또한 다른 행정명령과 유사하지만, 서명·공표되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예산관리국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으며 연방관보에 등록돼 일련번호를 부여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정명령과 구별된다. 이런 행정명령, 선언, 각서 등 대통령의 각종 행정조치는 의회의 별도 승인 절차를 요하지 않으므로, 발동 즉시 효력을 발생시키는 등 신속한 정책 집행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미국 신행정부는 행정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의회는 법률 개정이나 별도 입법 조치를 통해 대통령의 행정조치에 제동을 걸 권한이 있지만,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 정치 지형상 실질적인 견제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행정명령 등 대통령의 행정조치가 연방헌법에 위반되거나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 이를 대상으로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다만, 소송 절차상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즉각적인 대응 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 신행정부출범 100일(4월 29일)이 다가오는 현 시점에서, 향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의 행정조치에 대해 한국도 면밀한 모니터링과 체계적 대응 방안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 1행정명령
미국 대통령이 발행하는 공식적인 명령으로, 법률에 근거하거나 헌법에 의한 대통령 권한을 바탕으로 특정 행정적 조처를 하거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사용한다. 주로 행정부 내에서 정책을 실행하거나 정부 기관의 운영을 조정하는데 사용하며, 법률로 구체화한 내용이 없는 경우에도 대통령이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
- 2미국 대통령 프로젝트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캠퍼스(UCSB)에서 관리하며,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문서와 자료를 제공해 학술 연구 및 교육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주요 콘텐츠로는 대통령 연설, 대통령 각서 및 행정명령, 대통령 서신, 대통령 기록 등을 다룬다.
- 3미국 대통령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권한
미국 헌법에 명시된 구체적 권한 외에도 대통령이 국가 수장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가지는 권한을 의미한다. 미대통령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권한에는 외교 및 군사 권한, 국가 비상사태 선언, 행정적 명령, 조약 체결 및 승인 권한 등이 포함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권한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큰 권력을 부여한다는 우려를 보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