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우려했던 트럼프발 무역 전쟁의 시대가 개막했다. 이번에는 적대 여부나 동맹국 여부도 가리지 않고 한층 더 공격적인 관세로 무장했다. 이 책은 무역 전쟁이라는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곡점에서 달러와 엔화, 그리고 금에 대한 투자 가이드로서 쓰여졌다. 그러나 통화가치를 분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지표가 ‘무역수지’임을 고려하면 무역전쟁 시대에 글로벌 통화 전망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저자는 우선 한국의 원화가 전 세계 통화 중에서 그 가치를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통화 중 하나로 본다. 이는 한국이 구조적인 무역 흑자국이었기 때문이다. 대외 교역에서 달러를 꾸준히 벌어들이면서 국내시장에 달러가 충분히 공급돼 원화의 안정적인 가치 유지가 가능했다. 원화가 강세를 보여 수출이 타격받을 수 있을 때는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 위안화도 강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타격이 줄었다. 그러나 원화가 달러에 대해 비교적 안정적이던 상황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직후에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대규모로 돈을 풀었다. 그러나 금리 인하 여파로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자 2022년 3월부터는 급격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 가치가 올라갔다.
여기에 2022년 말 챗GPT로 시작되는 인공지능(AI) 등 미국 빅테크의 기술혁신에 힘입어 미국은 금리 인상 국면에서도 경기가 살아났다. 미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과 경기 침체를 예상한 경제학자를 비웃듯이 2 023년에 2 .9%, 2 024년에는 2 .8%라는 놀라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록한다. 강한 경제를 토대로 한 강달러다.
2024년 9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로 돌아섰지만,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는 4.25~4.50%로 0.5%인 일본은 물론,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데다 금리도 높으니 미국 자본시장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느는 것도 달러 강세를 부추긴다. 지난 2~3년 새 국내 투자자 상당수가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로 돌아섰다. 국내에서 달러 수요가 느는 만큼 원화 가치는 약세 압력을 받게 됐다. 원화 약세 압력을 덜어준 것은 그 기간에 대미 무역 흑자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에 444억달러였던 대미무역 흑자는 2024년에 557억달러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과거처럼 대미 무역 흑자를 기반으로 원화 안정세가 유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전망이다.
저자는 중국 특수가 마무리 단계에 있고 한국의 무역 흑자가 축소될 가능성이 앞으로 원·달러 환율의 큰 흐름을 바꿀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이 한국보다 금리가 높은 현상이 고착할 가능성도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한 단계 낮아질 요인이다. 저자는 무역 적자 해결에 나선 미국 신행정부 정책을 달러 강세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로 본다.
저자는 ‘트럼프 = 달러 강세’라는 가정과 달리 미국 신행정부가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앞둔 2024년 4월 “기록적인 엔저(低)가 미국에 대재앙”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의 최측근 경제 참모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시각이다. 다시 말해 “과대평가된 달러가 만성적인 무역 적자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포함된 것이다.
저자는 미국 신행정부가 달러 가치를 절하하기 위해 금리 인하는 물론 미국으로 유입되는 외국 투자금에 과세하는 등 다른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문가 견해에 수긍한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우상향하겠지만, 미국 신행정부 기간(2025~2028년)에는 환율 변동성이 확대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달러가 전통적인 투자 수단이었다면, 일본 엔화는 최근 2~3년 새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투자 대상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저자는 엔화 역시 점진적으로 절상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원·엔 환율 추이와 일본 금리정책을 중심으로 엔화의 부활을 설명했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은 2010년대 초반까지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이후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기 회복 시도를 하고 2016년 전격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단행하면서 과도한 엔화 약세가 이어졌다. 그러다 경기가 살아나며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2024년 3월 일본 은행이 17년 만에 처음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후에도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가 지속되자 일본은행은 같은 해 7월에 예상과 달리 또 다시 금리를 올렸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헤지펀드가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1)를 급속히 청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 등에 투자했던 헤지펀드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좁혀지자, 엔화 대출을 갚기 위해 달러 표시 자산을 매도한 것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놀란 일본은행은 이후 추가 금리 인상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미국은 금리 인하를 미루면서 엔화 약세는 지속됐다. 그럼에도 무역의존도가 높은 일본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 엔 약세를 이어 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전 조 바이든 정부에서 이미 일본을 중국·한국·대만·독일·베트남·싱가포르와 함께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일본 당국이 환율 안정은 유지하되 통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느린 속도의 절상을 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돌출하는 시기에 금융시장이 받는 충격을 헤지(hedge⋅위험 회피)할 수 있는 안전 자산으로 기능한다. 미국 신행정부가 글로벌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줄이고 각자 국방을 책임지라고 선언한 만큼 지정학적 리스크가 나타날 개연성은 높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금 매입을 늘려온 것이 2022년부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시점이다.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대외 부채 리스크에 대비해 외환보유고에서 금 보유를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는 현상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발발한 2023년과 2024년에도 지속된다.
저자도 미국 경제가 강하고 달러가 강세를 보일 때는 금값이 고전했음을 지적하면서 달러 강세는 금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변동성이 높아진 달러 약세 가능성에 대비해 포트폴리오에 금을 담아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자는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는 미국 신행정부 시대에 앞으로 달러와 엔화가 원화보다 중장기적으로 강세를 나타낼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투자자를 위해서 쓰였지만 불확실한 무역 전쟁 시대,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진 시대에 정책 결정자가 글로벌 통화 흐름을 잡아 나가는데 도움 될 것이다.
- 1 엔 캐리 트레이드 (Yen carry trade)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투자 방법을 ‘캐리 트레이드’라고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흥국 통화나 미국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엔화 가치 하락과 연결된다. 빌린 엔화를 외환시장에서 매도해 다른 나라 통화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엔캐리 트레이드로 인한 엔화 매도가 많을수록 엔저 진행은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