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통상 현장 INTERVIEW 휠릭스 칼코스키 주한독일상공회의소 부사장 시장 다변화 원하는 독일, 中 의존도 벗어나 韓 기업에 ‘주목’
  • 이용성 기자
  • "로버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이 지난해 중국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건 한국과 협력 확대가 독일 정부의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행보였다.
    양국이 경제 및 공급망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휠릭스 칼코스키 주한독일상공회의소 부사장 | 독일 하펜시티대 도시계획 학·석사, 독일 엘름스호른 도시계획 전문가, 전 시티넷 사무국 선임 사업 담당관, 전 서울시 도시 네트워크 구축 자문위원

    올해로 한국과 수교를 맺은 지 70주년1)이 되는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이다. 유럽 대륙 한복판에 위치하며, 덴마크·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스위스·프랑스·룩셈부르크·벨기에·네덜란드 등 무려 아홉 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중심’이란 게 지리적 의미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이자 인구 대국이며, 수출 대국이다. 2023년 기준 유럽연합(EU)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로, 프랑스(16%)와 이탈리아(12%)에 앞서 있다. 인구 비례로 배분하는 유럽의회 의석도 720석 중 96석으로, 가장 많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과 주요 수출 시장이자 투자처인 중국의 내수 부진 등의 여파로 최근 경제 상황이 좋진 않지만,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나라 중 미국과 ‘투 톱’을 이룰 만큼 높은 노동생산성과 미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할 만큼 낮은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탄탄한 산업 구조 등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독일 정부는 최근 몇 년동안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23년 발표된 독일 정부의 첫 대(對)중국 전략에는 중국과 경제 관계를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도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휠릭스 칼코스키(Felix Kalkowsky) 주한독일상공회의소(KGCCI) 부사장은 “한국은 독일 기업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중요한 관문”이라며 “잘 갖춰진 인프라와 숙련된 노동력, 기업 친화적인 환경은 특정 시장 의존도를 낮추면서 성장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독일 기업에 매력 요인”이라고 봤다. 칼코스키 부사장은 마틴 행켈만 전 사장이 최근 걸프 지역의 독일상공회의소(AHK) 대표로 자리를 옮긴 후 KGCCI를 이끌고 있다. 행켈만 전 사장의 후임은 4월 부임 예정이다.

    칼코스키 부사장은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서울에도 처음에는 도시계획 전문가로 왔다. 2016~2019년 시티넷 사무국 선임 사업 담당관을 역임했고, 이후 KGCCI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티넷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국제기구다. 일본 요코하마에 있던 시티넷 사무국을 2013년 서울로 이전했다. 칼코스키 부사장을 2월 17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KGCCI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건물이 전면에 보이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야경.

    KGCCI 소개 부탁한다.

    “1981년 설립 이후 한국과 독일 간 경제 교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전 세계 93개국 150개 주재 독일상공회의소(AHK)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독일연방경제기후보호부(BMWK)의 지원을 받고 있다. KGCCI 회원사는 약 500개에 이른다. 한국에서 독일 기업의 관심과 이익을 대변하며, 한독 경제 교류 촉진을 위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국 간 교역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식과 전문성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한국과 독일의 경제·비즈니스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아시아에서 한국은 독일의 세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2024년 양국의 교역 규모는 313억달러(약 45조1440억원)에 달했다. 1964~2024년 60년 동안 독일의 대한국 누적 투자액은 186억달러(약26조8268억원)에 이른다. 한국은 독일 기업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중요한 관문이다. 특히 잘 갖춰진 인프라와 숙련된 노동력, 기업 친화적인 환경은 특정 시장 의존도를 낮추면서 성장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독일 기업에 매력 요인이다. 한국이 강조하는 혁신과 기술 발전은 독일 기업의 핵심 전략과 잘 맞아떨어진다.”

    어떤 분야에서 협력이 특히 유망할 것으로 보는지.

    “자동차 산업은 양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 협력 분야다. 최근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親)환경 전환 가속으로 공동 투자와 연구개발(R&D)협력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소프트웨어 솔루션과 사이버 보안, 시험 인증 분야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큰 만큼,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를 함께 구축할 여지가 커 보인다. 전자 산업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체와 전자 제조, 소비자 가전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독일은 첨단 제조 기술과 엔지니어링 전문성에서 강점이 있으며, 독일 기업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공급망을 구성하는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기술 협력과 공동 연구, 투자 확대를 통해 양국 간 협력이 더 긴밀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기술 분야는 어떤가.

    “기후변화 대응이 전 세계적으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기술 분야에서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태양광·풍력발전,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의 분야에서 공동 연구와 기술이전, 투자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탈탄소화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및 RE1002)(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독일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기술을 선보이거나 독일의 경험과 인프라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협력 기회가 열리고 있다.

    현재 양국 정부와 기업은 수소 생산·운송·활용을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함께 모색 중이다. 이에 따라 KGCCI는 관련 기술의 공동 연구와 해상 풍력 에너지 생산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촉진할 계획이다. 또한 양국은 제3국에서 공동 에너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변화 교육 또한 강화할 예정이다.”

    유럽의 탄소 배출 규제 강화가 양국 협력에 미칠 영향은.

    “유럽의 규제 강화로 한국과 독일이 협력할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두 나라는 모두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목표를 설정했다. 독일은 2045년, 한국은 2050년이다. 독일은 목표 달성을 위해 그린 수소3) 생산을 비롯한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2024년 독일 총전력 소비의 54%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었다. 독일 기업은 일찌감치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며 풍부한 경험을 축적했다. 이런 경험들은 한국 기업의 주요 시장인 유럽으로의 수출 확대와 탄소 중립의 적기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앞으로 한국과 독일 양국의 협력은 한국의지속 가능한 에너지전환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일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을 KGCCI가 어떻게 도울 수 있나.

    “독일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은 KGCCI를 통해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KGCCI는 독일 현지 상공회의소 및 국가기관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적합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연결하고, 기업 단체 방문 및 무역 박람회 참여를 지원한다. 또한, 한국 기업이 독일 당국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또한 한국 스타트업이 독일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례로 2024년 독일 베를린 국제 가전 전시회(IFA)에서 인공지능(AI)을 주제로 한 피칭 경연대회를 개최했고, 거기서 우승한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제18회 아시아·태평양 독일 비즈니스 콘퍼런스(APK)에 한국 대표로 참가 기회를 얻었다.”

    독일에서 한국 기업·제품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 기업과 제품은 혁신성, 품질, 기술력을 인정받아 독일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자·자동차·소비재 분야에서 한국 제품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최근 많은 독일 기업이 시장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로버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이 지난해 중국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건 한국과 협력 확대가 독일 정부의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행보였다. 양국이 경제 및 공급망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더 매력적인 시장이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한국 정부는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결실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아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복잡한 인증 절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조 업체는 재생에너지에 더 쉽고 저렴하게 접근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도전을 안고 있다. 혁신적인 의약품 관련 환경도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임상 시험 관련 승인과 규제가 자주 바뀌는 것은 문제다. 높은 비용과 경직된 노동법은 한국 노동시장 전반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KGCCI가 에너지 파트너십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상생’을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2019년 말 페터 알트마이어 당시 독일연방 경제기후보호부 장관과 성윤모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에너지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협력 의향서에 서명한 것이 한독 에너지 파트너십의 시작이다. KGCCI는 2021년에 한독 에너지 파트너십의 한국 공식 사무국으로 지정됐다. 이후 독일 싱크탱크 아델피와 협력해 양국의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매년 한국과 독일에서 교차 개최하는 한독 에너지 데이 콘퍼런스가 가장 중요한 행사다. 매년100명 이상의 에너지 전문가가 참석한다. 2024년에는 베를린에서 ‘에너지전환을 위한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주제로 진행했다. 올해는 5월에 서울에서 ‘탄소 배출이 어려운 산업의 탈탄소화’를 주제로 개최할 예정이다.”

    독일의 선진 기술 인력 양성 교육 프로그램인 ‘아우스빌둥(Ausbildung)’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KGCCI는 2017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BMW코리아와 함께 아우스빌둥을 한국에 도입했다. 이후 2018년 다임러트럭코리아와 만트럭버스코리아, 2019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2021년 포르쉐코리아가 합류했으며, 현재 국내 5개 전문대가 협력 교육기관으로 참여 중이다. 훈련생은 독일식 트레이너 양성 과정을 이수한 사내 트레이너의 지도하에 실무 훈련(70%)을 받고, 대학 교수진의 지도하에 협력 전문대학에서 이론 교육(30%)을 받는다.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한 총 36개월의 과정을 마치면, 대학 전문 학사 학위, 독일상공회의소 아우스빌둥 인증 그리고 브랜드 내부 인증을 취득하게 된다. 실무를 익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직장 환경에 적응하고, 급여도 받는다. 참가 기업은 젊은 인재를 조기에 육성해 핵심 인력으로 키울 수 있다.”

    아우스빌둥이 독일 제조업의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독일에서 아우스빌둥이 다루는 직종은 320개로, 제빵·미용·정비·치기공·경찰·은행원 등 매우 다양하다. 독일 청년의 약 50%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우스빌둥을 이수한다. 아우스빌둥은 기업의 실제 운영 방식과 산업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실용적인 모델이다. 훈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산업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등 경제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용어설명
    • 170주년

      한국과 독일은 1883년 조독수호통상조약을 통해 외교 관계를 시작했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1955년 서로 국가를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다시 수립했다.

    • 2RE100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전부를 2050년까지 ‘재생 에너지’로 공급하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자는 취지다. 재생에너지는 석유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태양광·바이오·풍력 등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 3그린 수소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해 얻어지는 수소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