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 인터뷰 리처드 볼드윈 국제경영개발원(IMD) 국제경제학 교수 “미래 공급망, 중간재 서비스 중요성 커져… ‘제조업의 서비스화’ 가속”
  • 윤진우 기자
  • 국가와 품목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관세 난타전이 시작되면서 미국 주도 단극 체제가 경제적 다극 체제로 전환, 글로벌 가치 사슬이 급변하고 있다. 리처드 볼드윈 국제경영개발원(IMD) 국제경제학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래 공급망은 중간재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제조업 서비스화가 빨라질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수석 스태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국제경제 전문가다. 2024년 9월에는 한국은행과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공동 세미나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글로벌 공급망 및 지정학적 변화가 활발하다.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부상이다. 과거 중국은 내수 중심의 개발도상국이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지역 강국을 넘어 글로벌 경제 대국이 되고자 한다. 미·중 갈등은 중국 경제가 호황일 때 미국 경제가 정체하며 발생한 필연적인 현상이다. 두 번째는 기술혁신과 세계화(특히 제조업의 글로벌 가치 사슬 변화)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미국 중산층의 반란이다. 미국은 사회 안전망과 재훈련 제도가 다른 선진국 대비 부족하다. 미국 중산층이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그들을 위해 관세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볼드윈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에 집착하는 이유로 ‘미국 중산층에 대한 일자리 확보’를 들었다. 고관세를 통해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 미국 내 ‘중산층 일자리’를 확보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제조업에 집중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 관계자는 제조업을 선호하고 있다. 정치·경제·철학적 이유로 제조업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핵심도 제조업 패권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제조 기업은 공급망을 지역화하려고 한다. 중국을 위한 중국, 미국을 위한 미국, 유럽을 위한 유럽 등의 방식으로 생산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제조업 중심의 공급망이 회복하면 경제가 살아날 거란 기대는 과장됐다고 본다.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는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에 있다.”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빨라진다는 전망도 있다.

    “미래 공급망은 중간재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제조업 서비스화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가치 사슬은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에서 경제적 다극 체제로 전환, G-zero(글로벌 리더 부재로 인한 국제 질서 혼란)1) 등장 등이 예상된다.”

    MIT 경제학 박사, 전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부교수, 전 MIT 초빙교수, 전 옥스퍼드대 교수, 전 영국 런던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소장, 전 제네바 국제경제대학원(GIIDS) 국제경제학 교수 | 국제경영개발원

    중국(China)+1 또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생산 기지 인접국 이전) 움직임이 많다.

    “China+1 전략은 중국에 대한 산업 의존도를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가령 2010년대에는 애플의 아이폰이 중국에서만 생산됐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과 인도에서 함께 생산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핵심이 제조업 패권 싸움이 된 만큼 산업 의존도를 특정국에 과도하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전략이다. 니어쇼어링은 무역 분절화의 문제가 있지만 긴 공급망으로 인한 생산 지연과 지정학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업이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다.”

    니어쇼어링이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될까.

    “효율성 측면에서는 도움 되지 않는다. 다만 회복력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미·중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기업은 같은 제품을 만들 때 더 많은 제조 비용이 들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니어쇼어링은 무역 분절화를 동반하지만, 새로운 무역 질서에 적응하는 전략이 된다.”

    선진국의 제조업 리쇼어링은 어떻게 보는가.

    “니어쇼어링과 함께 리쇼어링2)은 생산 시설 다변화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모든 생산 시설을 본국으로 회귀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무역 환경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한국은 교육을 잘 받은 인력이 있고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를 잘 활용해 오피스 서비스를 수출하면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언어의 장벽은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동시 번역 기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PLUS POINT
    "제조업 서비스는 제조업 공정에 서비스 요소를 첨가하는 것"

    한국 경제는 그동안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 및 신흥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한국의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고 기술 격차가 축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제조업 서비스화다.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하고 생산과정에서 서비스 중간재를 투입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 혁신 전략을 뜻한다. 제조업 생산은 과정에 따라 ‘생산 전방’ ‘생산 공정’ ‘생산 후방’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각 단계의 특성에 따라 상이한 서비스가 중간재로 투입되고 있다. 생산 전방에서는 본격적인 생산 이전에 수행되는 기획 및 시장조사 단계가 서비스에 해당한다. 시장조사 및 경영 지원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고객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는 게 생산 전방에서 일어나는 서비스화다. 생산 공정 단계는 상품이 실제로 제조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 공정에서는 생산 환경을 통합적으로 관리해 생산성을 높여주는 정보기술(IT)이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 등이다. 생산 후방의 경우 도소매, 상품 중개 및 운송 등이 서비스다. 애플이 오프라인 매장인 애플 스토어를 통해 제품 체험과 상담을 제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생산 후방에서 나타나는 서비스화다. 한국은행은 기획 및 시장조사, IT 서비스 등의 생산유발계수와 부가가치유발계수가 다른 서비스업 대비 높다고 평가했다.

    용어설명
    • 1G-zero

      흔히 세계 질서를 이끄는 국가를 묶어 G7(주요 7개국), G2(주요 2개국) 등으로 부른다. G-제로는 글로벌 리더가 없이 모든 국가가 자국 이익에만 집중하는 국제 질서 혼란을 뜻한다.

    • 2리쇼어링(reshoring)

      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