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통상 현장

INTERVIEW 안드레아 클레멘티 주한스위스대사관 무역투자청 대표
“로봇·드론 등 첨단 기술 활용 모든 분야 韓·스위스 협력 유망”
  • 이용성 기자
  • 안드레아 클레멘티 주한스위스대사관 무역투자청 대표. 스위스 프라이부르크대 대학원 역사학, 전 주이탈리아 스위스 대사관 경제실 부대표, 전 스위스연방외교부 유엔 및 국제기구과 외교관
    “한국도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혁신을 선도하는 나라다. 드론과 로봇공학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두 나라의 협력이 유망해 보인다.”안드레아 클레멘티(Andrea Clementi) 주한스위스 대사관 무역투자청 대표는 월간 ‘통상’과 인터뷰에서 양국 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클레멘티 대표는 “스위스인의 철학 또는 태도를 대표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그건 ‘실용주의(pragmatism)”라며 “작은 영토에 다양한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실용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체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한스위스대사관 무역투자청은 스위스 경제부 산하 무역·투자 증진 기관인 스위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S-GE·Switzerland Global Enterprise)의 한국 대표부로, 한국과 스위스의 기업의 상대국 진출을 돕는다.

    클레멘티 대표를 1월 2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스위스대사관 무역투자청 사무실에서 만났다. 클레멘티 대표는 스위스 프라이부르크대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공공 행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스위스 연방 정부 소속 외교관으로 변신해 콜롬비아 보고타, 스위스 베른,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 근무하다 2023년 8월 주한 스위스대사관 무역투자청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은 클레멘티 대표와 일문일답.



    세계적인 명문대이자 스위스 혁신의 상징 중 하나인 취리히 연방공과대(ETH) 캠퍼스.
    스위스와 한국 간 경제협력을 위해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주한스위스대사관 무역투자청을 통해 양국 기업이 상호 진출하는 데 교량 역할을 한다.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우선 스위스 중소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도록 돕는다. 한국 시장에 관련 수요가 있어서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산업과 기업에 집중한다. 거대 기업은 자체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정부 차원의 도움은 필요 없다. 또 이미 탄탄하게 입지를 다져놓은 전도유망한 한국 기업이 스위스에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돕고, 스위스 비즈니스 생태계의 장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며, 스위스 현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업무의 나머지 절반이다.”



    주목하는 한국 기업은.
    “특히 제약·바이오산업을 포함한 헬스케어 분야와 드론·로봇공학 등 자동화 분야의 한국 기업을 눈여겨 보고 있다.”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한국과 스위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두 나라 모두 ‘혁신’을 강조하며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최적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2023년 기준 양국 간 교역 규모는 57억7000만스위스프랑(약 9조1480억원)에 달했다.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되는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스위스에서 의약품을 가장 많이 수입했고, 스위스는 한국에서 전자 제품과 자동차, 정밀기계 등을 많이 사들였다. 두 나라는 스타트업과 기업, 대학과 정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양대 명문대인 취리히연방공대(ETH)와 로잔연방공대(EPFL)는 재생에너지, 생명공학, 첨단 제조 등의 최첨단 프로젝트 관련 한국 대학 및 연구소와 자주 협력하고 있다.”




    또 어떤 분야에서 양국 협력이 유망할까.

    “드론과 로봇공학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두 나라의 협력이 유망해 보인다. 수소 산업과 양자 기술도 흥미로운 협력 분야다. 청정에너지원 사용을 늘리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 스위스 정부는 수소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첫 운행을 시작한 현대차의 수소 전기 트럭은 2024년 6월까지 총누적 주행거리 1000만㎞를 돌파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엑시언트’ 수소 전기 트럭(XCIENT Fuel Cell)은 1회 충전으로 최대 400㎞를 달릴 수 있다. 2020년 10월 스위스에서 첫 운행을 시작했고 3년 8개월이 지난 2024년 6월 총누적 주행거리 1000만㎞를 돌파하며 세계 최고 수준 수소 연료전지의 기술력을 입증했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양자(quantum)가 갖는 물리적 특징인 중첩·얽힘·불확정성 등을 활용하는 양자 기술은 제조업·국방·통신·보안·금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래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핵심 기술이다. SK텔레콤은 스위스 양자 암호 기업 아이디퀀티크(IDQ)와 함께 2024년 양자 키 분배(QKD)와 양자 내성 암호(PQC) 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했다. QKD와 PQC는 양자 보안 분야를 대표하는 양대 기술이다. QKD는 광자(빛 입자)에 암호 키를 이용성 기자 담아 전송한다. 직접적으로 양자를 이용해 암호 키를 나눠 가져 해커나 양자 컴퓨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PQC는 수학적 난제를 활용해 양자 컴퓨터가 이를 풀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암호화 방식이다. 양자역학에 의존하지 않고 양자 컴퓨터가 기존 암호화 체계를 무력화하는 것을 방지한다.


    스위스는 영국이 떠난 유럽연합(EU)에서 각각 1~3위 경제 대국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와 인접해 있다. 스위스를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건 괜찮은 전략일까.

    “물론이다. 유럽의 중심에 있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와 긴밀히 협력한다는 건 우리가 한국 기업을 스위스에 유치할 때 강조하는 특장점이기도 하다. 특히 ‘바젤 지역(Basel Area)’으로 불리는 바젤과 인근 지역은 3국 국경이 접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있다. 바젤 중앙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는 기차로 3시간 3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는 2시간 50분이면 닿는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자유무역연합(EFTA·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1)의 회원국으로서 EU 단일 시장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스위스 수출의 50%와 수입의 70%는 EU 역내에서 이뤄진다. 스위스를 거점으로 다른 유럽 국가에 재수출할 때 유리하다는 뜻이다.”

    ‘바젤 지역’은 바젤슈타트, 바젤란트샤프트, 쥐라의 세 개 자치주(캔톤)를 포함하는 1393㎢ 면적의 지역을 뜻한다. 이 지역은 세계시장 규모가 2600조원에 달하는 바이오 헬스 시장에서 미국 동부의 ‘보스턴 클러스터’와 치열한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 기업인 노바티스와 로슈도 이곳에 본사가 있다. 유럽의 경제 대국과 인접한 바젤 지역은 국경을 초월한 인재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바젤 지역에 있는 직장으로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사람 수는 2021년 기준으로 각각 약 4만800명, 2만5900명이나 됐다. 바젤 지역의 법인 세율은 13%로 매우 낮다. 바젤 바이오 클러스터에 입주해 연구개발(R&D)을 진행할 경우 약 11%까지 내려간다. 참고로 한국의 현행 법인세 최고 세율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보다 높다.



    FTA 관련 스위스의 접근법에 특별한 점이 있는지.

    “스위스는 산업 정책에 있어 특정 경제 영역을 밀어주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민간 주도의 상향식 접근 방식을 통해 모든 경제 주체에게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고도로 발달한 선진 경제지만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해외시장 의존도가 높다. 스위스 기업이 해외시장에 안정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중요한 경제 파트너와 무역 관계의 기본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FTA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스위스는 EFTA 협약과 EU와 자유무역협정 외에도 한국, 일본, 중국, 남미공동시장(Mercosur)2) 등 43개국 또는 지역경제공동체와 33개 FTA를 맺고 있다. 한국과 (스위스를 포함하는) EFTA 간의 FTA는 EFTA 프레임워크 내에서 모든 파트너에게 달라진 시대 환경에 맞게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스위스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스위스 경제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와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변화 등 외부 불확실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높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안전 통화로서 스위스프랑화가 누리는 지위는 스위스 경제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를 보여준다. 하지만 스위스프랑화의 강세가 수출 주도형 산업과 관련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노동시장은 전반적으로 견고하지만,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다소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 실업률이 (2024년 12월 2.8%에서) 2026년 3%에 거의 근접하는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ETH 산하) 스위스 경제연구소가 최근 전망했다. 그렇다 해도 스위스의 실업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스위스 하면 명품 시계를 떠올리는 이도 많다. 스위스 시계 산업이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비결은 뭘까.
    “스위스 시계 업계는 경량 티타늄 등 소재 관련 기술에서 항공 분야의 기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앞선 기술과 전통, 장인 정신을 접목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목해 혁신을 이어간다. 탄탄한 제조업 기반도 빼놓을 수 없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2026년까지 4000명의 젊은이가 신규로 외장 마감과 초정밀 기술, 품질 관리 등 시계 산업의 주요 분야에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퇴한 스위스 출신의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가 등장하는 롤렉스 캠페인 등 마케팅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스위스 명품 시계는 원하는 시점에 바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 부분도 소유욕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유럽이 혼란기에 빠질 때마다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은 스위스를 혁신 강국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16세기 종교 개혁 시기에 프랑스는 신교 확산을 억압하기 위해 개신교도인 위그노를 박해했고, 이를 피해 제네바와 쥐라산맥으로 건너온 위그노는 시계 기술도 함께 가지고 왔다. 럭셔리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 제네바의 찬란한 전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자료_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PLUS POINT
    특허 강국 스위스 글로벌 혁신 지수 1위

    유럽 중심부에 있는 스위스의 국토 면적은 경상도보다 조금 크다. 영토의 75%는 산과 호수다. 영토는 작지만, 스위스는 26개 칸톤(주·州)으로 이뤄진 연방국이다. 인구는 약 900만 명인데, 공식 언어는 네 개(독일·프랑스·이탈리아·로망슈어)나 된다. 18세기 말~19세기 초에도 스위스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알프스의 준봉(峻峯)도 과거에는 무역과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이자 부국(富國)으로 우뚝 섰다. ‘알프스의 기적’이라 부를 만한 위상 변화다. 국내총생산(GDP)의 3.2%에 달하는 막대한 R&D 투자와 우수한 교육 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스위스는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매년 평가해 발표하는 글로벌혁신지수(GII·Global Innovation Index) 순위에서 2024년까지 14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스웨덴이 2위, 미국은 3위다. 한국은 6위로 싱가포르(4위)에 이어 아시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각각 11위, 13위다.

    Gll은 WIPO가 2007년부터 매년 유럽경영대학원 인사이드(INSEAD), 미국 코넬대와 함께 세계 130여 개국의 경제 혁신 역량을 측정해 발표하는 지수로서, 총 7개 분야, 21개 항목, 81개 세부 지표를 토대로 평가한다. 인구당 특허 출원 건수에서도 스위스는 압도적인 비율로 세계 1위다. 유럽 특허청이 조사해 발표한 2024년 인구 100만 명당 국가별 특허 출원 건수 비교에서 스위스는 1085.31건으로 2위 스웨덴(495.12건), 3위 덴마크(444.52건)에 멀찌감치 앞섰다. 2024년 국제통화기금(IMF) 집계 기준 스위스의 1인당 GDP는 10만6000달러에 이른다.




    용어설명

    • * 1) 유럽자유무역연합(EFTA·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유럽경제공동체(EEC·현재의 EU)에 가입하지 않았던 유럽의 7개 나라가 EEC에 대항하기 위해서 영국이 중심이 되어 1960년에 설립한 자유무역 연합이다. 현재는 일부 국가가 탈퇴해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총 4개국이 가입해 있다.


    • * 2) 남미공동시장(Mercosur)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4개국이 참여하는 경제 공동체. 1995년 12월 15일 비준된 오루프레투 협약을 통해 창설됐다. 메르코수르는 외부 시장에 대한 동일한 관세 체제를 만들었고, 1999년부터는 회원국 사이 무역에서 90% 품목에 대해 무관세 무역을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