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현장
“2024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한국의 기업이 아프리카 대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을 맡은 2025년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가 될 것이다.”
남아공 출신인 티머시 디킨스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건물에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낮에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아프리카 전문 변호사로, 퇴근 후에는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 간 경제 교류를 돕는다. 주한남아공 상공회의소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의 상공회의소다. 그런 이유로 디킨스 회장은 남아공은 물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와 한국의 경제협력과 무역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0개 남짓한 한국 기업도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남아공 프리스테이트대와 영국 런던법과대(The University of Law)를 졸업하고 런던에 있는 로펌 링크레이스터의 변호사로 근무하던 디킨스 회장은 2013년 대륙아주 변호사로 한국에 왔다. 2010년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국내 로펌과 기업에서 외국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디킨스 회장은 “한국에 가기로 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도착한 다음부터는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면서 “서울은 외국인이 적응하기 편한 도시”라고 언급했다.
남아공과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모두 보유한 그였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과 아프리카 간 경제 교류가 워낙 드물었기에 남아공 변호사 자격증은 ‘장롱면허’ 신세를 면치 못했다. 대륙아주가 국내 로펌 최초로 아프리카 전담 그룹을 출범한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디킨스 회장은 “전 세계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후 많이 달라졌다”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이 큰 경제 부담을 초래했고,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 등으로 에너지 수급도 중요한 이슈가 됐다. 그 과정에서 ‘다변화’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 것이 전 세계가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디킨스 회장과 일문일답.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한국 기업의 시선이 달라진 것으로 보는지.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한국 기업이 아프리카 대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후속 조치가 중요한데 지금까지 흐름은 나쁘지 않다. 남아공이 G20 의장국을 맡은 올해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가 될 것이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유일의 G20 회원국이다. G20에는 사무국이 별도로 없기 때문에 회원국이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는다. 의장국이 1년간 사무국 역할을 하면서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남아공은 브라질에 이어 2024년 12월 의장국 지위를 넘겨 받았다. 2026년에는 미국이 의장국이 된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이후 국내 기업과 경제 단체 움직임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나.
“한국무역협회(KITA)가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와 협력해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를 발족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과 효성 등 국내 기업과 관련 분야의 교수,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도 참여해 투자 기회 등을 조언한다. KITA는 아프리카 사무소 개설도 추진 중이다. 기업 중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현재 시장을 배우기 위해 기반을 닦는 중인데, 자동차·물류·무역·건설·리조트·엔터테인먼트 등 계열사 역량을 결집해 결집해 전략적으로 아프리카 진출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움직임은 다른 한국 기업이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게 할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AfCFTA는 아프리카연합(AU) 55개국 중 에리트레아를 제외한 54개국이 가입하고 47개국이 비준한 ‘자유무역지대’다. 재화와 서비스가 아무런 장벽 없이 오가는 경제 공동체로 설계됐다. 2021년 공식 개시된 AfCFTA는 역내 상품 90%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앤 뒤 향후 전면 철폐할 계획이다. AfCFTA는 서명국 수를 따질 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자유무역지대로 꼽힌다. 회원국 인구는 14억 명, 54개 서명국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3조4000억달러(약 4650조원)에 달한다.
+ 세계 인구 중심축 아프리카로 이동
+ 갈수록 젊어지는 대륙
한국 기업이 남아공을 기반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하는 건 좋은 전략일까.
“(영미권 문화 영향이 강한) 생활과 비즈니스 환경의 친밀도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환경 측면에서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또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파이낸싱을 스탠더드은행1)을 비롯한 남아공의 주요 은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 도로와 공항 등 교통 인프라도 훌륭하다. 아프리카 54개국은 AfCFTA를 통해 지역경제공동체 중심에서 더 확장된 거대한 단일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14억 소비자와 연결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다른 아프리카 국가도 많이 다녔는지 궁금하다.
“한국에 살면 일본이나 중국 여행을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남아공에 살면서 나미비아, 보츠와나, 케냐, 모잠비크, 앙골라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많이 여행했다. 가족여행으로도 갔고 업무로 볼일을 보러 가기도 했다. 짐바브웨에는 삼촌이 살아서 방학 때마다 놀러 갔다. 낚시도 하고 사파리 투어도 했다.” 아프리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식량 안보와 교육·의료 질 개선 등 해결 과제가 많아 보인다. “그렇긴 하지만 인프라와 에너지, 핵심 광물 개발을 통해 경제 기틀을 마련하면 다른 부분도 따라갈 것이다.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약한 인프라다. 일례로 아프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인구 절반이 필요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남아공도 지난 2~3년 간 중대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다. 국영 에너지 기업 에스콤이 운영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에너지 부문의 규제가 풀리면서 민간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등장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 풍부한 광물자원도 성장 동력
중국은 아프리카의 핵심 광물 채굴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인프라를 깔아주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는데, 채굴한 광물을 가공해 다시 아프리카에 팔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그런 조건부 인프라 투자가 아니라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면 아프리카 경제도 잠재력을 꽃피울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도 점점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핵심 광물은 아프리카에서 가공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무더운 날씨와 척박한 환경, 쿠데타·내전·독재·부정부패 등으로 발전 가능성이 작은 곳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구리, 희토류 등 광물성 자원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아프리카는 금(전 세계 매장량 40%)과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을 넘어 기후 위기로 시급해진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핵심 광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우라늄, 다이아몬드, 철 등 주요 광물의 30%가 매장돼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미 전기차 양극재에 사용되는 코발트의 전 세계 1위 생산국이다. 탄자니아와 마다가스카르는 흑연2)이 풍부하다.
한국 기업이 아프리카에서 중국 기업보다 어떤 부분에서 앞선다고 보나.
“무엇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매우 좋고 전 세계에서 존경받고 있다. 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는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을 두루 갖춘 대기업이 많다. 핵심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의 현 상황은 그런 한국 기업에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5년 앞을 보고 가면 곤란하다. 30~40년 파트너십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 7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남아공과 에티오피아)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한국의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아프리카 국가에 청사진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접근하면 한국 기업에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가 인기인지.
“2년 전 남아공 방문 중 케이프타운에 들렀는데 마침 진행 중인 K팝 댄스 대회를 볼 기회가 있었다. 수천 명의 젊은이가 참가해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가사까지 외워 부르며 춤동작을 따라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아프리카 진출을 주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리스크는 따르게 마련이다. 정치 리스크도 모든 나라에 있다. 한국도 이전 정부와 현 정부의 원전 관련 정책이 다르지 않나. 간혹 현실과 인식 사이의 괴리가 큰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 파트너를 통해 정확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대륙아주의 아프리카 그룹이나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가 도울 수 있는 게 바로 그런 부분이다.”
용어설명
- * 1) 스탠더드은행
1862년 설립된 스탠더드은행은 남아공 1위(자산 기준)의 은행으로, 아프리카 대륙 내 20개국 1280여 개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스탠더드 은행 본사에 직원을 파견해 현지 마케팅 및 금융 서비스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남아공에는 삼성, LG, 한화, 현대 등 국내 대기업이 유통, 무역, 건설업에 진출해 있다.
- * 2) 흑연
연필이나 샤프심 재료로 잘 알려진 흑연은 전도성이 좋아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로 널리 사용된다. 음극재는 배터리 충전 과정에서 리튬을 저장하고, 방전 과정에서는 리튬을 방출하는 소재다. 한국에도 흑연 매장량이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은 임금과 제반 비용 등이 크게 오른 탓에 경제성이 떨어져 채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