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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리처드 폼프레트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 “고려인 네트워크도 韓 기업 경쟁력… ‘윈윈’ 기회 될 것”
  • 이용성 기자
  • 리처드 폼프레트 애들레이드대 교수/ 영국 레딩대 경제학,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경제학 박사, 현 존스홉킨스대 SAIS 겸임교수, 전 이슬람개발은행(IsDB) 컨설턴트

    “중앙아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핵심 광물이 풍부하고 중산층 비율이 만만치 않게 높다. (중략) 첨단산업 경쟁력이 높지만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좋은 경제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다.”

    리처드 폼프레트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는 ‘통상’ 인터뷰에서 한국의 중앙아시아와 협력 강화에 대해 이 같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중앙아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하며,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개최해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본격 가동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은 ‘인도·태평양 전략’ ‘한·아세안 연대 구상’에 이은 현 정부의 세 번째 지역 전략이다. 한국이 보유한 혁신 역량과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자원 등 잠재 역량을 접목해 새로운 발전·협력 모델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지난 2024년 6월 10~15일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하여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힘을 실어줬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700억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 고속철을 해외에 처음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대규모 가스전·화학 플랜트 건설 사업에 한국 기업 참여 가능성을 높였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파트너십 약정’을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진출 기대감도 켜졌다. 우리 정부의 K실크로드 협력 구상과 한·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의 개최에 대한 3국 정상의 동의를 끌어낸 것도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꼽힌다.

    중앙아시아가 한국과 경제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폼프레트 교수에게 서한을 보냈다. 애들레이드대는 호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노벨상 수상자만 5명 배출한 명문이다. 호주 전체 노벨상 수상자(15명)의 3분의 1을 이 학교가 배출했다. 폼프레트 교수는 서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중앙아시아 경제 전문가다. 영국 레딩대를 졸업하고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우디에 본부를 둔 이슬람권 최대 개발 금융기관인 이슬람개발은행(IsDB)1)과 일본 도쿄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관련 컨설팅 업무를 진행하는 등 전공인 개발경제학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방면에서 활약해 왔다. 국제 관계 분야의 세계 최고 대학원으로 평가받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도 겸임교수로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폼프레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주한 한국인(고려인)이 잘 정착한 덕분에 이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라며 “강대국 기업보다 한국 기업이 현지 진출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앙아시아 국가와 한국이 좋은 경제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중앙아시아는 인구가 약 8000만 명에 달한다. 영토에 비해 시장 규모가 아주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원유와 천연가스 등 핵심 광물이 풍부하고 중산층 비율이 만만치 않게 높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5% 내외의 견조한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원유 매장량 세계 12위로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이다. 우라늄과 크롬 매장량은 각각 세계 1ㆍ2위다. 우즈베키스탄도 우라늄, 텅스텐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매장량 기준 세계 4위의 천연가스 보유국이다. 첨단산업 경쟁력이 높지만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좋은 경제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 주요 국가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하면서 각각 독립했다. 이후 국가 주도형 계획경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다가 1999~2015년 자원 개발 붐으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라는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은 20년 전보다 훨씬 더 대외 개방도가 높아졌다. 외국 파트너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도 된다. 여행과 외환 거래도 이전에 비해 훨씬 간편해졌다.”


    러시아와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이 있지 않나.
    “중앙아시아 경제에도 다변화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속도는 느린 편이다. 천연자원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1991년 독립 당시 중앙아시아 5개국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았는데, 그나마 지난 30년 동안 꾸준하게 의존도를 낮췄다. 현재 이들 국가의 주요 경제 협력국(지역)은 중국, 유럽연합(EU), 러시아인데 항목에 따라 순위가 달라진다. 평균 연령이 약 28세로 젊은 인구 비율이 매우 높고 교육 수준도 높은 만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 분야의 성장 잠재력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아시아 최대 영토·경제 대국인 카자흐스탄의 경우 최대 교역 대상국은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워 2023년 러시아를 밀어내고 카자흐스탄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다. 카자흐스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일대일로 구상을 처음 발표한 곳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주변 65개 연결 국가와 물류 운송 활성화를 통한 영향력 강화다. 중국에서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카자흐스탄은 중국 입장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과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어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주한 한국인(고려인)들이 잘 정착한 덕분에 이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은 덜 위협적인 국가로 여겨지는데 이는 해당 국가 기업의 이미지에도 대체로 동일하게 적용된다. 강대국 기업보다 한국 기업이 현지 진출에 유리한 점이 있다는 얘기다. 지역 맹주인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5개국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 속에서 어떤 국가와도 기꺼이 협력한다는 균형적인 다변화(multi-vector)외교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특정 강대국으로 쏠림을 경계하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과 거래하는 걸 상대적으로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최대 도시인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시내 풍경.

    카자흐스탄은 중국, 러시아와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다. 축복일까, 저주일까.
    “둘 다 맞다.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중동 또는 유럽을 잇는 육로 운송의 핵심 연결고리다. 하지만 그런 입지로 인해 러시아의 ‘실지(失地)회복주의(irredentism·옛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EU가 영향력을 키우고 있긴 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기점으로 이 지역에서도 개입을 현저하게 줄였다.”

    ‘실지회복주의’는 타국 영토에서 인종·언어적 공통점이 있는 지역을 병합하려는 운동을 뜻한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영토의 이탈리아인 거주지를 점령하려는 ‘이탈리아 이레덴타(irredenta·미회수)’ 운동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합류한 것도 이웃 나라의 이탈리아인 거주지를 전리품으로 얻어가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조약2)에서 이탈리아가 원하는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이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의 파시즘 태동으로 이어졌다. 러시아가 ‘옛 영토를 되찾겠다’며 내세운 실지회복주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연결됐다.



    현지 고유 문화와 관련해 알아두면 좋은 팁이 있을까.
    “어느 지역에서나 마찬가지지만, 고유의 문화적 특성은 고용주-직원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련의 일부였던 74년 동안 이슬람의 영향력이 약해졌지만 일부 지역, 특히 농촌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지만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의 국가는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국민의 평균 80% 내외가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문화는 중동 이란과 차이가 있다. 히잡이나 차도르를 쓴 여성의 비율이 낮고 모스크도 소박한 편이다. 러시아 통치의 영향을 받아 술과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어떤 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 할까.
    “한국은 교역에서 해운 의존도가 절대적인데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해상운송이 불가능하다.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중국 장쑤성 롄윈강(连云港)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로 철도는 잘 운행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PLUS POINT

    해운 어려운 한⋅중앙亞 물류, 대안은?

    한국은 수출입의 99.7%를 해운에 의존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까닭에 전 세계 평균(85%)보다 의존도가 높다. 북한의 존재로 사실상 육상 교역이 막힌 상황에서 중앙아시아 내륙국과의 물류 문제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위치만 따지면 중앙아시아는 동서양을 잇는 곳에 있어 항공 허브로서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규모’가 문제다. 일반적으로 해상 물류에 비해 무역에서 항공 물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작은데 비용은 비싸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전체 무역에서 운송되는 항공 화물의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 0.17%에 불과한 반면, 금액은 31%를 차지했다. 현실적으로 육상과 해상 물류를 혼합한 형태밖에 답이 없다. 중앙아시아에서 오는 광물자원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나 중국 횡단 철도(TCR)를 이용해 러시아·중국을 거쳐 상하이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이나 부산항으로 오는 경로를 많이 이용한다. 만주 횡단 철도(TMR)나 몽골 횡단 철도(TMGR)를 TSR과 연결해 운송하는 방법도 있다. 철도를 이용할 경우에도 해상 물류에 비해 운임이 비싸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미국과 공급망 관련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를 관통한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용어설명

    • * 1) 이슬람개발은행(IsDB)

      1973년에 설립된 IsDB는 전 세계 여러 개발은행 중 이슬람 금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기관이다. 총 5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다. IsDB는 이슬람 금융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슬람 금융 상품을 제공하며, 회원국의 인프라나 에너지, 농업, 교육, 보건 등 분야의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도 하고 있다.


    • * 2) 베르사유조약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 관계를 확정한 회의. 전체 440조로 이루어졌다. 이 조약으로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잃고,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했으며, 상당한 크기의 유럽 영토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