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에너지전환 정책 둘러싼 기후소송… 투자자 보호 중단 말아야
  •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목표를 발표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 제4조에 따라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가결정기여(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로 설정해 유엔(UN)에 제출하고 있다. 각국은 국내에서 이를 이행하기 위해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등 탄소 중립을 향한 적극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에너지전환 정책 미흡해” 환경 단체, 기업·정부에 소송 제기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 소송이 증가하고 있는데, 기후 소송은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기업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미흡하다며 더 적극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을 요구하는 소송이다. 주로 환경 단체가 각국 화석연료 기업이나 정부를 대상으로 제소한다. 2024년 9월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화석연료 기업을 대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86건의 소송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한 시민단체가 세계적인 석유 회사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을 네덜란드 법원에 제소한 사건이 있다. 네덜란드 법원은 2021년 판정을 통해 로열더치셸그룹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9년 대비 45% 줄일 것을 명령했다. 기업이 아닌 정부에 대한 기후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2013년 네덜란드 시민단체 우르헨다는 네덜란드 정부의 온실가스 목표치 설정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네덜란드 법원에 제소해, 네덜란드 법원은 네덜란드 정부에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25% 이상 감축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또 2021년 독일 청소년들의 헌법소원 청구에 따라 독일연방 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 기후 보호법이 미래 세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조정했다. 2024년 5월에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시민단체의 청구를 받아들여 스위스 이산화탄소법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청구인의 인권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도 불구하고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규정되어 있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 헌법상과소 보호 금지 원칙 및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바 있다. 

    2023년 12월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후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에너지전환이 기업 성장 가로막아” 투자자-정부 소송도 잇달아

    한편 이와 상반되게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발표하는 석탄 생산 감축 계획 등으로 인해 외국인투자자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문제 삼는 소송도 증가하고 있다. 즉 외국인 투자를 받은 화석연료 기업이 자국 정부의 급격한 에너지전환 정책 영향을 받아, 투자자의 정당한 기대가 훼손되고 충분한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투자자가 투자 유치 기업의 정부를 투자자·국가간 분쟁 해결 제도(ISD)에 제소하는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기구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화석연료 관련 ISD 사건은 2023년 기준 총 219건으로, ISD 사건의 15%를 차지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독일 석탄 회사 RWE가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한 네덜란드 정부의 결정에 대해 제소한 사건이다.

    이러한 ISD 사건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효 중인 2584개의 투자보장협정(BIT),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협정을 통해 발생하게 된다. 그런 투자협정 중 가장 많이 ISD의 근거가 된 조약(2024년 9월까지 162건)은 에너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56개국이 서명하고 1998년 발효된 에너지 헌장 조약(Energy Charter Treaty)이다. 에너지 헌장 조약의 ISD가 유럽연합(EU) 국가를 상대로, EU에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 의해 자주 사용되자 이 조약이 EU의 파리협정 이행 약속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EU는 2024년 6월 27일(현지시각)에 에너지 헌장조약 일괄 탈퇴(withdraw)를 정식 통보했다. 2022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역시 기후 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ISD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4년 9월까지 ISD에 총 10건이 피소됐다. 이 가운데 에너지전환 관련 사건은 아직 없지만, 향후 화석연료 감축이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시행할 때 투자자의 보호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너무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비판, 너무 급격하게 이루어져 기업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판 모두 법적 소송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 지구적 문제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큰 목표하에 투자자 보호를 통한 투자의 자유로운 흐름 또한 놓치지 않도록 섬세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