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더 특별한 통상

더 특별한 통상 ③

美 대선으로 전환기 맞은 자율주행, 가속페달 밟나
韓, AI·반도체·통신 인프라와 시너지가 경쟁력
  • 이상용 LG전자 VS연구소장
  • 7월 31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 일대에서 ‘청계천 자율주행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뉴스1

    자율주행 기술은 운전자를 운전으로부터 해방시켜 더욱 안전한 이동과 궁극의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핵심으로, LG전자가 꿈꾸는 또 하나의 공간을 완성하는 기술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꿈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자율주행은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나 중국의 로보택시 기업 포니닷에이아이와 같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상용차 영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던 자율주행 시장은 최근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제너럴모터스(GM)의 크루즈, 포드와 폴크스바겐의 아르고 AI, 애플 자율주행 전기차 프로젝트 등 주요 기업의 자율주행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특히 승용차의 경우, 대부분 글로벌 완동차 기업이 레벨2에서 레벨3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기술적, 제도적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의 합작 법인인 모셔널도 자율주행 상용화 계획을 연기하고 인력 감축을 결정한 바 있는데, 이는 현재의 시장 여건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필자는 작년 독일에서 자율주행 레벨3 승용차를 시승할 기회가 있었다. 레벨3는 운전자가 운전 기능을 넘겨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제한된 영역에 한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부분 자율주행 단계’다. 당시 레벨3 동작은 고속도로 시속 50㎞ 이하에서만 가능해, 이 조건을 만족하는 장소를 찾아 꽤 멀리 이동했다. 이동 중에 레벨2+의 경험에 감동했으나, 약간의 기상 조건 악화로 레벨3는 결국 동작하지 않았다.

    사고 책임이 제조사에 있어서 동작 조건을 상당 부분 제한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규제나 소비자 인식 등의 환경 요인까지 고려한다면 완전 자율주행 승용차가 보급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상응하는 공간 경험도 당분간 제한적으로 등장하리라 예상한다. 예상보다 더뎌진 자율주행 발전 과정에서 우리나라 자율주행 기술 발전 현황과 당면 과제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韓 자율주행, IT·車 산업 융합이 최대 장점


    우리나라 자율주행 산업의 가장 큰 강점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산업 융합에 있다.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기술과 자동차 제조 기술의 결합은 분명히 자율주행 시대에 큰 경쟁력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자율주행차용 고성능 프로세서와 메모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자율주행차용 대형 디스플레이 개발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배터리 기업은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고성능, 고안전성 배터리 기술을 개발 중이다.

    또한 5G(5세대) 등 통신 인프라의 우수성과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은 차량 사물 통신(V2X·Vehicle to Everything)기반의 자율주행 서비스 구현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가 5G 기반의 V2X기술 개발과 실증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에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자율주행 솔루션 관련해서도 포티투닷, 라이드플럭스, 스트라드비젼 등 같은 업체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고 있으며, 서울, 제주 같은 주요 시범 운영 지역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자율주행 고도화 및 상용화가 되면 차량이 이동 수단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진화하게 된다. LG전자는 주행 보조 솔루션(ADAS)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독일 프리미엄 완성 차에 공급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ADAS보급 및 자율주행 시대에 맞춰 AI를 활용한 차량 내 공간 경험을 혁신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현주소와 과제


    자율주행 기술은 크게 인지, 판단, 제어의 3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차량 주변 환경과 사물을 인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 속도로 주행할지 판단해 이를 제어한다. 특히, 인지와 판단은 사람의 눈과 뇌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으로 자율주행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핵심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AI 기술과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서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지 기술은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에 도달했고, 판단 기술에도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가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자율주행이 상용화해, 보급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➀ 롱테일 문제와 데이터 경쟁
    ‘롱테일(long tail)’이란 발생 가능성이 작은 다수의 사건이 통계 분포의 한쪽에 길게 분포된 현상을 의미한다. 자율주행 상황에서는 롱테일 문제에 리스크가 매우 큰 경우를 포함할 수 있어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 보지 못한 사례를 예측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적 병목이다.

    실제로 GM의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가 자율주행 택시 ‘크루즈오리진’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중 작년 10월, 예기치 못한 추돌 사고로 운영 허가가 취소된 것도 이러한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롱테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방안은 방대한 데이터 취득 및 학습에 있으며, 이를 위한 대규모 인프라 확보는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만든다. 테슬라의 경우, FSD(Full Self-Driving) 감독 모드로 운행한 누적 주행거리는 2024년 8월 기준 16억 마일(25억7000만㎞)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이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 및 학습시켜 자율주행 신경망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실제 주행 데이터와 함께 그림자 모드(Shadow Mode)를 통해 운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개발중인 자율주행 기능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압도적인 수준의 주행 데이터와 이를 기술 고도화에 활용하는 데이터 선순환 구조는 테슬라 자율주행의 상용화 가시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데이터 수집을 위해 후발 주자로서 빠르게 따라가고 있지만, 선발 기업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 실제 주행 데이터 수집에 필요한 인프라와 슈퍼컴퓨터 같은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방대한 AI 데이터 학습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➁ 엄격한 소비자 인식
    미국자동차협회(AAA)가 지난 3월 발표한 연례 자율주행차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8%가 ‘자율주행차가 두렵다’고 대답했다. 이는 3년 전인 2021년 54%보다 증가한 수치다. 미국에서 발생한 자율주행차 관련한, 여러 사고로 공포감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국내 한 시장조사 전문 기업이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전국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자율주행차 관련 인식을 조사한 결과,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83.3%가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자율주행차 자체에 대한 신뢰도는 34.5%로, 아직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과연 자율주행차는 위험한 기술일까. 미시간대 교통연구소(UMTRI)와 버지니아 공과대 교통연구소(VTTI), GM, 크루즈가 공동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 운전자의 경우 100만 마일(약 161㎞)당 50.5건의 사고 발생률을 보이는 반면, 자율주행차는 그 수치가 절반 이하인 23건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 테슬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동안 오토파일럿 기술로 주행한 688만 마일(약 1100만㎞)당 1건의 충돌을 기록한 반면, 오토파일럿을 사용하지 않은 운전자의 경우 145만 마일(약 233만㎞)을 주행할 때마다 1건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처럼 자율주행차가 인간 운전자보다 안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가 유발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유독 엄격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부정적인 소비자 인식이 규제 완화를 막는 장벽이 되고, 보수적인 개발투자와 지원 한계로 이어져 기술 발전에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보수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사고 ‘제로(0)’에 가까운 완벽한 기술 실현을 앞당기고, 보급을 통해 소비자 인식 변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단계적 도입을 통해 소비자가 점진적으로 기술에 적응하고 경험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실제 사용 데이터를 축적하여 기술 개선과 안전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자율주행 기술의 윤리적 측면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활성화해, 기술 발전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소비자 이해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뉴빌리티 순찰로봇 ‘뉴비’. SK쉴더스


    트럼프 재선…자율주행 성장 둔화 韓, 경쟁력 제고의 기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자율주행 산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테슬라 같은 기업이 더 큰 규모로 자율주행차를 배포할 기회가 될 것이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도 자율주행 기술 경쟁 및 상용화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실적으로 상용화까지는 해결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자율주행 기술은 AI, 통신, 반도체, 배터리 등의 첨단 기술을 총망라하는 결정체다. 아직 우리나라는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인 차량용 센서 및 AI 등에서 미국 같은 기술 선도국 대비 기술 격차가 있는 상황이며, 다소 늦게 시작한 중국 역시 규제 완화 등의 기술적 지원을 통해 이미 우리나라를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진 현 상황이 선도국과 벌어진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자율주행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의 강점을 살리고, 자율주행의 핵심이 되는 AI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여건을 조성하며 교통 인프라, 법·제도 정비, 사회적 합의 도출, 국제 협력 분야를 주도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또한 자율주행 기술 발전과 보급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정부, 기업, 학계 그리고 소비자가 협력해 이 변화를 수용하고 이끌어갈 때, 우리는 자율주행 기술이 가져올 안전성 향상과 편의성 증대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