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더 특별한 통상

더 특별한 통상 ②

‘게임의 룰’ 다른 자율주행車, IT 인력이 승부 가른다
  • 김태진 모빌리티솔루션즈코리아 대표
  • “독일 현대차·기아 유럽 연구소에서 우수한 자동차 디자이너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게 요즘 현실입니다. 유럽 명문대 출신 젊은 디자이너는 자동차 산업보다 급여가 월등히 높고 상대적으로 조직 문화가 수평적인 정보기술(IT) 분야 UI/UX를 선호하기 때문이죠. 자동차 디자이너는 ‘자동차’라는 영역이 명확한 것이 한계입니다.” 얼마전 신차 공개 현장에서 만난 현대차·기아 디자인연구소 관계자의 귀띔이다. 자율주행을 이야기하는 데 뜬금없이 자동차 디자이너 구인난 이야기라 다소 의아할 수 있겠다.

    테슬라 등장 이후 요즘 자동차 업계는 말 그대로 혼돈의 시간이다. 배터리 전기차는 고사하고 자동차 업계 핵심인 기계공학 박사도 고개를 설레설레하는 ‘자율주행’ 테마를 제시한 테슬라가 스트레스로 여겨진다. 이후 전통의 글로벌 자동차 강호가 자율주행 개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자동차 디자이너 구인난과 맥을 같이하는 이야기다. 자동차는 기계, 전기차는 화학, 자율주행은 IT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테슬라 이전 전통의 자동차 산업은 경험과 개선을 통한 소위 도요타 생산 방식, ‘물건 잘 만들기(모노즈쿠리)’로 대표되는 전통의 제조업이었다. 주로 기계공학 출신이 주도적으로 개발을 이끌며, 최고경영자(CEO)나 연구소장 자리를 대부분 차지했었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비싸고 도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결과물을 디자인하는 자동차 디자이너도 인기 직종이었다.

    하지만 자율주행은 게임의 룰이 다르다. 기계공학 중심의 제조업은 이질감이 너무 크다. 컴퓨터나 데이터 처리 관련 유수한 IT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의 경쟁이다. 시장의 판이 바뀐 것이다. 2024년 3분기(7~9월)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을 기준으로 톱 10을 따져보자.

    톱 5는 도요타(273만6904대·전년 동기 대비 -4%), 폴크스바겐그룹(217만6363대·-7%), 현대차그룹(177만7300대·-3%), 스텔란티스그룹(117만4000대·-21%), GM(114만7000대·-13%)까지다. 6위는 놀랍게도 중국 BYD(113만4892대·+38%)다. 포드(109만5000대)를 7위로 밀어냈다. 8~10위는 혼다(91만대·-12%), 지리차그룹(81만1797대·+20%), 닛산(80만9000대·-3%)순이다.


    종업원 수 세계 1위 BYD, 연구개발 인력 10만 명 


    오로지 친환경차(EV+PHEV)만 판매하는 BYD의 약진은 공포의 대상이다. 미국이나 유럽 정부가 중국 전기차 관세를 100%까지 올리는 것이 이해될 정도다. BYD는 2024년 통산 450만 대를 판매할 것으로 예측돼 포드를 제치고 6위에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중순, 중국 선전 BYD 본사와 핵심 자동차 공장, 배터리 공장을 방문하면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친환경차만 놓고 보면 가격 대비 성능(소위 가성비)에서 현대차·기아를 한참 앞서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BYD 전기차는 현대차·기아 동급 모델보다 가격은 20~30% 저렴하지만 주행거리는 오히려 더 길다. 여기에 디자인 역시 아우디 출신 볼프강 예거 디자인 총괄의 지휘 아래 유럽 차 스타일에 중국의 대륙 기질을 조화롭게 녹여냈다.

    당분간 전기차 분야는 BYD의 가격 경쟁력을 따라갈 글로벌 경쟁 업체가 보이지 않는다. BYD는 전 세계 완성차 회사 중 유일하게 전기차, 배터리, 차량용 반도체를 모두 자체 생산하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그래서 전기차 업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공급망 위기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BYD는 지속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인하해 시장을 장악해 왔다.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면서 가격 우위를 극대화한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BYD그룹 종업원 수는 90만 명(2024년 10원 기준)으로 가장 많다. 두 번째인 도요타그룹이 40만 명을 넘어서는 것에 비하면 BYD가 얼마나 고용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종업원이 많다는 것이 경쟁력의 근원은 아니다. 놀라운 점은 10만 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이라는 점이다. 이 역시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다. 현대차·기아 연구개발 인력이 2만여 명 정도다.

    BYD는 2023년에만 1만 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채용했다. 연구개발 부문은 급여부터 다르다. BYD 일반직 대졸 신입사원은 월 1만5000위안(약 190만원)을 받는다. 연구직의 경우 기본 2만위안이고 명문대 출신이거나 컴퓨터공학 관련은 3만위안(약 580만원)으로 우대한다. 신입 사원 가운데도 일반직에 비해 연구직 급여가 두 배인 셈이다.

    BYD 선전 본사에서 만난 마이클 수 프로덕트 매니저는 “지난해 1만 명 연구개발 인력 가운데 1300명 정도가 중국 양대 공과대인 칭화대, 베이징대 졸업생이었다”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자율주행 관련한 데이터 사이언스와 커넥티비티 등을 연구할 컴퓨터공학 전공자”라고 소개했다. 그 역시 중국 10대 공대 중 하나인 우한대 컴퓨터공학 출신이다. 이런 폭풍 성장의 BYD지만 아킬레스건도 명확하다. 바로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 분야의 뒤처짐이다. 그래서인지 BYD는 지난해부터 IT 인력 채용에 적극적이다. 오죽하면 BYD 연구개발 인력 입도선매로 경쟁 업체가 불만을 제기 할 정도다.

    세계 자동차 톱 3를 공고히 하면서 승승장구하는 현대차 그룹에서도 자율주행은 최고경영진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단어가 돼 가고 있다. 관련 연구 부서는 현대차그룹 연구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찬밥 신세다. 기존 수직적 조직 문화에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급여 수준으로 IT 핵심 인재 스카우트는커녕 이탈마저 심화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수년째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면서, 거액의 투자비만 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레벨3 상용화 시도가 올해로 3년 차를 맞이했다. 미국 자동차기술학회(SAE) 기준에 따르면, 자율주행 레벨3은 ‘조건부 자동화’ 단계로 특정 상황에서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수준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쟁 업체도 자율주행 레벨3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꾸준히 자율주행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결과물 도출 및 양산 적용에서 발목이 잡힌 상태다.

    1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자율주행 콘셉트 카의 내부 디자인. 2 중국에서 운행 중인 전기 자율주행 버스.


    레벨3 자율주행 상용화, 혼다·벤츠 두 곳뿐


    현대차는 지난 2022년 특정 도로에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HDP(Highway Driving Pilot)’를 출시하기 위해 별도로 환경부에서 제네시스 G90의 배기가스 및 소음 인증을 받고 야심 차게 도전을 선포했다. 그러나 기술 완성도를 이유로 출시를 3년째 미루고 있다. 현대차 레벨3 HDP는 고속도로에서 운전자 개입 없이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다. G90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 기아 플래그십 전기차 EV9에 적용하려 했지만, 완성도 문제로 이마저도 무기한 연기됐다. 

    기아는 지난해 EV9 출시 당시 약 740만원에 HDP 옵션을 판매했다. 하지만 출시가 미뤄지자, HDP를 선택 옵션에서 제외하고 이 옵션을 구매한 고객에게 환불 조치를 진행한 바 있다. 현재 레벨3 자율주행 상용화에 성공한 곳은 혼다와 벤츠 두 곳이다. 다만 양산에 완전히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혼다 어큐라에 장착된 레벨3는 100대 한정 판매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제한된 환경에서만 최고 속도 60㎞/h로 운행이 가능하다. BMW도 비슷한 수준의 레벨3 기능을 신형 7시리즈에 일부 적용했다. 세 개 업체 모두 사실상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현대차그룹의 HDP는 이보다 높은 속도인 80㎞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만약 내년이라도 HDP가 양산돼 시속 80㎞ 이상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현대차그룹은 ‘가장 빠른’ 자율주행 레벨3 기술을 보유한 자동차 업체가 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레벨3 출시가 미뤄지는 이유로 IT 관련 인력난을 꼽는다. 레벨3 상용화 핵심 기술은 고정밀 지도와 자율주행 데이터 및 인지 센서의 조합을 의미하는 ‘센서 세트(Sensor Set)’ 최적화다.

    ‘자율주행의 눈’이라 불리는 인지 센서는 카메라·라이다·레이더·초음파 등으로 구성된다. 각 센서가 악천후 등 특정 상황에서 물체를 인지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 센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센서 세트’를 구성한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세단·SUV 등 승용차 모델이 100여 종이 넘는다. 하나의 센서 세트를 표준화하더라도 이를 모든 차량에 적용할 수 없다. 결국 비슷한 차급의 특정 모델마다 자율주행에 최적화한 센서 세트가 최소 10종 정도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율주행 분야 스타트업 관계자는 “가장 앞선 기술로 자율주행 레벨4를 개발하던 GM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등 자율주행 개발의 어려움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서 2020년 이후 보편적 기술로 보급된 레벨2나 레벨2 플러스에 머물러야 한다는 보수적인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지속적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미래 모빌리티 제조사의 핵심 역량으로 꼽히는 만큼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미래 차 시장을 주도한다는 전략에 따라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HDP 출시가 3년째 미뤄지고 있다”며 “양산 차에 도입할 경우 어떤 문제도 발생하면 안 되는 상황이므로,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中 자율주행 선두 샤오펑 CEO는 알리바바 개발자 출신


    블룸버그 에너지 담당 데이비스 피클링 컬런미스트는 “중국 선두권 EV(전기차) 업체의 경우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회사가 아닌 네 바퀴로 굴러가는 기계에 탑재하는 스마트폰으로 인식한다”며 “앱 같은 관련 소프트웨어가 경쟁 우위를 가름하는 것으로 자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전기차 업체 가운데 자율주행에서 가장 앞서가는 업체로 꼽히는 곳이 샤오펑이다. 2014년 창업해 업력 10년이지만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샤오펑은 테슬라 출신 자율주행 개발 엔지니어가 최고기술담당 임원(CTO)을 맡고 있다.

    샤오펑은 지난 10월 인공지능(AI) Day에서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을 선보였다. 자체 개발한 AI 컴퓨팅 칩, 레벨4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위한 플랫폼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AI Day는 올해로 6회째로 매년 새로운 모빌리티 SW기술과 신모델을 선보이는 행사다. 지난해에는 X9 MPV와 PX5 휴머노이드 로봇, 다양한 AI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공개했다. 이후 X9이 중국 시장에 공식 출시되고 샤오펑자체 운영 시스템에 OTA 업데이트를 적용했다. 허샤오펑(何小鹏) 샤오펑 CEO는 알리바바 모바일사업부 본부장을 역임한 개발자 출신이다. 그는 이날 AI 데이에서 자사의 첫 번째 독자 개발 AI 칩 ‘튜링(Turing)’을 공개했다. 이 칩은 고성능 40코어 프로세서로 구성돼 있으며 무려 300억 개의 파라미터를 처리할 수 있는 성능을 제공한다. 자율주행의 핵심 소재인 셈이다.

    허샤오펑은 “튜링 AI 칩은 자율주행 핵심 기술뿐만 아니라 로봇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 세계 최초의 칩”이라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에 새롭게 공개된 ‘창하이 플랫폼’은 샤오펑의 레벨4 자율주행 구현을 목표로 설계된 AI 플랫폼이다. 2025년까지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 출시를 목표로 한다. 이 플랫폼은 고속 연산 성능을 통해 자율주행 기능의 안정성을 한층 강화했다. 샤오펑의 신경망 시스템 ‘XNet’은 카메라 이미지 처리 속도를 12배 높이고 대역폭은 기존 대비 33배 향상했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주변 환경을 720도 시야로 확인하는 호크아이(Hawkeye)ADAS 시스템을 지원한다.

    분명한 것은 향후 10년 이내 자율주행 기술 완성도에 따라 자동차 업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기술이 중국 업체에 뒤처졌고 앞으로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2020년부터 적용하고 있는 자율주행은 레벨2 단계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이 들어간 부분 자동화에 속하는 기술이다.

    현대차는 제한된 구간에서 운전자와 자율주행 시스템 간에 운전 제어권 전환이 수시로 이뤄지는 레벨3를 개발 중이지만 올해를 넘겨 내년에도 상용화가 가능할지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관련 규제 완화에 앞서 수직적 조직 문화와 IT 인력난 해소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