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기후변화 대응이 전 지구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금융 부문의 역할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대출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하는 ‘금융 배출량(Financed Emissions)’ 관리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투자를 통해 고탄소 산업의 성장을 촉진할 경우 간접적으로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금융 배출량 산정이 넷제로(Net Zero·탄소 중립) 달성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글로벌 환경 정보 공시 플랫폼인 탄소 정보 공개 프로젝트(CDP)에 따르면, 전 세계 금융기관의 금융 배출량은 평균적으로 직접 배출량의 750배에 이른다. 이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북미의 경우 무려 1만1000배까지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권의 기후변화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고, 많은 금융기관이 ‘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1) 등 중요한 산업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GFANZ 산하 ‘넷제로 은행 연합(NZBA)’이 2024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 은행의 97%가 넷제로 달성을 위해 고배출 산업 부문에 대한 초기 감축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 중 약 65%는 구체적인 전환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부합하는 금융권의 실질적 대응으로 평가된다. NZBA 회원 은행은 2030년까지 과학 기반의 구체적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대출·투자·자본시장 활동 전반에 걸친 포트폴리오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인 HSBC는 2024년 1월, 은행권 최초로 ‘넷제로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넷제로 배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석유, 가스, 전력, 철강, 시멘트 등 주요 고배출 산업에서의 배출량 감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2030년까지 석유와 가스 부문 금융 배출량을 2019년 대비 34% 감축하고, 전력 부문 금융 지원으로 인한 배출 집약도를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76.6% 감축하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HSBC는 단순히 포트폴리오에서 고탄소 자산을 매각하는 대신, 고객의 탈탄소화 목표 달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장기적인 탄소 배출 감축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대한 대출 지원 축소만으로는 산업계의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끌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HSBC는 고객의 사업 모델 전환이 넷제로 목표 달성의 핵심이라고 보고 풍력, 태양광, 원자력, 바이오 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개발에 자금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고객의 탄소 배출 저감을 돕고, 궁극적으로 포트폴리오 탈탄소화를 실현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금융 배출량 측정이 과제
이처럼 금융권의 적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금융 배출량의 정확한 측정과 관리는 여전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표준화된 측정 기준 부재, 신뢰성 높은 데이터베이스 부족, 기후 영향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산업계 합의 미흡 등이 주요 도전 과제다. 이에 금융 배출량 측정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탄소회계금융연합체(PCAF)’가 있다. PCAF 역시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글로벌 연합체로, 금융 부문의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를 위한 표준화된 기준을 제시한다. PCAF는 자산군별로 특화된 배출량 산정 방법론을 제공하며, 현재 일곱 개 자산군에 대한 산정 지침을 통해 금융기관의 포트폴리오 배출량 측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금융기관의 포트폴리오 배출량 산정을 위해서는 투자·대출 대상 기업의 신뢰성 있는 배출량 데이터가 필수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나 비상장기업의 경우 자체적인 측정 역량이 부족하거나 데이터의 품질이 낮아 추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금융 배출량 측정 및 관리는 아직 초기 단계다. 2024년 3월 CDP 보고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응답 기관(12곳) 중 아홉 곳이 금융배출량을 산정했으며, 이 중 검증받은 기관은 여섯 곳이었다. 물론 글로벌 금융기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다. CDP 응답 기관(405곳) 중 257곳(63%)만 금융 배출량을 보고했다. 실제 검증까지 진행한 기관은 84곳으로 오히려 국내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금융기관의 금융 배출량 관리 및 관련 공시 요구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급망 내 기업에 두 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금융기관이 거래 기업의 탄소 관리 수준을 중요하게 평가하면서, 대기업이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소 감축 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기업의 금융 조달 과정에서 탄소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주요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탄소 배출 측정·관리를 위한 기본적인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당장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고 이에 대해 단계적으로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중소기업의 탄소 배출량 측정 및 감축 계획 실행을 위한 지원 확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결국 금융 배출량 관리는 금융기관만의 과제가 아닌, 기업 공급망 전반의 저탄소 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공급망분석센터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대한 상시·전문적 분석 역량을 갖춘 국내 유일의 공급망 분석 전문기관으로, 2022년 2월 9일 출범했다. 정부 부처, 무역관, 업종별 협회 및주요 기업 등으로부터 수집된 주요 산업 관련 국내외 동향을 심층 분석하고, 정부·민간의 대응 전략 수립을 지원하며 ‘글로벌 공급망 인사이트’를 주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용어설명
- * 1) 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
Glasgow Financial Alliance for Net Zero의 약자로, 2021년 4월 금융을 통해 넷제로를 달성하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전 세계 45개국 450여 개 금융사가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