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환경 분석 리포트
지난 몇 년간 식료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원재료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더라도 식료품 제조사와 소매 기업이 무한정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지난 몇 년간의 가파른 인상 속도를 지속하다가는 소비자의 거센 반발과 외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에 식료품 업계는 ‘가격을 더 이상 인상할 수 없다면,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는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판매량을 늘리면서 수익을 개선하고 재투자하는 플라이힐(flywheel)1)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판매량 증대를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로 ‘대량 판매에서 소량 판매로의 전환’이 부상하고 있다. 소비자의 형태와 니즈, 취향을 세부적으로 파악해 이를 충족하는 것이다. 제조 및 유통시스템과 마케팅 메시지를 맞춤형 소량 판매로 전환하면, 기업과 소비자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식료품 업계는 소비자 개개인이 식료품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맞춤형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이 파악해야 할 소비자 정보는 무엇일까. 우선 소득, 연령, 가족 수 등 인구학적 기본 요소가 소비자의 구매 품목과 지출액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식료품에 대한 소비자 생각과 태도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때 이러한 생각과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음식을 건강한 삶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최대한의 절약이 가장 중요한 사람도 있다. 이러한 생각과 태도가 곧 ‘푸드 정체성(food personality)’이다. 딜로이트는 소비자의 식료품 쇼핑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이들의 구매 품목과 지출액, 구매 형태의 동인 등을 분석했다.
다섯 가지로 나뉘는 푸드 정체성
식료품 쇼핑 유형을 푸드 정체성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앙드레 보헬 도테리브는 미식가부터 대식가까지 아우르는 분류 체계를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글로벌 트렌드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면서도 지역별 핵심 차별점을 반영해 현대 소비자에게 걸맞은 분류 체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새로운 분류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SNS), 쿠킹 쇼, 여행, 맛집 탐방 등 다양한 소비자 경험이 글로벌 미식 문화를 만들고 있다. 미식가에게 음식은 열정이자 삶의 큰 즐거움을 누리는 하나의 방식이다. 또 바쁘고 치열한 현대인의 삶에서 일부 소비자는 시간과 수고를 줄이기 위해 편리한 음식을 찾는다. 식품 인플레이션이 높게 지속되며 식료품 지출에 민감한 소비자가 증가하는가 하면, 일부 소비자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항상 절약을 우선시한다. 이들은 지출을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값싼 기본 식재료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의학 발전, 수명 연장, 식품과 건강 연관성에 대한 인식 개선 등으로 인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만드는 기반으로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화되고 있다. 또 기후변화 우려가 심화하며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이들에게 음식은 지속 가능성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딜로이트는 서베이를 실시해 소비자 푸드 정체성을 △미식가형 △편리 추구형 △절약형 △건강 중시형 △친환경 추구형 등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대부분 소비자는 상황에 따라 다섯 가지 정체성을 모두 드러낸다. 하지만 딜로이트 서베이 결과, 대부분 응답자(95%)는 개인별로 두드러지는 하나의 푸드 정체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서베이는 전 세계 성인 4만 8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12월~2024년 3월 진행됐다.
글로벌 평균을 집계한 결과, 절약형(28%)과 건강 중시형(27%)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았다. 두 유형을 합치면 절반이 넘었다. 글로벌 평균에서 미식가형(13%)과 친환경 추구형(7%)은 상대적 비율은 낮지만, 음식에 대한 그들만의 열정은 여느 유형보다 뜨겁고 지출 의향 액수도 단연 컸다. 또한 이들 유형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와 비교해 절약형과 건강 중시형은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국가와 지역별로 뚜렷한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평균과 비슷하게 절약형(28%)이 가장 많았고, 건강 중시형(26%), 편리 추구형(22%)이 뒤따랐다. 미식가형(14%)과 친환경 추구형(6%)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그쳤다. 독일, 프랑스, 폴란드 등 서유럽 국가는 절약형이 가장 많았고, 큰 격차를 두고 건강 중시형이 뒤따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지중해 국가는 서유럽 국가와 반대로 건강 중시형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큰 격차를 두고 절약형이 뒤따랐다.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는 편리 추구형이 우세했다. 특히 미국과 호주에서 편리 추구형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영국은 편리 추구형이 절약형보다 많았다.
푸드 정체성에 따른 식료품 쇼핑 형태 차이
푸드 정체성은 소비자의 구매 품목과 품목별 지출액에 영향을 준다. 건강 중시형은 신선 식품 지출액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편리 추구형과 절약형은 신선 식품 지출액이 가장 적고 냉동 및 포장식품 지출액이 가장 많았다. 한편, 건강 중시형과 절약형은 의도는 다르지만, 탄산음료를 거의 구매하지 않고 대신 물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식가형도 탄산음료를 거의 마시지 않고, 대신 주류를 상대적으로 많이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절약형과 건강 중시형은 주류 비중이 작았다. 친환경 추구형은 반려동물 사료에 대한 지출액이 여타 유형보다 많았다.
외식에서도 푸드 정체성에 따른 분명한 차이가 확인됐다. 절약형과 편리 추구형은 배달 음식을 선호한 반면, 건강 중시형은 캐주얼 및 파인 다이닝(fine dining)2)을 선호했다. 미식가형은 파인 다이닝과 주류 지출액이 훨씬 많게 나타났다. 의외로 친환경 추구형이 파인 다이닝과 주류를 미식가형보다 많이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유형별로 구매 품목별 지출액 격차가 글로벌 평균에 비해 크게 나타났다. 절약형과 건강 중시형은 신선 식품 비중이 높은 반면, 편리 추구형과 미식가형은 신선 식품 비중이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의도는 다르지만, 절약형과 건강 중시형은 직접 요리하는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은 반면, 편리 추구형은 포장 식품을, 미식가형은 파인 다이닝이 아니면 아예 포장 식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주류 소비는 미식가형과 친환경 추구형에서 비중이 높았다. 외식의 경우 건강 중시형과 미식가형, 친환경 추구형은 파인 다이닝과 주류를 평균보다 훨씬 많이 즐긴 반면, 절약형은 훨씬 적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리 추구형 또한 주류를 평균보다 적게 구매했다. 특이하게도 반려동물 사료 구매 비중이 건강 중시형을 제외하고 모두 글로벌 평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는데, 반려동물 사료의 경우 수입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푸드 정체성 유형별 고물가 대응 방식
지난 2년간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푸드 정체성의 유형을 막론하고 모든 소비자의 식품 절약 지수(FFI·Food Frugality Index)가 상승했다. 딜로이트 식품 절약 지수는 글로벌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를 바탕으로, 식료품 매장에서 나타나는 주요 절약 형태 여섯 가지를 분석해 지수화 한다. FFI가 높다는 것은 소비자 재정 상태가 악화하거나 식료품 가격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결국 식료품 공급 및 유통 업계의 가격 결정력이 약화하는 전조일 수 있다. 음식에 대한 관점에 상관없이 모든 소비자가 물가 압력에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것을 의미해서다. 결국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가라는 점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타난 절약 형태는 가정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식재료를 줄이는 것이었다. 필요보다 적게 구매하는 형태는 최후의 수단으로 나타났다.
절약 행위를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했는지는 유형별로 차이가 있었다. 절약형은 여섯 가지 절약 형태를 모두 보였고, 미식가형과 친환경 추구형은 가장 적은 수의 절약 형태를 보였다. 나머지는 중간 정도의 절약 형태를 보였다. 친환경 추구형과 미식가형은 모두 고물가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씀씀이를 보였지만, 미식가형은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친환경 추구형은 더 비싸더라도 지속 가능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다만 절약형이라고 해서 철저하게 절약만 한 것은 아니고, 미식가형이라 해서 절약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섯 가지 절약 형태 중 절약형 응답자 절반 이상이 행동에 옮겼다고 답한 것은 두 가지뿐이었으며, 미식가형 중에서도 최소 10%는 여섯 가지 절약 형태를 모두 실행한 적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절약형은 식재료 낭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반면 나머지 유형은 모든 절약 형태 비율이 글로벌 평균보다 낮았다. 건강 중시형은 식재료 낭비 절감에 주력한 반면, 높은 물가에도 딱히 저가 식재료를 찾지 않았다. 편리 추구형은 식재료 낭비를 절감하고 저가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으로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필요보다 적게 구매하는 비율은 글로벌 평균보다 낮았다.
푸드 정체성을 활용한 식료품 업계의 행동 전략
향후 수년간 식료품 업계에선 판매량 증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판매량을 늘리려면 맞춤형 소비 니즈에 발맞춰 대량 판매에서 소량 판매로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한 행동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의 식료품 정체성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다. 맞춤화 전략은 고객 개개인의 지배적인 식료품 정체성 유형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충성 고객 우대 프로그램의 설문 조사 등을 활용해 고객의 식료품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타깃형 판매다. 유형별 지출액 및 지출 품목 간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해, 판매 및 마케팅 전략을 적절히 혼합, 분리해 실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큰손 구매자에 속하는 미식가형과 친환경 추구형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면 판매량 증대에 도움이 된다. 특히 이들 유형은 젊은 층 소비자가 대부분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유형별로 소비자가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채널을 파악해 멀티 채널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다. SNS에서는 새로운 레시피와 와인 페어링을 찾는 미식가형을, 온라인 카페에서는 식료품 지출 절약 팁과 쿠폰 정보를 공유하는 절약형을,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배달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편리 추구형을 각각 공략할 수 있다.
유형별로 각기 다른 마케팅 메시지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식가형과 건강 중시형은 모두 프리미엄 육류를 선호하지만, 구매 동인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메시지를 적용해서는 판매 증대 효과를 얻기 어렵다. 미식가형에게는 마블링이나 특수 숙성 방식 등 품질을 강조하는 한편, 건강 중시형에게는 유기농 인증, 무항생제, 저지방 등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식료품 정체성 유형별 기본적 분석을 발판 삼아 데이터 기반 판매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객 세밀화와 맞춤화를 강화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와 피드백이 쌓인다. 유형별 특징과 소비 형태에 대한 더욱 심도 있는 인사이트를 구축하면, 대량 판매에서 소량 판매로의 전환을 한층 가속할 수 있다.
용어설명
- * 1) 플라이힐(flywheel)
일단 회전을 시작하면 관성에 따라 회전을 계속하는 기계 부품이다. 미국 아마존은 선순환의 수레바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플라이힐을 기업의 성장 원리로 내세웠다.
- * 2)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좋은’이라는 뜻의 파인(fine)과 ‘식사’를 뜻하는 다이닝(dining)의 합성어로 비싼 고급 요리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