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현장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자 사회주의 국가로 정치, 경제, 사회에서 여전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해외 법인 설립과 외국인직접투자(FDI) 등에 관한 법이 구비돼 있지만, 재량권이 많고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베트남에 진 출한 한국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일도 부지기수다. 다행스러운 건 한국이 베트남 누적 최대 투자국 1) 으로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과 주호찌민 총영사관이 베트남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만나달라고 하면 응답도 하지 않던 지 방정부 관료들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이 보내는 공문에는 빠르게 답한다.” 권기만 산업통상자원부 베트남 호찌민 상무관은 “지난 3년간 베트남 호찌민에서 상무관으로 근무 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며 “한국과 베트남의 무역은 더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양국 간 관계는 더 돈독해질 것”이라고 했다. 2021년 2월부터 2024년 8월까지 베트남 호찌민 상무관으로 근무한 권 상무관은 현재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는 “향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할지 알 수 없지만,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남은 공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베트남 경제 수도 호찌민에서의 이야기를 권 상무관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베트남 호찌민 상무관으로 근무하게 된 계기는.
“해외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나라를 고민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동남아 개도국 상무관을 지원했다. 성장세가 멈춘 선진국 보다 여전히 활발하게 성장하는 동남아 개도국에서 일하고 싶었다. 베트남의 경우 기본적으로 한국과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다. 한국이 누적으로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인 것도 있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것도 있다. 그러니 대사관과 총 영사관이 힘이 있다. 2021년 2월 베트남에서 근무를 시작해 2024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되돌아 보면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베트남 호찌민에서 근무한 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수도 하노이도 있는데, 호찌민으로 가게 된 이유는.
“흔히 베트남 북부에 있는 하노이는 정치 수도, 남부에 있는 호찌민은 경제 수도라고 한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경직돼 있고 통제된다고 생각하지만, 호찌민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프랑스 식민지 때부터 경험한 자본주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 남부와 북부는 경제력에서도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인다. 베트남에 63개의 성(省)과 시(市)가 있는데 남부에 있는 6개 성과 시가 베트남 전체 세수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력이 막강하다. 남부에 있는 호찌민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호찌민을 선택했다.”
상무관으로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상무관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간 네트워크 연결, 비즈니스 협업을 돕는다. 3000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 남부에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의 현지 동향을 파악하고, 한국 기업끼리 협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첫 번째 업무다. 두 번째는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돕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한국 기업을 돕고 변호하는 일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베트남 정부, 관료와 네트워크를 쌓는 일이다. 이 세 가지 역할이 사실은 전부 연결된다.”
한국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해 준 사례는.
“한국 중견 풍력발전 회사가 베트남에서 풍력발전 사업을 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관련 기자재를 수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기자재를 운반하는 베트남 현지 기업 간 민사 분쟁이 발생하면서 기자재가 항만에 억류되는 일이 있었다. 한국 풍력 발전 회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특히 기자재를 빨리 들여와 상업 운전을 시작해야 계획한 높은 단가로 발전한 전기를 팔 수 있는데, 기자재가 억류되면서 상업 운전이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한국 기업은 베트남 항만청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시에 베트남 법원에 소송을 내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항만청과 법원은 꿈쩍도 안 했다. 그래서 총영사관이 나서 베트남 중앙정부와 항만청에 공문을 보내고 법원에 수시로 연락하는 등 협조를 구했다. 당시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라 통행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우리가 계속 연락하고 찾아간다고 하니, 우리의 절박함을 알았는지 빠르게 해결해 줬다.”
한국 원자재 전문 기업을 도와준 사례도 있다더라.
“한 한국 원자재 전문 기업이 베트남에서 제강 분진을 수거, 산화아연을 생산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강 분진 수거 범위를 특정 지역에서 베트남 전역으로 넓혀야 했다. 그래서 베트남 성 당국에 신청 했는데, 1년이 넘도록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총영사관으로 협조 요청이 와서 성 당국, 중앙 정부와 다양하게 접촉해 해결한 사례다. 기업이 요청할 때는 만나주지 않던 베트남 관료를 10차례 이상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줬고, 관련 전화 통화 도 수십 차례 했다. 특히 성 당서기와 인민위원장 을 만나 면담하면서 베트남 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제강 분진을 처리하는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총 영사관이 나서니 딱 5개월 만에 승인이 떨어졌다.”
베트남 진출을 앞둔 한국 기업에 할 조언은.
“먼저 시장조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이 법체계다. 관련 법과 규제를 잘 조사하고 와야 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베트남한인상공인연합회 (KOCHAM·코참) 등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베트남 진출을 검토해야 한다. ‘급하면 무조건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서두르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인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사장이고, 너희를 먹여 살린다’는 생각으로 베트남인을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친구 간 우정은 넓은 바다도 메운다’라는 베트남 속담이 있다. 베트남인을 협력 파트너라고 생각해 존중해야 한다.”
베트남 진출 시 유망한 업종은.
“개인적으로 정보통신(IT), 소프트웨어(SW) 분야와 제조업 중 전기·전자 등 첨단 분야에 대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 많이 진출한 만큼 숙련된 인력을 한국에 공급하는 데도 유리하다. 베트남을 소비국으로 볼 필요도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음식, 한국 화장품, 한국 옷이 잘 팔린다. 베트남의 의료 시장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

용어설명
- * 1) 베트남 누적 최대 투자국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한국은 1988년부터 2024년 8월까지 누적 기준 베트남 누적 최대 투자국이다. 투자 건수와 투자 금액에서 각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누적 투자 건수는 1만48건으로 2위 중국(7543건·홍콩 포함), 3위 일본(5420건), 4위 싱가포르(3792건)를 압도하고 있다. 누적 투자 금액에서 한국은 약 878억달러로 싱가포르(2위·807억달러), 일본(3위·792억달러), 중국(4위·660억달러·홍콩 포함)에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