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의 세계 돋보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그동안 견고했던 고금리정책을 포기했다. 연준은 9월 17~18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5.25~5.50%에서 4.75~5.00%로 0.5%포인트 내렸다. 이로써 통화정책 기조가 금리를 인하하는 국면으로 전환됐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이다. 연준과 FOMC 자료에 근거할 경우, 연준의 정책 금리는 2025년 말 상한 3.50%까지 예상된다.
시장에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금리 인하를 예측하는데, 이는 현재 금리 수준이 역사적으로 과도하게 높아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낮아진 지금의 상황에서 자칫 내수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향후 미국의 실물경제, 특히 고용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금리 인하 속도가 연준과 민간의 예상보다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미국의 정책 금리가 내려가면 내려갔지 결코 올라갈 일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정책 금리를 따라서 인하하기 시작했다. 물론 통화정책의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정책 금리는 한국 경제의 상황, 한국의 물가, 한국의 금융시장 불확실성만을 보아야 하겠지만, 한국은행이 그동안 금리인하를 주저했던 것은 현실적으로 연준보다 먼저 금리 인하를 하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부담이 해소됐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여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은 금리 역전 문제는 해소돼야 하므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속도는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수출에 미치는 이론적 영향
미국의 금리 변동이 우리나라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연결 고리를 이론적으로 살펴보면, 금리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주고 물가가 다시 환율에 영향을 주고 환율의 변동이 수출 경쟁력을 변화시키는 프로세스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금리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빠르게 인하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미국 달러의 유동성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이를 금리·물가 간 경로에서 보면 미국 물가가 한국 물가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물가와 통화가치의 역의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높아져, 결국 원·달러 환율은 하락하는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 환율과 수출 간 관계에서 보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수출 가격이 국제통화인 달러로 표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소한 미국 시장과 한국 시장에서는 우리 제품 가격이 미국산 제품 가격보다 비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한국산 제품과 미국산 제품에 기술이나 품질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데도,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가격 상승)한다면, 당연히 제품 수요가 감소해 우리 대미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요약하면 미국의 빠른 금리인하는 우리 수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론과 현실의 차이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일치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사례를 보면, 연준의 금리 변동이 물가를 거쳐 환율 변화에 유의미한 영향이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미국 금리는 한국보다 높았던 금리 역전 기간에서 이론상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크게 높아져야 하나,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매우 안정적인 추세를 보였다.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았던 사례 중 하나인 2006~2007년의 경우 원·달러 환율은 900원대를 장기간 유지하며 원화가 초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최근의 외환시장의 모습을 보면 한국과 미국 금리의 역전 현상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1300원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1400원대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최근 원화 가치의 하락이 미국 금리가 우리 금리보다 높기 때문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그리고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로 안전자산에 대한 보유 동기가 강화되면서, 통화중에서 최고의 안전자산인 달러가 선호되기 때문에 강달러가 지속되는 것이다. 마치 최근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해를 넘어가면서는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가 한국의 금리 인하 속도보다 빠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재의 강달러 현상이 완화되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로 연준의 피벗(pivot·통화정책 기조 전환) 이후 많은 연구 기관은 원·달러 환율 수준이 현재 1300원대에서 2025년에는 1200원대로 하락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에 충격을 주는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항상 그렇듯이 예기치 못한 쇼크가 온다면 원·달러 환율의 방향은 예상을 뒤엎고 거꾸로 갈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럼 우리 수출 경쟁력은 환율이 하락하는 만큼 손해를 볼 것인가는 다소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근거를 들면 첫째, 금리가 물가 수준의 변화를 거쳐 교역 조건까지 이르기에는 현재 미국 금리 수준이 아직도 높다는 점이다. 금리 변동으로 미국과 한국의 상대 물가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금리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국면은 아니다. 오히려 물가 상승률에 맞춰 금리가 변동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금리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연준의 금리 인하로부터 강달러가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금리-물가-환율의 연결 고리를 통한 결과가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됨에 따른 주요 통화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판단된다. 또한 그런 과정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 따라서 달러 약세 그리고 원화 강세가 확연하여 의미 있는 가격 경쟁력으로 현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 미국 시장만 놓고 본다면 연준의 금리 인하는 오히려 우리 수출 경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금리 인하는 미국 소비자의 내구재 구매력을 높여 준다. 즉 우리 대미 수출의 주력 품목인 자동차, 가전 등에 대하여 미국 소비자의 구매력이 높아져 수출이 확대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미국 기업의 투자 심리가 개선되면서, 우리 자본재에 대한 수요가 살아날 여지가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본다. 다만, 이는 우리 수출 기업에만 돌아가는 이점은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독일, 일본, 중국 등 많은 공업 국가가 우리와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환율과 수출 간 인과관계가 최근 들어 낮아졌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 수출 산업이 과거에는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가격보다는 기술과 품질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주요 우리 기업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전략이 한국에서 미국 시장으로 직접 수출하는 것보다 미국 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는 점도 환율과 수출의 인과관계가 약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하지만 않는다면 환율의 수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불확실한 대외 여건 관리해야
최근의 금융시장과 교역 시장의 변동성이 급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금리, 환율 등이 크게 움직이면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함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이 경우 그 과정에서 실물경제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요약하면 향후 글로벌 시장의 수급에 변화 압력이 높아지면서 우리 수출 경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즉 금융이 실물을 뒤흔드는 것이다. 금융시장이 중장기적인 추세는 있지만, 단기적으로 큰 파동을 그리면서 변동성이 급증하는 것은 수출 기업에는 더 안 좋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시장에서 굳건히 위상을 지키는 기업도 있다. 즉 대내외 경제 여건 변화에도 탄탄한 수요가 있는 스테디셀러 기업은 시장 여건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
다행인 것은 우리 수출 기업도 그러한 능력이 많이 높아졌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위기 대응 능력이 일정 수준 올라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향후 전개될 글로벌 시장의 혼란기에서도 어려움을 잘 극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우리 수출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진행 중인 많은 지정학적 리스크, 주요 수출 시장에서의 통상 환경변화,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공급망 불안 등의 비시장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결국 국제 금융 시장의 혼란을 유발하고 우리 수출의 불확실성을 높이게 된다.
정책 당국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데 집중돼야 할 것이다. 또한, 금리 및 환율과 수출 관계가 상당 부분 약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중소 수출 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업의 환 변동 위험이 커지지 않도록 정책 당국이나 협회 차원의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가 확립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