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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 해외 현지 보고 튀르키예 에너지 자립·탄소 중립 숨은 공신 ‘韓 조선’
  • 이요섭 튀르키예 이스탄불 무역관
  • 1 튀르키예 제1호 등록 드릴십 ‘파티흐’. 2011년 한국에서 건조한 드릴십이다. Adayacht

    글로벌 경제 강국 도약을 꿈꾸는 튀르키예가 직면한 주요 당면 과제는 ‘에너지 자립’과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달성이다. 이러한 목표는 튀르키예 산업 전반에 걸쳐 확대 적용되고 있으며, 조선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튀르키예는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흑해 지역 등에서 천연가스 탐사 활동을 활발히 수행해 왔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23년부터 흑해 사카리아 가스전에서 천연가스 생산을 본격화 했다. 2023년 천연가스 생산량은 8억723만㎥로, 이는 2022년 생산량 대비 112.6% 증가한 수치다.

    2023년 9월에는 육상 처리 시설과 연결된 파이프 라인을 통해 북서부 종굴다크 지방의 사카리아 가스전에서 본토로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사카리아 가스전에서 가스 생산이 본격화하면, 튀르키예의 연간 가스 수요 중 약 30%에 해당하는 500억㎥를 충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튀르키예의 에너지 자급률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카리아 가스전 개발에 한국에서 제작한 ‘드릴십(Drill Ship)’이 사용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드릴십이란 새로운 유전 및 가스정의 탐사 해양 시추 또는 과학적 시추 목적으로 설계된 상선을 일컫는다. 시추선이 본격적으로 자원을 채굴하기 전 해당 지역을 조사해 자원의 존재 여부와 그 양을 조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자원을 채굴하기도 한다.

    사카리아 가스전 개발에 투입된 드릴십의 이름은 ‘파티흐(Fatih)’다. ‘정복자’라는 의미다. 이 드릴십은 2011년 한국의 H 사에서 건조됐으며, 몇 차례 소유주가 변경된 후 2017년 11월에 튀르키예 국영석유공사(TPAO)에 인도돼 튀르키예 최초의 드릴십으로 등록됐다. 2020년 8월에 파티흐 드릴십이 투입된 ‘Tuna-1’에서 가스전이 발견됐다고 튀르키예 국영석유공사가 발표하면서 사카리아 가스전 개발이 본격화됐다.

    2 한화오션이 건조한 FPSO. 한화오션

    튀르키예는 해양 에너지자원 개발을 위해 드릴십 네 척, 지진 탐지선 두 척,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1) 한 척을 소유하고 있다. 이 중, 앞서 언급한 파티흐를 포함한 드릴십 네 척은 모두 한국에서 건조됐다.

    파티흐는 튀르키예가 처음으로 도입한 드릴십이다. 이 드릴십은 2017년 튀르키예 TPAO에서 구매했으며, 사카리아 가스전 탐사에 사용됐다. 파티흐의 길이는 229m, 폭은 36m, 무게는 5만1238t이다. 이 드릴십은 고압력 환경에서도 최대 1만 2200m까지 드릴 작업이 가능하며, 6m 높이의 파도에서도 안정적으로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두 개의 타워를 활용해 최대 1750t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야부즈(Yavuz)’는 튀르키예의 두 번째 드릴십이다. 이 드릴십은 2018년 튀르키예 TPAO에서 구매했으며, 2011년 한국 H 사에서 건조됐다. 야부즈의 길이는 230m, 폭은 36m, 드릴링 타워는 103m다. 야부즈는 고압력 환경에서 최대 1만2200m까지 드릴 작업이 가능하고, 6m 높이의 파도에서도 평형을 유지할 수 있으며, 듀얼 타워 디자인을 채택해 동시 작업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카누니’는 튀르키예가 도입한 세 번째 드릴십이다. 이 드릴십은 2020년에 튀르키예 TPAO에서 구매했으며, 2012년 한국 S 사에서 건조했다. 카누니의 길이는 227m, 폭은 42m이며, 고압력 환경에서 최대 1만1400m까지 드릴 작업이 가능한 성능을 자랑한다.

    ‘압둘하미드 한(Abdülhamid Han)’은 튀르키예의 네 번째 드릴십이다. 이 드릴십은 2021년 TPAO에서 구매했다. 압둘하미드 한의 길이는 238m, 폭은 42m, 드릴링 타워는 104m다. 이 드릴십은 고압력 환경에서 최대 1만2200m까지 드릴 작업이 가능하며, 한국의 D 사가 원래는 2011년에 미국 시추사 벤티지 드릴링으로부터 수주한 드릴십이었으나, 2015년 계약이 이행되지 않아 2021년에 튀르키예로 매각됐다.

    3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암모니아 추진 VLAC. 삼성중공업

    친환경 해운업 위해 한국과 협력

    튀르키예는 해운업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암모니아 운반선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다. 그간 해운업에서는 화석연료 기반 엔진을 주로 사용했지만, 국제해사기구(IMO) 탄소 배출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탄소 배출 감축은 해운업의 필수 과제가 됐다.

    튀르키예는 암모니아 운반선 공급 파트너로 한국 기업을 선택했다. 튀르키예 선사인 파스코가스(PascoGas)는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두 척을 한국의 H 사에 발주한 것이 2024년 1월 언론에 보도됐다. 파스코가스는 2019년 튀르키예 투자 회사 네그마르 데니즈실릭과 여러 선사의 합작 투자로 설립됐으며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지속 가능한 해상 운송’이라는 경영 방향을 가지고 있다. 발주된 선박은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두 척으로, 계약 금액은 약 3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선박은 샤프트 발전기를 갖춘 8만8000㎥급으로 설계되며, 2027년 3월에 인도될 예정이다.

    튀르키예 현지 선박 및 요트, 해양 서비스 수출 협회의 2023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7월 튀르키예 조선소 주문의 14%는 국제적 수요에 따른 전기 및 하이브리드 선박, 7%는 메탄올 연료 선박, 50%는 바이오 연료 선박으로 구성되는데 아직은 수소나 암모니아 연료로 운용되는 선박에 대한 주문은 없다고 한다. 이 협회 수출국의 한 담당자에 따르면, 이는 저장을 위한 고압력 기술과 고도화된 냉각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는 튀르키예도 암모니아 연료 선박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국의 경쟁력 있는 조선 산업이 튀르키예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에너지 자립도 향상과 탄소 중립이라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한 튀르키예의 수요와 한국의 발전된 조선 산업 역량이 결합한다면, 조선·해운업 분야에서 양국의 경제협력 기회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용어설명

    • * 1)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의 줄임말. 말 그대로 바다에 뜬 채로 원유를 생산하고 저장 및 하역하는 선박을 말한다. 해상 정유 공장으로 불린다. 부유·저장 기능을 하는 하부 선체 구조(hull)와 원유의 생산·처리 기능을 하는 상부 설비(topsides)로 구성돼 있다. 한 척당 가격이 수조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