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 광범위한 지원 뒷받침돼야
  •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기후 소송’의 첫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옛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42조 1항 1호가 위헌인지 확인하는 사건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뉴스1

    2024년 8월 29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헌법재판소(헌재)는 헌법상 과소보호금지원칙 및 법률유보원칙에 위반 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2020헌마389 등 4건 병합)을 내렸다. 헌재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녹색 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행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지만,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규정하고 있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헌재는 이 조항을 2026년 2월 28일까지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세 가지 관점에서 이 결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번 헌재 결정은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명확히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헌재는 기본적으로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에 따라 판단을 내렸다. 즉 헌재는 국가가 기후 위기에 대응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관해 구체적인 정량 기준을 설정하지 않아 2050년 탄소 중립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한다고 봤다.

    이는 미래 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규율한 것이고,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런 결정은 최근 환경 단체가 제기한 각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조치 미흡에 대한 소송 결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네덜란드와 독일 등에서 이루어진 시민 단체의 기후 소송에 따라 네덜란드와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현재 일본, 대만 등 여타국에서도 기후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책무에 대한 법적인 확인 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4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둘째, 이번 헌재 결정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큰 틀의 목적에는 부합하는 결정이나, 기후변화 대응의 국제적 성격을 감안할 때 여타국의 상황도 좀 더 고려돼야 했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후변화 대응은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중국, 미국, 인도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협력이 동반돼야 한다.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상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제출은 의무 사항이나, 목표 수치 자체는 자율에 맡겨 놓은 결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NDC를 법제화하지 않았고, 중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 65% 감축, 인도네시아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대비 무조건부 31%, 선진국 지원 조건부 43% 감축 등 상대적 배출 목표를 산정해 놓은 상황이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문제가 된 중장기적 감축 목표 계획과 관련, 환경보호의 선두 그룹인 유럽연합(EU)도 올해 2월에야 2040년까지 1990년 기준으로 온실가스 90% 감축 목표를 발표한 바 있고, 2030년부터 2050년까지의 감축 계획을 명확히 한 나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셋째, 헌재 결정으로 국내 탄소 중립 방향성이 더욱 뚜렷해진 상황에서, 향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NDC 이행을 위한 광범위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이 GDP의 28.4%를 차지하고 석탄 발전이 여전히 전력 발전의 25.7%(2024년 기준)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으로서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수준 대비 40%를 감축한다는 목표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여타국과 비교해 봐서도 기준 연도에서 목표 연도까지의 연 평균 감축률이 EU 1.97%, 미국 2.81%에 비해 한국은 4.17%에 달한다. 이러한 급진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전환 부문과 산업 부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대표적인 탄소 집약 산업인 철강 분야에서 수소 환원 제철 등 탄소 중립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와 표준이 중요해짐에 따라 전체적인 탄소배출량의 산정 및 관리 체계를 정비하여 더욱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답보 상태에 있는 배출권거래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인 탄소 차액 계약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파리협정 6조의 국외 감축 사업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탄소 크레디트 거래 제도 활성화를 통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녹색 경제로의 전환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에 더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1) 등 국제 통상 조치가 탄소 중립의 길로 가도록 추동하는 힘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은 수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EU로 수출하기 위해 CBAM, 공급망 실사 지침 등 기후 대응을 위한 통상 규범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여타국과 국제 협력을 강화하며, 탄소 중립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면서 산업과 에너지 분야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용어설명

    • * 1)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EU 집행위원회가 그린딜 산업 계획의 후속 정책으로 2023년 3월 발표한 법안으로,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청정 기술산업의 규제,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2030년까지 주요 청정 기술 산업의 EU역내 제조 용량을 연간 역내 수요의 40% 이상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