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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후 미국으로 향하는 베트남 수입이 많이 늘어나면서 미국의 대(對)베트남 무역수지 적자 폭이 크게 늘었다. 미국은 베트남을 멕시코와 같은 중국의 ‘우회 기지’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확대되면서 베트남에 대한 수입 규제는 언제라도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올해 8월 ‘시장경제국(ME·Market Economy)’으로 격상을 바라던 베트남에 대한 무역 지위를 이전과 같은 ‘비시장경제국(NME·Non-Market Economy)’1)으로 유지했다.
한편,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 가능성이 커지면서 베트남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베트남에 투자한 한국 기업의 미국 수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 동향과 베트남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을 평가해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매년 늘어나는 ‘미국·베트남’ 무역 규모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 규모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었다. 미국으로 향한 베트남 상품은 2014년 306억달러(약 42조원)에서 2023년 1144억 달러(약 156조원)로 9년간 274% 늘었다. 미국 수입국 중 베트남이 차지하는 위상도 커지고 있다. 베트남은 2014년까지 미국 수입국 15위에 머물렀지만, 2023년 7위로 올라섰다. 5위 일본(4.7%), 6위 한국(4.2%)을 빠르게 추격하는 모습이다.
같은 기간 베트남으로 향하는 미국의 수출도 늘었다. 미국의 베트남 수출은 2014년 57억달러(약8조원)에서 2023년 98억달러(약 13조원)로 72% 증가했다. 2024년 1~7월 기준 베트남은 미국의 7위 수입국인 반면 수출국으로는 30위에 머문다. 미국의 베트남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22년부터는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37조원)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1위 중국, 2위 멕시코에 이어 무역수지 적자 3위 규모다.
미국의 대베트남 수입이 늘어난 건 베트남 수입품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2000년대까지 베트남 수입품은 대부분이 신선 및 가공식품이었다. 랍스터, 킹크랩 등 갑각류 비중이 가장 컸고, 커피가 뒤를 이었다. 2010년대 들어 식품이 주를 이뤘던 베트남 수입품은 가구, 의류, 신발 등 경공업 제품으로 바뀌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무선통신기기, 컴퓨터, 반도체 등이 새로운 베트남 상위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 규모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삼성전자, LG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주요 전자 업체가 베트남에 휴대폰, 가전 공장을 세우면서 관련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다. 2020년 기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향한 무선통신기기는 132억달러(약 18조원)로 베트남의 대미국 수출 품목 가운데 압도적인 1위가 됐다.
베트남 향해 ‘반덤핑·상계관세’ 칼 겨눈 미국
미국의 대베트남 수입품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20년대 이후 두드러진다.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무역구제조치 신규 조사는 2002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1~2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급격히 늘었다. 실제로 2020년과 2023년에만 각각 5건(반덤핑 4건, 상계 관세 1건)의 무역구제조치 신규 조사가 시작됐다.
특히 베트남이 미국의 비시장경제국으로 지정된 2002년 이후 베트남에 대한 반덤핑과 상계관세조사 개시 건수는 총 33건에 달할 정도로 많다. 미국이 반덤핑 조사를 늘리는 방법으로 베트남에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대상은 생꿀, 종이 쇼핑백, 매트리스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미국이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한 덤핑 마진을 산정할 때 베트남 국내 판매 가격을 정상 가격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을 공정한 교역 상대국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의 수입 규제가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국의 무역 지위 재검토를 미국 정부에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리면서 베트남의 무역 지위는 제자리걸음이다. 주베트남 미상공회의소, 미국·아세안 기업협의회, 전미소매업연맹, 전미의류신발협회, 소비자브랜드협회 등 주로 소매업(특히 의류) 관련 단체가 베트남의 무역 지위를 시장경제국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철강협회, 미국철강제조업협회, 미국노동총연맹, 미국제조업연맹 등 철강 및 노동계는 수입 관세율 인하에 따른 미국 내 산업의 피해를 우려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미국철강협회는 미 상부무에 보낸 의견서2)를 통해 미국 무역법을 회피하고 환율 조작 및 제한적 무역 관행을 지속하는 베트남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부여할 경우 미국 내수 산업이 큰 피해를 보게 되고, 나아가 중국에 더 유리한 무역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미 상무부는 2023년 9월 베트남 정부가 요청한 베트남의 무역 지위 변경 요청에 대해 지난 8월 비시장경제국 지위 유지 결정을 발표했다. 베트남이 2022년부터 추진한 시장 지향적 개혁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관세법에 명시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베트남의 수출품 가격과 생산 비용이 왜곡된 만큼 덤핑 마진 산출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게 미 상무부의 입장이다.
한국 기업 중요 생산 기지, 미국 움직임 면밀히 살펴야
미국 내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소가 증가하고 있고, 올해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 반덤핑 조사도 시작되면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는 앞으로 더 강화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으로 향하는 중국 기업이 늘어나는 만큼 중국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 대한 수입 규제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 강화는 베트남을 중요 생산 기지로 활용하는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생산한 물품이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는 미국의 베트남 수입 규제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규제 강화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현재 베트남은 멕시코만큼 중국의 우회 기지로 주목받고 있지 않지만 향후 미국의 입장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수 없어서다. 먼저 미국의 입장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베트남 관련 언론 보도와 미국 정계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용어설명
* 1) 비시장경제국 (NME·Non-Market Economy)원가와 가격 구조가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지 않아 물품의 공정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된 국가에 부여하는 무역 지위. 미국은 베트남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12개국을 비시장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 시장경제국(ME·Market Economy)은 원가·임금·환율·가격 등을 정부가 아닌 시장이 결정하는 경제체제를 갖췄다고 상대 교역국이 인정한 국가를 말한다.
- * 2) 미국철강협회 의견서
미국철강협회가 미국 상무부에 베트남이 요청한 시장경제국 지위 부여에 대해 2023년 12월 21일 반대 입장을 표한 의견서. 미국철강협회는 의견서에서 베트남이 철강,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납, 아연 등에 고율의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베트남 정부의 자원 가격 통제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철강협회는 미국 재무부가 이런 이유로 2023년 베트남을 환율 조작 대상국으로 재지정한 만큼 미국 상무부가 베트남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