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의 세계 돋보기
최근 글로벌 경제와 공급망 전반에 걸친 중요한 이슈로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은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을 통해 급속한 업 성장과 경제 발전을 이루며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중국의 과도한 생산 설비 증가와 생산능력의 확장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이른바 ‘공급과잉’을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철강 등 일부 제조업에서만 나타났지만,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으로 속히 성장한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산업으로도 확대됐다.
글로벌 공급과잉 배경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는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주요 산업은 대규모 보조금과 공격적인 육성 정책을 통해 폭발적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3대 신(新)산업’인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산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대비 3~9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조금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중국의 주요 산업은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생산능력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경제의 경기 둔화와 내수 시장의 성장 정체가 맞물리며 이러한 산업의 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결과, 과잉생산된 제품이 중국 내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저가로 해외시장에 유입되면서 글로벌 차원의 공급과잉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공급과잉은 시장에서의 가격 하락과 재고 증가, 제조 업체의 수익성 악화, 가동률 감소, 일자리 감소 등을 초래한다. 나아가, 보조금 지원을 통해 과잉생산된 저가 제품의 대량 수출은 수입국의 산업 경쟁력에 심각한 부담을 주며, 글로벌 시장의 가격 구조와 질서를 왜곡시킨다. 이러한 왜곡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세계경제의 불안정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공급과잉 현황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특히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 생산능력은 세계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상당히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산업별 공급과잉 현황은 다음과 같다.
① 전기차 지난해 중국은 954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했지만, 이 중 841만 대만 판매돼 113만 대의 초과 공급이 발생했다. 특히 2020년 22만 대에 불과했던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연평균 75%의 급속한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3년에는 120만 대로 급증했다.
② 배터리 중국의 배터리 생산능력은 전 세계 수요를 초과한 상태다. 2023년 중국의 배터리 생산량은 1.07TWh (테라와트시)로 전 세계 수요인 0.95TWh 를 상회했으며 이는 중형 전기차 156만 대에 해당하는 분량의 배터리가 과잉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③ 태양광 태양광 시장에서도 공급과잉이 확인된다. 2023년 중국은 499GW (기가와트)의 태양광 모듈을 생산했으나 이 중 208GW 만 수출됐다. 더욱이 2024년 중국의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은 1405GW 로 예상되나, 중국과 글로벌 태양광 패널 설치량은 각각 255GW 와 511GW 에 불과해 공급과잉은 지속될 전망이다.
④ 철강 철강 산업의 공급과잉 문제는 고질적이다. 중국은 2023년 기준 연간 11억7000만t의 철강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3년 중국의 철강 순 수출은 341억달러(약 45조86억원)에 달해 2014년 공급과잉이 문제 되던 당시와 거의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
⑤ 석유화학 석유화학 산업 역시 공급과잉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벤젠, 혼합 자일렌, 톨루엔 등 6대 석유화학 제품군에서도 모두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있으며 글로벌 석유화학 생산능력 확장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에틸렌의 경우 2018년부터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다. 2024년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540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요는 4500만t에 불과할 전망이다. 2025년에도 공급과잉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생산능력은 5500만t, 예상 수요는 4800만t으로 추정된다.
중국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 대응
중국의 공급과잉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제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반덤핑 및 보조금 조사를 확대하며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등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대(對)중국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① 미국 미국은 반덤핑 및 상계관세 같은 전통적인 무역 구제 조치 외에도 무역확장법 제232조와 통상법 제301조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2002년 미국은 철강 산업의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저가 철강의 수입이 증가하며 생산력이 저하되는 등 경쟁력이 떨어지자, 수입 철강에 대해 3년간 8~3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표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정부 보조금을 받는 중국 저가 태양광 제품이 미국 산업에 피해를 주자 수입산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적용했다.
또한 같은 해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철강·알루미늄의 수입이 증가하자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무역확장법 제232조 관세를 부과했으며 동 조치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돼 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통상법 제301조를 통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 5월,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과 이로 인한 피해에 대응하고 미국 노동자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약 180억 달러 규모의 대중국 수입품에 대해 제301조 관세인상을 발표했다. 또한, 그동안 미뤄졌던 제301조 대중 관세 검토를 마무리하고 전기차 관세를 100% 인상하는 것을 비롯해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배터리, 태양광 등 전략 산업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 산업계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 수입 상품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신규 조사 개시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수입 규제 조치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② EU 및 기타 국가들 EU는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 통상 정책을 통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독자적인 대중국 접근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EU는 중국을 경쟁국이자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간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조치 등 WTO 규범에 합치하는 조치를 활용해 왔다. 특히 국가의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반보조금 조사보다는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하여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덤핑 조치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EU는 중국의 공급과잉 원인으로 정부 보조금을 지목하며 보조금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2022년 대중국 무역 적자(약 4000억유로)가 발생하고, 저가의 중국 전기차 수입이 급증하자 EU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본 전기차가 EU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주장하며 이례적으로 집행위 직권으로 보조금 조사를 개시했다. 이후 EU는 태양광 패널, 풍력터빈, 의료 기기, 주석 도금 강판 등에도 덤핑 및 보조금 조사를 착수하고 기존의 조치를 연장하는 등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더불어 집행위는 역외보조금규정(FSR)에 근거한 보조금 조사도 확대해 중국의 태양광 패널, 풍력터빈 등에 대한 보조금도 견제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중국의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G7(주요 7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 과잉생산의 잠재적, 부정적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 따라 공정한 경쟁의 장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고려할 것을 발표하였다. 캐나다는 중국 전기차에 이어 광물, 배터리, 반도체 등에도 관세 인상을 예고하였으며, 멕시코는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태국은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며 저가 수입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경상수지 적자 해소와 자국 자동차 제조 업체 보호를 위해 중국산 차량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며, 인도는 자국 제조업 보호와 대중국 견제를 위해 수입 규제 조치를 시행하는 등 각국은 공급과잉 대응에 나섰다.
주요국의 대중국 견제에 대응해, 중국은 자국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경고했다. 과거에도 중국은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와 무역확장법 제232조 관세를 WTO에 제소하고, 보복 조치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EU의 중국 전기차에 대한 잠정 상계관세 부과 결정을 발표하자 중국은 보복 조치를 경고하면서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관세법’을 제정해 자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국가의 상품에 동일한 세율로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해당 국가의 정책이 중국과 정상적 무역을 저해할 경우 추가적인 보복관세를 부과할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대중국 무역 규제로 한국 기업 피해 가능성
주요국은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조치 등 다양한 무역 규제 조치를 통해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글로벌 무역 장벽으로 작용해 우리 기업에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2002년 미국이 수입 철강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부과했을 때 규제 대상국은 WTO에 제소하고 보복관세를 부과했으며, EU와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도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시행하면서 글로벌 통상 마찰이 발생한 바 있다. 2018년 미국의 무역확장법 제232조 조치도 주요 국가의 WTO 제소와 보복관세, 세이프가드 조치 발동 등을 초래하며 국제무역 갈등을 심화시켰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국가 안보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과거 철강 산업에 적용됐던 무역확장법 제232조 및 세이프가드 조치와 유사한 조치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발동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무역확장법 제232조와 세이프가드 조치는 통상법 제301조나 반덤핑·상계관세와 달리 모든 수입품을 대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철강,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중국의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주요국의 무역 장벽이 확대되면, 이는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