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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계 5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하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줄곧 기후변화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왔다. 2020년 각국이 앞다퉈 탄소 중립을 선언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뒤처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지자, 당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2020년 10월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온실가스 46%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후 일본은 자국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그린 전환(GX) 실현을 위한 기본 방침(2023년 2월)과 추진 전략(2023년 7월)’을 각각 발표했다.
경제성장 지향하는 GX 제시
일본은 GX 전략의 핵심 목표로 경제성장을 내걸었다. 동시에 탄소 배출권 거래제(ETS) 등을 포함한 성장 지향적 탄소 가격제를 표방하고 있다. 규제와 투자 지원을 결합한 형태다. 기업이 GX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경제성장 달성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GX실현에 가장 중요한 대규모 투자(자금)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지원할지를 상세하게 담은 투자촉진책을 마련해, 기업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GX 로드맵과 분야별 투자액을 공표했고,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20조엔(약185조원) 이상의 국채를 발행해 10년간 GX 관련 기술에 투자할 예정이다.
기업 지원 관점에서 ‘배출권 거래제’ 도입
일본은 한국처럼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이다. 대부분의 온실가스 배출이 산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한계점이 있다. 게다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재생에너지 활용 여건도 열악해 에너지 자립도가 낮다. 이처럼 일본과 한국은 탄소 중립의 핵심인 에너지와 산업 부문에서 한계가 유사하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있어서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5년 기업의 탄소 배출량 저감을 목표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 후 유상 할당을 도입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23년이 돼서야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일본은 기업 지원 관점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운용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시행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걸 목적으로 도입했다.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 탈퇴를 보장하고 감축 목표 역시 기업 스스로 설정하도록 한다. 동시에 탄소 배출량에 따라 참여 기업을 구분해 차등 운용한다. 기업별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와 전략, 성과를 공개된 플랫폼에 상시 공개하도록 했다. 기존에 자발적 감축 활동으로 확보한 탄소 크레디트(JCM·J크레디트)도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정부 지원에 기업 참여 늘어
일본 정부 지원의 노력에 일본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하고 있다. 2023년 11월 기준 740개 넘는 일본 기업이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 중이다. 기업은 배출권 거래 참가 이니셔티브인 ‘GX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탄소 중립 달성에 도움되고,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기회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GX리그에 참가하는 기업의 장점은 △탄소 중립 달성에 필요한 정보 획득, △에너지 절약에 의한 비용 절감, △자금 조달 방안 마련, △제품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 △비즈니스 확장 기회, △자발적인 배출권 거래 통한 탄소 중립 달성 등으로 요약된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민관 협력 방안, 기업의 중장기적인 경영 전략, 사업 개발, 연구 주제 개발 등을 통해 탄소 중립 달성에 유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비용 효율적인 투자 및 공정 개선으로 에너지 비용이 줄어든다.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기업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우대조건을 얻을 기회가 많다. 설비투자 보조금이나 사업 재구축 보조금 등의 조건을 만족할 경우 정부 보조금 등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GX 추진 정책 포함)는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민관 협력을 동해 금융과 연계하고 있다.
규제 중심 한국 배출권 거래제, 성장으로 바꿔야
한국의 배출권 거래제를 규제 중심으로 운용하면서 감축 실적 인정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기업 지원책을 확대하고 있다. 투자 금융정책과 연계해 기업 지원을 중심으로 제도를 구상하는 일본과 차이가 있다. ‘K배출권 거래제’ 참여 기업은 배출 할당 목표 미준수 시 과징금(1t당 약 10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는다. 한국은 탄소 중립과 경제성장이라는 복합적인 목표를 균형 있게 달성하기 위해 국가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일관된 정책 방향과 연계된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탄소 중립 지향점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달성이라는 ‘규제’ 중심에서 산업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탈탄소 전환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정책 금융과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그린이노베이션기금과 GX경제전환채권, 전환금융 등을 연계해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한 일본 사례를 참고하는 걸 추천한다. 특히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하고 탄소 배출 저감에 노력하는 기업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탄소 중립의 핵심 목표를 산업 성장에 둬야 한다. 또 산업을 가장 잘 아는 부처(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주도)가 배출권 거래제 등 탄소 관련 정책을 주도해 정책 효과를 높여야 한다.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정책 일관성과 정합성을 유지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