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더 특별한 통상

③ 더 특별한 통상

세계로 뻗어 나가는 K뷰티 K뷰티 세계화 비결은 ODM<제조자개발생산>·디지털 전환 활성화 ·인디 브랜드 약진
  • 이준배 코스맥스 R&I센터 기반기술연구랩장
  •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국산 메이크업 제품들. 코스맥스

    최근 K뷰티의 전 세계적인 인기가 심상치 않다. 일본에서는 K뷰티의 인기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고착화된 트렌드로 평가받을 정도다. 2022년 일본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1위 국가로 도약했다. 2023년 역시 일본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 수입액은 959억엔(약 8813 억원)을 기록하며 시장점유율 25.4%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K뷰티의 눈부신 성공을 분석한 수많은 논문, 언론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외 많은 언론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일본의 고품질 사이에 끼어 있는 K뷰티의 우울한 미래를 전망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놀랍게도 코로나19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과 동시에 사라졌다. 도대체 이 짧은 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러한 성공에 대해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는 분석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팬데믹 및 엔데믹 시기에 일본의 주요 언론은 K뷰티 성공에 대한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일본 재무성조차 한국을 세계 화장품 수출 대국으로 소개했다. 아마도 이 시기 양국의 화장품 산업이 모두 동일한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의 인바운드 수요 감소 그리고 내수 시장 침체 등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그럼에도 이 기간 한국 화장품 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반면 일본 화장품 시장은 성장세가 둔화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한국 화장품 산업 특유의 빠른 속도에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지 속도만으로 K뷰티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것은 부족하다고 본다. 과학 용어 중 스칼라(scalar)와 벡터(vector)가 있다. 스칼라는 크기만 있는 물리량으로 속력, 시간, 부피, 온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편, 벡터는 크기와 함께 방향이 있는 물리량으로 힘, 속도, 가속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속력과 속도의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속력이 단순히 빠르기를 의미하는 스칼라 물리량이라면 속도는 빠르기와 함께 방향도 포함된 벡터다. K뷰티의 성공을 단순히 빠른 문화, 즉 스칼라적으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오류다. K뷰티의 성공은 빠르기와 함께 올바른 방향성이 부가된 벡터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한국 화장품 산업의 성공 요인에 대해 속도와 방향성 측면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K뷰티 기업 중 하나인 코스맥스의 평택 공장. 코스맥스

    K뷰티의 속도 전략

    ① 트렌드에 대한 빠른 반응속도

    K뷰티의 최근 성공에 대해 한국의 많은 화장품 산업 종사자는 한국인 특유의 속도감을 대표적인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이러한 분석은 일본 언론 및 일본 화장품 산업 종사자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2021년 11월 일본의 화장품 전문 잡지 ‘국제상업’에서는 한국 화장품 산업의 강점 분석 기사에서 K뷰티의 강점으로 트렌드에 대한 빠른 반응속도를 언급했다. 한국은 트렌드 교체 시기가 빨라 경쟁이 치열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브랜드는 자사의 강점을 살려 스킨케어, 메이크업 등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1위를 노리는 전략을 취한다고 소개했다. 일례로 팬데믹 기간 중 한국은 마스크 착용에도 덜 묻어나는 적은 쿠션 제품 등 다양한 메이크업 제품을 개발했다. 또한, 클린 뷰티나 비건 등 글로벌 화장품 트렌드에 대해서도 한국은 일본보다 월등하게 빠른 반응속도를 보였다. 소비자가 환경, 지속 성장 같 은 다양한 가치를 가진 제품을 찾을 때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미 많은 제품이 준비된 상황이었다. 그 결과, 이 제 이러한 한국 화장품의 품질과 속도는 일본 화장품 시장에서도 새로운 성공 방정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23년 8월 4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의 편의점 로손과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 롬앤이 공동 개발한 립스틱 제품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한국의 기술력과 일본 소비자의 니즈를 꼼꼼히 반영한 이 제품은 2023년 3월 말 발매 직후 2개월 분 재고가 단 며칠 만에 완판됐다.




    ② 화장품 ODM 시장의 활성화
    최근 K뷰티 산업의 새로운 흐름으로는 연구개발·생산을 전담하는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과 유통 판매에 집중하는 브랜드 회사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기존에는 한 회사에서 연구개발부터 생산 및 유통 판매를 전담했지만, 2000년대 초반 ‘원브랜드숍(로드숍)’이 생기면서 연구 생산과 유통 판매라는 산업의 분업화가 촉진됐다. 이러한 산업의 분업화는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을 빠른 속도로 높이는 계기가 됐다. 


    특히 한국의 ODM 기업은 세계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 2022년 3월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에 많은 ODM 화장품 대기업이 있어 개인이라도 간단하게 화장품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정비돼 있다고 소개했다. 2019년 한국에서는 화장품 판매 사업 자가 1만5707곳으로 5년 전 대비 세 배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2023년에는 다시 3만1524곳으로 약 두 배 증가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ODM 화장품 사업 모델은 사 실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폰시키자이 (日本色材工業研究所·1930년 창업), 피카소미화학연구소(ピ カソ美化学研究所·1935년 창업), 토요뷰티(東洋ビューティ· 1941년 창업) 등 100년 역사를 바라보는 OEM·ODM 화장품 기업이 즐비하다. 이런 일본의 OEM·ODM 화장품 기업 대표들은 한국 화장품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2022년 3월 ‘국제상업’에서는 일본 주요 OEM·ODM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신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 에서 니폰시키자이 오쿠무라 코우지 대표는 K뷰티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했고, 피카소미화학연구소의 야기 노부오 대표는 중국에서 K뷰티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언급했다. 


    또한, 토키와의 카나이 히로유키 대표는 일본 Z 세대 (1997~2010년생)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K뷰티의 인기를 인정하기도 했다. 일본 OEM·ODM 기업의 대표들 역시 한국 화장품 산업에 대해 강한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국제상업’ 2023년 3월호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일본 OEM·ODM 화장품 업계 동향 분석 에서 세계 1위 코스맥스의 일본 진출에 대해 ‘흑선(黑船·쿠 로후네)의 일본 진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기사에서는 중국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한국의 코스맥스가 일본에 본격적인 진출을 한다고 소개하면서 이로 인해 일본 OEM·ODM 화장품 시장의 사업 환경도 매우 급변할 것으로 전망했다. 흑선은 1853년 7월 8일, 미국의 해군 제독 매슈 페리가 일본의 시모다항에 검은 증기선 군함을 이끌고 와서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인 사건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 내에선 자국 사회에서 활약하는 외국인을 지칭해 ‘흑선’이라고 부른다.



    K뷰티 성장을 이끄는 코스맥스의 주요 제품들. 코스맥스

    ③ 디지털 전환 

    2023년 2월 일본 재무성에서 발행하는 잡지 ‘파이낸 스(Finance)’에서는 특집 기사인 일본 화장품 산업 전망을 통해 화장품 산업에서의 디지털 전환(DX·digital transformation)을 소개하며 한국에서는 디지털이나 인공 지능(AI)을 활용한 화장품 판매 방법이 보편화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아울러 일본 화장품도 디지털과 AI로 고품질의 상품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면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일본 정부 발행 잡지에서 한국 시장을 언급한 것 자체도 이례적이지만, 한국 화장품 산업의 DX 성공 사례를 일본과 비교해 소개한 것은 더욱 놀라 울 따름이다. 또한 일본화장품기술자회(SCCJ) 요시다가 츠노리(吉田克典) 회장은 2023년 ‘국제상업’과 인터뷰에서 한국 화장품은 디지털 영역 연구에 상당한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2024년 4월 ‘국제상업’에서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 2024를 소개하면서 로레알과 한국 기업들의 신기술이 압권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기사에서는 뷰티 테크(Beauty Tech)를 만드는 것은 아시아 기업, 특히 한국이 주역이라고 하면서 특히, 압도적인 프레젠테이션 능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소개도 덧붙였다. 화장품 산업에서의 DX는 단순히 연구 영역에서의 뷰티 테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 물류, 판매, 홍보(PR) 등 거의 모 든 가치 사슬에서 DX가 가능하다.




    + 한국 화장품 수출액 절반 이상이 중소기업 제품

    ※ 2023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 기준 | 자료_식품의약품안전처 | 단위: 달러



    K뷰티의 방향성 전략

    ① 브랜드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 전환

    얼마전까지 한국 화장품 산업의 성공 전략은 브랜드 전략이었다. 모든 화장품 기업은 자사의 정체성이 담긴 브랜드를 만들고, 이 브랜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수많은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브랜드 가운데 극소수만이 소위 브랜드 파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브랜드 전략은 크게 성장형과 전통형으로 나뉜다. 성장형 브랜드 전략이 젊은 세대나 해외시장을 끌어들여 역동성을 갖게 한다면, 전통형 전략은 백화점처럼 고정 고객에게 강하 지만 신규 고객 유치에 약한것이 특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한국 화장품 산업의 브랜드 전략은 대부분 전통형에 가까웠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저가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화장품 회사가 각자의 브랜드 파워 유지를 위해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때마침 전 세계를 휩쓸던 온라인 시장 트렌드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소비자는 브랜드 콘셉트를 소구하는 화장품에서 제품력이 우수한 효능 및 효과 위주의 화장품을 선호하게 됐다. 제품력만 우수하다면, 이제 브랜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화장품 기업은 브랜드 전략을 전통형에서 성장형으로 급선회했다. 한국 화장품 산업의 성장형 브랜드 전략은 내수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모두 의미 있는 성공을 거 뒀다. 내수 시장에서는 가성비가 우수한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또한, 해외시장 개척에도 힘을 쏟는 가운데 때마침 전 세계를 휩쓴 한류(韓流) 열풍은 K뷰티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게다가 아마존, 알리바바 등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며 제품력을 갖춘 K뷰티는 거침없이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브랜드 중심에서 제품 중 심으로 방향을 바꾼 K뷰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② 완벽한 가치 사슬 확보
    박종대 전 하나금융투자 수석 애널리스트는 저서 ‘K뷰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한국 화장품 산업의 가치 사슬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소개했다. 책에서는 K뷰티의 가치 사슬로 ODM, 브랜드, 부자재 그리고 원료 부분을 제시하며 2011년 이후 10년간 합산 매출 성장률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ODM(19%), 부자재(12%), 브랜드(8%) 그리고 원료(6%) 순서로 모든 가치 사슬이 성장했음이 나타났다. K뷰티의 지속 성장을 견실히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 완벽한 가치 사슬의 확보가 아닌가 한다. 일본 최대 온·오프라인 뷰티 플랫폼인 ‘엣코스메(@cosme)’를 운영하는 모기업 아이스타일의 스가와라 게이 부회장은 “K뷰티의 인기 뒤에는 원료, 내용물, 용기에 이르는 화장품 산업의 생태계가 완벽하게 갖춰진 덕분”이라고 했다.




    ③ 인디 브랜드가 주도하는 글로벌 진출

    과거 K뷰티 성장을 이끈것은 일부 대기업 브랜드였다. 하지만 최근 K뷰티 성장의 주인공은 중소기업이 선도하는, 이른바 ‘인디 브랜드’다. 2023년 한국 화장품 산업 수출액 85억달러(약 11조3110억원) 가운데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액은 53억8000만달러(약 7조1592억원)로 약 63%를 차지했다. 아울러 화장품은 중소기업 수출 품목 중 1위로 올라섰다. 인디 브랜드의 수출 성장세는 계속 이어져 2024년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 품목 중 화장품 수출액은 약 33억달러(약 4조3913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1% 증가했다. K뷰티 산업의 중심축이 기존의 대기업과 로드숍에서 인디 브랜드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인디브랜드의 약진은 그동안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K뷰티에 있어 매우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중국 중심에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좀 더 넓은 시장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가 됐다. 인디 브랜드의 성장은 특히 연구개발·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화장품 ODM 기업과 동반 성장을 이끌고 있다. 한국의 많은 화장품 ODM 기업은 인디 브랜드와 상생을 위해 최소주문수량(MOQ)을 유연화하고, 유망 기업 및 예비 창업자 대상 멘토링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인디 브랜드의 성장이 곧 K뷰티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