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작년 한 통상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상이 어떤 점에서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은 계속해서 필자에게 중요한 화두가 됐고, 이 지면을 통해 관련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한다. 통상이 고령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는 자유무역협정(FTA)상 인력 이동 조항 활용이다. FTA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마찬가지로 네 가지 서비스 공급 형태에 대해 시장을 개방한다. 그중 네 번째 서비스 공급 형태인 모드(mode) 4는 어느 한 국가의 자연인이 다른 국가로 일시적으로 입국, 체류해 서비스를 공급하는 형태다. 그간 선진국은 불법 이민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모드 4 양허에 적극적이지 않았고,개발도상국은 모드 4를 통한 해외 인력 송출에 적극적이어서, 인력 이동 분야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분야였다. 한국도 그간 모드 4 양허에 소극적이어서 투자로 인해 이루어지는 기업 내 전근자, 경영자·관리자·전문가 등 고급 숙련 노동자에게 치우친 양허를 해왔고, 요양보호사 등 보건 서비스 분야 양허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요양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국내 요양보호사 고령화 등으로 인해 돌봄 인력 공급이 부족해졌다. 국내 요양보호사 평균연령은 61.7세(2023년 12월 기준)이고 2027년에 이르면 부족 인원은 약 7만9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관련 외국인 인력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현재 국내 대학 졸업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요양 보호 분야 취업을 허용하는 특정 활동 비자(E-7)에서의 요양보호사 직종 신설 등 여러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에 더해 FTA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고령화 문제에 부딪힌 일본 경제산업성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40년에는 35%(약 4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2040년에 돌봄 인력 280만 명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경제동반자협정(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통한 돌봄 인력 수입을 시작으로,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요양 서비스에 대한 체류 자격 비자 획득, 기능 실습, 특정 기능이라는 네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요양 서비스 인력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돌봄 노동력 부족 해결을 위해 FTA를 활용해 왔다. EPA는 우리나라의 FTA와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경제협력을 보다 강화한 FTA는 EPA라고 명명하고 있다. 일본은 2008년 7월 인도네시아와 EPA에서 우리나라 요양보호사에 해당하는 개호복지사 유입을 허용했고, 2008년 12월에는 필리핀과 EPA를 통해, 2014년 6월부터는 베트남과 EPA를 통해 개호복지사 인력을 유입했다.
일본이 FTA를 통해 개호복지사를 도입했던 국가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우리나라는 이미 FTA가 체결되어 있다. 특히 한국어 능통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 베트남과는 한·베트남 FTA 부속서 8-C 자연인의 이동 부속서를 통해 자연인의 이동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자연인의 이동 위원회는 양국 출입국 공무원으로 구성되고 1년에 한 번 회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위원회를 통해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자연인의 일시 입국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에도 한·인도네시아 FTA상 자연인의 이동 위원회가 설치돼 있어 위원회를 통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필리핀의 경우 상품 협정 위주로 양자 FTA가 서명되고 발효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인데, 후속 협상으로 서비스 투자 협정을 체결하고 자연인의 일시 입국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인력 도입은 국내 고용 허가제와 관련된 만큼 굳이 FTA 통로를 통해서 교섭해야 하는지, 일시 입국 제도가 개발도상국에 유리한 제도가 아닌지 등의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인력 유입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는 외국과 교섭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장 법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FTA를 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본다. 특히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은 이미 일본과 FTA를 통한 인력 이동 운영 경험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보다 개선된 제도 도입이 가능할 수 있다. 특히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고령화로 인해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돌봄 인력 확보 경쟁이 예상되는 만큼, FTA를 통해 보다 안정된 인력 유입 통로를 확보한다는 측면을 고려한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