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현장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세계 최고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8월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WTO 분쟁 해결 제도 개혁을 위한 국제 서울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 작년에 이어 2회차를 맞이한 이번 심포지엄에는 페트로스 마브로이디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를 비롯해 캐서린 크라센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 마크 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주스트 파울린 스위스 제네바 국제대학원 교수 등 WTO 분쟁 해결 관련 세계적 석학들이 참석했다.
WTO 개혁 논의를 위한 소그룹 모임인 오타와그룹 회원국의 주한대사관 관계자도 참석했다. 현재 오타와그룹에는 한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유럽연합(EU), 브라질, 스위스, 칠레 등 14개국 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WTO 사무국 소속 전문가, 제네바 내 주요국 대표부 담당관 등 40여 명이 화상으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WTO 분쟁 해결 제도의 현실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WTO 상소기구는 국가 간 무역 분쟁의 ‘대법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2019년 12월 미국의 상소 위원 선임 보이콧을 계기로 지금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이에 회원국은 분쟁 해결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및 기능 정상화를 목표로 지금까지 개혁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WTO 사무총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국이 분쟁 해결 체제 다(多)이용국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개혁 논의 과정에서 보인 건설적 기여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개혁 난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이번 심포지엄의 의의를 특별히 강조했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은 분쟁 해결 등 WTO 주요 기능의 개혁 작업에 지속적으로 적극 참여하면서 WTO가 변화하는 무역 현실에 맞춰 적실성(適 實性)을 갖출 수 있도록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한국이 WTO 주요 기능의 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오타와 그룹 등 유사 입장국과 함께 관련 논의를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이번 심포지엄 같은 국제 학술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 PLUS POINT
Interview 캐서린 크라센 미국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
“FTA · 무역 경험 많은 한국…WTO 제도 재건에 중요한 역할”
김우영 기자
“새롭게 변하고 있는 무역 규칙에 맞춰 WTO 분쟁 해결 제도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한 캐서린 크라센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는 “이제는 WTO의 역할과 목표를 다시 정리할 때” 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여러 무역 경험과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WTO 분쟁 해결 제도를 개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인수인계팀 고문 출신의 크라센 교수는 무역정책 분야 전문가로 미 무역대표부(USTR)에서 법률 자문관으로도 근무했던 인물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심포지엄에서 어떤 내용을 발표했나.
“2010년대에 WTO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비판에 대해, 회원국과 재판관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지금의 문제로 이어졌다는 점을 논의했다. 다만 WTO 권한 확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WTO의 역할과 목표를 다시 정리하면 된다. 새롭게 변하고 있는 무역 규칙에 맞춰 WTO 분쟁 해결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회원국이 다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현재 기능이 마비된 WTO 상소 기능이 글로벌 무역 체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과, 이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이 문제는 정치적인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동안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쉽고 확실한 해결책은 없다. 물론 WTO 상소 기구가 멈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에 따라 WTO를 다시 평가해 볼 기회가 생긴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WTO 분쟁 해결 제도를 개혁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WTO 개혁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성공적인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이 불확실한 것도 큰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오히려 절차의 다원화, 즉 서로 다른 회원국 그룹이 그들간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해 지속 가능한 결과물을 도출하게끔 각자의 방식을 설계해 나갈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WTO 내에서 한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과 전 세계가 지켜야 할 규칙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이는 모든 국제기구 설계에서 가장 큰 도전 과제다.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세계경제가 변화함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조직이 그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WTO 분쟁 해결 제도를 재건하는데 있어 한국의 역할은.
“한국은 이미 WTO 분쟁 해결 제도 개혁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의 개방적인 소통 모델은 이 시기에 한국 스스로와 WTO 모두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한국은 다수의 FTA와 오랜 무역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WTO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과 외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데 더 많은 역할을 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