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통상법 관점에서 본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6월 6~9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72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선거가 치러졌다. EU는 5년마다 직접 선거를 통해 유럽인을 대표하는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이 선거는 회원국의 인구에 따라 국가별 의석수가 배정된다.

    유럽의회는 집행위원회(Commission·이하 집행위), 이사회(Council)와 함께 EU 3대 기관 중 하나다. 집행위가 제안한 법안을 심의 및 수정할 수 있고 집행위원장과 위원의 임명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예산 심의권도 있다. 입법 권한에 있어 아직 직접적인 법률안 제출권은 없지만, 집행위가 제출한 법안에 대한 수정 의견을 통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나 인공지능(AI)법의 예에서 보듯이 유럽의회의 수정 의견 범위가 점점 더 커지고 있어서 입법 과정에서 의회의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EU에서 통상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럽의회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통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우선 선거 결과에 따른 EU 통상 정책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회는 7개 정치 그룹을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하는데, 리스본 조약에 따라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가장 우세한 정치 그룹에 속한 후보가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우선 고려된다. 5년 전 선거 결과와 마찬가지로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인민당(EPP)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EPP는 이미 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계속 추대하기로 한 바, 현 EU 지도부의 정책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 EU 지도부는 2019년 12월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유럽(Europe fit for the digital age) 등 6대 정책 목표와 각 목표에 따른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후 이를 법제화하고 이행하면서 각 정책 목표의 달성 여부를 확인해 왔다. 통상과 관련해서도 2021년 ‘자유롭고 전략적이고 공격적인(open, strategic, assertive)’ 통상 정책을 발표하면서 △그린 및 디지털 전환 지원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글로벌 규범 마련 △EU의 전략적 자율성 이익 수호를 위한 통상 수단의 적극적인 활용 등을 내세웠다. 이번 선거에서도 EPP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이와 같은 통상 정책의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그린과 디지털 전환 지원이라는 두 축 중에서 그린 정책은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 EU의 강력한 환경 정책을 지지해 온 녹색당이 기존 69석에서 51석으로 크게 줄어들어 친환경 정책이 기존보다는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EU가 내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온실가스 감축’ 공약은 EU 규정 4조에 이미 명문화되어 있다.

    또 2023년 10월 시행된 CBAM이나 2024년 2월 시행된 배터리법 등 환경과 통상이 결합한 정책들도 이미 법제화되어 있어 큰 틀에서는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입법되지 못한 이니셔티브 또는 실제 이행 내용을 담은 시행령 등은 속도가 늦춰지거나 이행 시점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7월 3일 기준. 왼쪽일수록 좌파 성향, 오른쪽일수록 우파 성향. 기타는 제외. 자료_유럽의회

    셋째, 중국을 견제하는 EU 통상 정책은 계속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1, 2, 3위를 기록하며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될 EPP, 사회주의진보동맹(S&D), 유럽을새롭게(Renew Europe) 모두 중국에 대해서는 디리스킹(derisking)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행위는 작년 6월에 유럽 경제 안보 전략(European Economic Security Strategy)을 발표하면서 외국인 투자 심사, 해외투자 심사, 수출 통제 등 통상 수단의 강화를 예고하고 올해 1월에 다섯 가지 경제 안보 강화 이니셔티브를 발표해, 이러한 이니셔티브가 구체적인 법안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년 10월 집행위는 최초로 기업 청원이 아닌 집행위 직권조사를 통해 중국 전기차 반보조금 조사를 개시하여 6월 12일 중국 전기차 수입에 17.4~38.1% 잠정 상계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상계관세, 반덤핑 등 전통적 무역 구제 수단을 통한 중국 견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역구제 이외에도 역외 보조금 규정, 디지털 서비스법 등 새롭게 신설된 법을 근거로 한 대중국 기업 견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EU의 통상법과 정책은 EU로 수출·투자하는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가의 법 제정에 영향을 미치는 소위 브뤼셀 효과(Brussel effect·EU에 내재해 있는 일종의 규범 권력)로도 중요성이 있다. EU 입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의회 선거 역시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5년의 EU 통상 정책에 맞추어 우리 기업과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