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책으로 읽는 경제·통상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인구 감소 과도한 비관론 경계 노동제도 새 패러다임 필요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위즈덤하우스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까지 떨어진 한국의 합계 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2024년에는 0.6명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수치를 접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조앤 윌리엄스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말한 인터뷰 영상은 유명한 인터넷 밈이 됐다.

가파른 출산율 저하 추세는 인구 감소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20~2070년’에 따르면 2020년 518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한국의 인구는 2070년 3766만 명까지 떨어진다. 3000만 명대 인구는 대한민국이 1910년대 일제강점기 수준의 규모로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인구 감소는 14세기 유럽 인구 3분의 1을 줄인 흑사병 대재앙과 비교된다. 인구 경제학자인 저자는 이 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흑사병이 초래한 집단적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그랬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흑사병은 유럽의 인구를 감소시켰고, 이로 인해 농노제를 근간으로 한 봉건제도가 붕괴했고, 임금 노동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이 등장했다.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값싼 농민 노동력을 노예처럼 쓸 수 있었던 봉건영주의 농노제를 종결시켰지만,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실질임금이 두 배 넘게 증가하는 보상을 선사했다는 게 경제사학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저자는 “역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망자(亡者)와 봉건영주에게는 재앙이었을지언정, 살아남은 일반인에게는 축복이었다”고 자신 있게 외친다.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18세기 영국의 산업 혁명을 태동시켰기 때문이다. 봉건영주가 지배했던 농토는 인구 감소로 경작이 어려워지면서 양을 키울 수 있는 드넓은 목초지로 전환됐다. 질 좋은목초를 먹이 삼아 사육된 양들에게서 생산된 양모의 질은 높아졌다. 이런 변화는 영국 모직물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게다가 임금 상승으로 비싸진 노동력은 기술 개발과 분업이라는 생산 혁신의 유인을 제공했다.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력 향상은 자본주의적 부의 원천이었고, 경제력을 갖춘 상인과 상공업자 등 중간 계층의 성장은 근대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중세 유럽의 봉건제는 무너졌지만, 그 폐허 위에서 근대 국가가 태동했고, 이는 유럽의 부흥과 팽창의 시작을 알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때문에 인구 감소에 대한 과도한 비관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구나 인구 감소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는 더욱 그렇다. 저자는 앞으로 15년이나 20년 동안 ‘총량’에서 노동 인력 부족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여성과 장년 인구(55∼64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선진국 하위권인 노동생산성을 개선하는 것도 노동력 투입저하를 상쇄할 수 있다.

오히려 생산인구의 고령화를 인구 문제 대응의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72년까지 현재보다 65세 이상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유소년과 청년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구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장 4∼5년 후부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인력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운전및 운송 관련직,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 제조 관련 단순 노무직, 건설 및 채굴 관련 기능직 등 이른바 블루칼라 일자리에서 노동 공급 감소를 초래한다.

반면, 고령 노동자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사무직 등 화이트칼라 일자리에서는 초과 노동 공급이 예상된다. 저자는 “지금은 총량적인 노동력 감소로 발생하는 문제보다 부문 및 유형 간에 발생하는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산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인적 자본의 개선과 자동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동화 장비는 노동력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노동생산성이 두 배로 높아지면 노동력이 절반으로 줄어도 실질적인 노동 투입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정년 등 노동시장 관련 제도 개편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65세로 고정된 노인 세대와 은퇴 연령에 대한 정의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관념인 만큼, 평균수명이 20~30년 이상 늘어난 현재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