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통상 현장

2024 글로벌 신통상포럼 “보호주의 확산에도 무역 지속 성장…신흥국에 주목해야”
  • 윤희훈 기자
  • 1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6월 1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2024 글로벌 신통상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기술 발전은 빠른데, 무역 협상은 속도가 늦다. 이는 신통상 질서의 도전 요인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수석 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소장은 6월 1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2024 글로벌 신통상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포럼 기조연설에서 신흥국 간 교역 확대와 신시장으로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FDI), 중산층의 성장 등에 주목해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틀러 부소장은 보호주의 확산으로 국제무역이 쇠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무역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을 꼬집었다.

    커틀러 부소장은 “IRA 제정을 앞두고 한국에서 우려가 제기됐지만, (양국은) 조용히 많은 부분을 해소했다”면서 “팩트를 보면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보조금이 지급됐다”고 했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오히려 양국의 기업이 이익을 봤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신통상 질서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이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경쟁사는 무엇을 하는가, 어떤 분야에 연구개발(R&D)을 할 것인지, 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탄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2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가운데) 주한유럽연합(EU) 대사가 2024 글로벌 신통상포럼 패널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웬디 커틀러 전 USTR 부대표, 페르난데즈 대사, 심진수 산업부 신통상전략지원관.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마리아 페르난데스 카스티요 주한유럽연합(EU) 대사는 EU의 통상 정책 기조와 EU 기업의 대응 사례를 소개했다. 심진수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전략지원관은 신통상 질서에 대응하는 한국의 통상 정책과 맞춤형 통상 협력 이니셔티브인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를 소개했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은 우리 기업의 다각화 전략으로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을 제안했다. 이지형 코트라(KOTRA) 경제통상협력 본부장은 새로운 통상 질서 속에서 우리 기업의 비즈니스 협력 사례를 공유했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주요국이 반도체, 배터리, 디지털 시장 등 핵심 산업과 관련된 공급망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도입 중인 정책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EU의 역내 자립도 강화 기조와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를 설명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신통상전략팀장은 노동 환경 이슈와 결부된 통상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이 팀장은 “최근 주요 교역국을 중심으로 최종 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유형에서 더 나아가 공급망 전반을 규제 대상으로 하는 무역 조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3 2024 글로벌 신통상포럼에선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컨설팅 부스가 운영됐다. ‘통상

    이어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의 사회로 ‘우리 기업의 신통상 규범 대응 사례 및 방향’을 주제로 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패널로는 이효영 교수, 이천기 팀장, 고종완 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 전동욱 LG에너지솔루션 ESG상무, 김지훈 법무법인 세종 AI정책센터 변호사가 참여했다.

    이날 포럼 현장에선 기업의 무역 애로 사항을 지원하기 위한 일대일 무료 상담도 진행됐다. 한국생산성본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컨설팅센터,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에코나인 등 전문 컨설팅 기관이 ESG 관련 상담을 진행했고, 코트라의 글로벌 공급망 센터, FTA 활용지원센터, 수출 애로119 등도 참여해 수출 관련 컨설팅을 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공급망실사지침(CSDDD), IRA 등 공급망·친환경·디지털 관련 신통상 규범이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다”면서 “신통상 질서 구축에 선제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기업 보호를 위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공급망 안정화, 기후변화 대응에 선제적으로 참여해 우리 기업들에 불이익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면서 “기존 FTA에 공급망 등 신통상 협력 요소가 가미된 경제동반자협정(EPA)을 확대하는 등 우리 통상 네트워크를 확충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어 “글로벌 투자·인력의 허브로의 도약을 위해 관련 규제 해소 등 외투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초격차 첨단산업 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 지원 및 투자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 PLUS POINT

    Interview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조교수
    “공급망 안정화 위해선 산업 경쟁력 키워야”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조교수는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게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6월 12일 개최된 ‘2024 글로벌 신통상포럼’에서 토론 세션 진행을 맡은 남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반도체 분야 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한국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공급망 안정 대책에 대해서 “국내 제조 역량을 확충하고, 수입 대체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를 ‘선도 사업자’로 지정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방향성은 옳다”면서 “핵심 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는 건 중요하다”고 했다.

    남 교수는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통상 규범이 흔들리고, 새로운 통상 질서로 대체되는 것과 관련해 “신통상 질서의 핵심은 공급망으로 대표되는 무역의 분절화”라며 “선진국의 경제 성장 둔화로 자국 보호주의가 커지면서 분절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중 갈등과 같은 지정학 리스크도 경제 안보를 내세운 공급망 분절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미·중 갈등 구도 속 한국의 전략적 선택 방향에 대해선 “중국은 미래에도 여전히 핵심 반도체 시장”이라며 “한국으로선 중국을 완전히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하는 공급망 구축은 현실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 고민할 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도록 우리의 존재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경제 실력과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경제 안보가 통상의 핵심 가치가 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각자도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무역 분절화 시대에 WTO 체제는 예전과 같은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처럼 특정 분야의 다자간 체제가 힘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WTO 체제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WTO의 영향력이 줄어든 배경”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때 미국은 WTO 상소 기구 위원 임명을 반대하면서 WTO의 힘을 빠지게 했다. 바이든 정부는 WTO에 대해 트럼프 때와 입장을 달리하겠다고 해왔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후 환경, 노동문제를 앞세워 새로운 통상 규범을 세우려는 EU의 시도에 대해선 “유럽의 통상 규범은 수준의 차이일 뿐 방향은 전 세계도 이를 따르는 분위기”라며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하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같은 새로운 규범에 발 빠르게 적응해 이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한다”며 “한국의 공급망은 중국에 비해 유럽의 규범에 더 친화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