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더 특별한 통상

① 더 특별한 통상

K콘텐츠가 띄운 K푸드의 매력 유행 푸드서 건강 ‘한식(Hansik)’으로… 고급 K푸드 세계화의 조건들

1990년대 초 미국 유학 시절 필자가 김을 먹는 것을 본 미국인 친구가 기겁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식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에 해조류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있으니 그 친구는 김이 ‘악마의 음식’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미국인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혹은 어린이 간식으로 김을 통째로 먹고 있다. 김이 최대 수출품이 됐으니, K푸드의약진이 놀랍기만 하다. K푸드의 정의는 ‘한국 대중문화(드라마, 영화, 음악 등) 또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 음식’이다. 


2022년 해외 한류(韓流)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2005년 김치를 시작으로 소주, 고추장, 된장, 막걸리, 김밥 등이 공식 상품 명칭으로 등록됐다. 현재 해외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K푸드는 치킨(30%), 김치(27.7%), 비빔밥(27.2%)이며 검색 대상으로는 김치, 갈비, 떡볶이 순으로 높다. 가장 많이 수출되는 K푸드는 라면, 과자류, 음료, 쌀 가공식품 등 가공식품이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며, 전통 식품인 김치, 장류의 증가세도 두드러졌다. 특히 수산 대표 품목인 김은 2023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22.2% 늘어난 7억9150만달러를 기록,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라면은 24.4% 증가한 9억5240만달러, 김치는 37.4% 급증한 1억5560만달러에 달했다. 정부는 2027년 식품 산업을 1100조원 규모로 성장시키는 4차 식품 산업진흥계획의 일환으로 수출 1억달러 이상 품목(20개 이상)을 대상으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한다. 


K푸드의 성장은 BTS나 ‘기생충’ 등의 K콘텐츠와 자생적 한류 인플루언서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먹는 것은 사람의 정서에 깊게 뿌리 박고 있어서 식품에 대한 기호는 잘 변하지 않고, 외국의 전통 음식(ethnic foods)을 현지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인데, 한류가 이런 정서적 장벽을 완화하고 K푸드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다만 현재 매출이 높은 품목 혹은 식품 기업이 주력하는 아이템들은 김밥이나 만두 같은 간식이나 떡볶이, 핫도그, 어묵, 호떡, 붕어빵 등 길거리 음식이 대부분이다. 해외 진출에 성공한 갈비, 비빔밥, 삼계탕 등 주식 메뉴(정식 혹은 한 끼 식)가 된 한식이 없지 않지만, 현재 수출 대세가 된 K푸드 패턴은 주로 간식이므로 현지에서 이것이 한식으로 인지될까 봐, 걱정이다. 해외로 진출한 토착 음식이 고급화에 성공한 경우는 일본의 스시 등이 대표적이다. 멕시코의 타코와 부리토,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 등은 해외시장에서 프랜차이즈 기반으로 저가 패스트푸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사례다. 이를 볼 때 K푸드가 저가 길거리 음식으로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K푸드의 현재와 미래

자료_이명숙 성신여대 바이오헬스융합학부 식품영양전공 교수

K푸드가 내재하는 위험을 극복해서 장기적으로 현지에서 고가 먹거리로 정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 K푸드는 유행을 타는 팬시한 음식이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라는 것을 현지인이 알게 해야 한다. 한식은 쌈(Ssam) 문화를 통해 육류를 먹을 때 다양한 채소나 버섯을 사용해 균형 잡힌 영양과 더불어 자극적이거나 튀김 요리가 적은 건강한 식단이다. 대표적인 건강식이라고 알려진 지중해식 식단의 경우 그리스의 크레타섬 주민의 식습관에 관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우리도 전문가들이 참여해 건강에 좋은 K푸드에 관한 대규모 연구를 실시하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K푸드가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식의 주식 메뉴를 고급화해 K푸드를 리드해야 한다. 미국에서 일본의 스시가 고급 주식 메뉴로 정착할 수있었던 이유는 ‘일식집에서 스시를 먹는 것’이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교양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한식도 메뉴 개발과 현지화, 한식 패밀리 레스토랑 창업과운영에 관한 교육과 투자 등에 정부와 관련 기관이 지원해고급화와 현지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K푸드의 확산과 정착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우선 ‘K푸드인증제’는 고품질을 유지하고 해외 짝퉁에 대항할 수 있는 중요한 인프라다. 시행 중인 ‘원산지인증제’나 ‘전통식품인증제’ 등을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확대·개선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식품인증제에 버금가는 인증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현지 K푸드 인력(셰프, 인플루언서, 예비 창업자, 유통 업자)에 대한 교육·훈련 등 인력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한식 식자재 사용법과 레시피를 교육하거나 요리 대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따라서 K푸드 성공을 위한 필수 인프라 중 하나인 식자재 유통을 체계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명칭을 통일해 K푸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브랜드화하는 것이다. K푸드 대신 우리 전통 음식이라는 의미를 살린 ‘한식(Hansik)’으로 일원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식이라는 용어에는 여전히 ‘K’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으니 K콘텐츠의 후광을 얻을 수 있고, 주식 메뉴의 고급화,건강식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포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한식 문화의 상징적 특징 혹은 뿌리를 알리는 스토리를 엮어 정체성 있는 식품 및 음식을 수출해야 한다. 


쌈문화 외 단일 식품도 한글식 표현을 그대로 살려 식품 이름이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막걸리를 ‘ricewine’과 ‘makgeolli’로 표기하되 이름이 가진 의미와 스토리도 함께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궁중 음식, 다과 등 무수히 많은 전통 음식에 한글 이름을 사용하면 풍부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최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영양(정밀 영양)’시대가 도래하면서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2000조원 규모의 정밀 영양 및 정밀 의료 시장을 선점하려고 한다. 우리도 이때를 놓치지 말고 ‘건강한 K푸드=한식’의 가치를 증명하는 과학적인 연구와 홍보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 K푸드는 몇 가지 약점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방안을 제대로 이행하면 한식의 세계화, 즉 해외 현지 정착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