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더 특별한 통상

해외에서 한식이 인기다. 물론 가요(K팝)나 드라마, 영화 등 요즘 대한민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니 이에 수렴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매일 소비하는 것이 식문화이며 입맛이 길들여짐에 따라 관성까지 생기니 한식(K푸드)의 파급력은 언뜻 봐도 지속 가능해 보인다.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한식당 ‘옥동식’이 연일 극찬을 받으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데다 최근엔 한국식 백반을 파는 ‘기사식당’도 뉴욕에 생겨나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현지 언론 뉴욕타임스(NYT)는 뉴욕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 중 최고 요리 8선을 발표하면서 ‘옥동식’의 돼지곰탕을 꼽았다. NYT는 한국인도 낯설어 할 ‘돼지곰탕’에 대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라면서 “하지만 특별한 날에 먹으면 더 좋다”고 극찬했다.

‘미쉐린 가이드 뉴욕 2023’에 한식당 11곳 포함
이뿐 아니다. 같은 맨해튼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 ‘나로’ 역시 NYT가 꼽은 ‘뉴욕 최고 신생 레스토랑 12곳’ 리스트에 포함됐다. 지난해 발표한 ‘미쉐린 가이드 뉴욕 2023’에 오른 식당 71곳 중 한국 식당이 무려 11곳을 차지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 국산 ‘냉동 김밥’이 여전히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운데 전해진 소식이다.
국내 소기업에서 생산해 냉동 상태로 수출에 도전한 ‘냉동김밥’은 미국의 대형 마트 체인 ‘트레이더 조’에서 연일 품절 현상을 빚고 있다. 구입 수량 제한까지 둘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제품은 ‘우엉유부김밥’이다. 식품 기업들의 한식 제품도 인기다. CJ제일제당 비비고 브랜드의 만두와 국탕류 등 제품이 해외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SNS 문화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해외 매출 신장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농심을 밀어내고 라면 업계의 대장주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들여다보면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식 메뉴는 곰탕, 김밥, 백반, 만두, 라면 등 한국인이 즐겨먹는 일상식이다. 과거 불고기와 비빔밥 등 외국인에게 유독 인기 있던 메뉴에서 이젠 한국인의 입맛이 그대로 투영된 시장이 동시에 해외에서 열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자영업자와 민간 기업의 자발적 노력이야 그렇다 치고, 정부 차원의 어떤 지원이 있었길래 이처럼 괄목할 결과가 우후죽순 쏟아나오는 것일까.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대대적으로 추진한 ‘한식 세계화’ 사업으로 대표되는 국가 차원의 한식 홍보 마케팅 노력은 그간 계속 있어 왔다. 2010년 한식재단이 설립됐고 조직 개편을 통해 지금의 한식진흥원(KFPI)이 됐다.
떡볶이 등을 내세워 해외 소비자의 입맛을 공략하려는 당시 추진 전략이 눈에 띈다. 지금 해외 소비자들은 한국의 대표적 간식인 떡볶이에 대한 관심도가 아주 높다. 해외 지사를 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와 한국관광공사 등도 이에 발 벗고 나선 바 있다.
2019년 한식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불이 붙었다. 정부 차원의 한식 산업 부양책이 다양하게 쏟아졌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시행하고 있는 ‘해외 우수 한식당 지정제’가 대표적. 우수한 한식당을 널리 알리고 한식을 세계 미식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이 효과를 거뒀는지 실제로도 가시적 효과가 슬슬 나타나고 있다.

미식 강국 태국, 관광객 통해 음식 홍보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국가 간 관광 교류가 재개되면서 ‘미식 관광(gastronomy tourism)’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며 한식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다.국내 한식 산업이 직접 해외에 진출, 활약하는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이 국내에 한식을 체험하러 오는 미식 관광이 이를 견인하는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관광 업계의 움직임도 미식 관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5월 초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세계관광산업콘퍼런스’ 개막 무대에는 유려한 풍경이 아니라 ‘김밥’이 주인공이었다. ‘미식과 지속 가능한 관광산업’을 주제로 진행한 이 행사에 관광 분야 장차관 및 관광청장, 관련 기업인 등 약 15개국 4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한 세계 관광 업계 관계자는 저마다 미식 관광을 주제로 연설과 발표를 진행했다.
누르 아흐마드 하미드 PATA(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 CEO는 ‘미식 관광의 기회와 도전 과제’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고, 이어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부탄의 관광 장관이 ‘세계 각국 미식 관광의 성공적인 정책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지난 2002년부터 ‘미식 외교’를 추진해 온 태국 정부는 민간과 함께 ‘세계 속 태국 주방(Thailand Kitchen of the World)’이라는 슬로건으로 자국 음식 산업을 육성, 세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미식 브랜드인 타이 셀렉트(Thai Select Certification)는 2007년부터 추진 중인 사업으로 정부가 공식 인증한 레스토랑에만 부여된다.
이를 받으려면 태국 요리 기준에 부합하는 메뉴의 구성, 식재료 등을 충족시켜야 한다. 타이 셀렉트 인증을 통해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태국 레스토랑 수준을 균등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인증을 득한 업체에는 홍보 및 금융 등 다양한 지원을 해준다.
특히 지난해 ‘소프트 파워’ 육성을 정책으로 삼고 출범한 국가 소프트 파워 전략 위원회는 세타 타위신 총리가 직접 위원장을 맡고 이 중 타이 셀렉트 브랜드를 강화하기로 했다. 태국 정부의 소프트 파워는 관광, 축제, 스포츠, 음식, 영화, 음악, 미술, 도서, 게임, 디자인, 패션 등 11개 분야를 지칭한다. 위원회는 현재 해외에 소재한 태국 레스토랑 약1만7500개소(태국 상무부 자료)의 인기를 기반으로 문화, 관광을 연계한 산업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1980년대부터 스시와 스키야키, 젓가락 등 일식의 고급화, 세계화를 추진해 온 일본 역시 2000년대 ‘신(新)일본 양식’을 내세우며 전통문화를 현대 신기술과 결합한 문화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해외 소재 일식당에 건물이나 내부 인테리어부터 디자인, 식기, 음식, 유니폼 등까지 기준을 제공해 ‘일본 스타일’의 정체성을 통일했다.
특히 2011년부터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쿨 재팬(cool Japan)’ 프로젝트는 일식에 중점을 둔 정책이다. 해외 일식당 지원과 인력 공급을 위한 요리사 육성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지중해식 식문화’ 주도권 장악 노력
식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유럽 국가도 자국의 식문화 세계화에 적극적인 건 마찬가지. 프랑스는 국가 정책으로 일찌감치 음식 산업 진흥책을 시행했다. 1990년부터 시작한 ‘미각주간’ 사업을 통해 자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젊은 층에 프랑스 고유의 식문화를 알리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미각을(La Gout Semaine de Gout)’이란 모토를 내건 미각 주간(매년 10월 2째주)은 식문화평의회 주관으로 요리사 조합과 교육기관, 식품 업계가 공동으로 프랑스 식문화를 전파하고 되돌아보는 캠페인이다.
이때 숙련된 프랑스 요리 셰프 3500명이 각 학교로 찾아가 초등학교 고학년(10~11세)을 대상으로 미각 조리 수업을 실시한다. 또한 ‘세대를 초월한 미각 전국 콩쿠르’를 열고 전국을 순회하며 식문화에 대한 심포지엄(미각 철학 카페)과 세미나를 연다.
이탈리아 역시 자국 음식 문화의 강점 중 하나인 슬로푸드와 냉장고 없는 주방 등 자국 음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해외에 전파하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중해식 식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대외적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프랑스 요리, 지중해 요리, 멕시코 요리, 일본 요리(새해 기념 일본 전통 식문화) 등은 등재된 반면, 발효 음식으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식은 등재 소식이 아직 요원하다. 정부 차원의 인증 제도나 미쉐린 가이드 등 민간 인증 기관에서는 한식을 주목하고 있지만 미식 국가의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타국에 비해 브랜드가 미약하다.
미식 산업은 관광 분야처럼 종합적인 분야라 산업적, 문화적 시장 개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노력이나 유네스코 등 세계적 공신력을 지닌 기관으로부터 인증 취득 등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범정부적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굽고 찌고 끓이고 삶는 등 다양한 조리법과 채소와 해산물, 육류 등 다양한 식재료, 발효를 통한 미각적, 영양학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등 한식이 보유한 특장점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특성을 살려 웰니스 트렌드에 부합하는 세계적 미식 문화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정책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개인과 기업이 일궈놓은 한식의 인기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미식으로서 평가받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경쟁 국가 못지않은 체계적인 부양책과 기준이 필요하다. 이제는 그 풀뿌리가 되는 국내 외식업이 경기 불황과 제도적 규제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되돌아 봐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