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더 특별한 통상

③ 더 특별한 통상

Interview 박온서 한국식품기술사협회 회장 “K푸드 인기, 숨은 주역은 푸드 테크”
  • 이은영 기자
  • 최근 증권가의 시선을 사로잡은 식품 기업이 있다. ‘불닭볶음면’ 성공 신화를 쓴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5% 증가하는 기록을 썼다. 실적이 증권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자, 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으며 상한가를 기록했다. 삼양식품은 단숨에 오리온을 꺾고 CJ제일제당을 잇는 식품 업계 시가 총액 2위 기업이 됐다. 이 밖의 국내 주요 식품 기업도 줄줄이 호실적을 기록했다. CJ제일제당은 자회사 CJ대한통운의 실적을 제외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267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보다 77.5% 증가했다. 오리온도 영업이익 1251억원으로 1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롯데웰푸드는 전년 대비 100.6%, 빙그레는 65.2% 증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동원F&B와 오뚜기도 성장세에 올라탔다. ‘K푸드(한식)’의 세계적인 인기에 따른 해외 사업 호조가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K푸드의 인기 뒤엔 푸드 테크가 있다. 박온서 한국식품기술사협회 회장은 “음식은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진입장벽이 낮은데, 음식을 산업화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식품 기업이 수십년간 쌓아온 기술력이야말로 K푸드 인기의 일등 공신”이라고 말했다. 한국식품기술사협회는 식품기술사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한 식품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단체다.


    1989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총 1015명의 식품기술사가 전국 산업체와 연구기관에서 공무원, 대학 교수, 기업인, 컨설턴트 등으로 일하며 식품 산업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협회는 관련 교육, 컨설팅 사업뿐만 아니라 식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며 국내 식품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식품의 물성이나 맛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지역 농협과 함께 ‘두부 티라미수’ 등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한다. 산업체 점검과 제품 공정 표준화 작업 도협회가 담당한다. 박온서 회장은 30년간 식음료 산업 현장에서 일했다. 하이트진로를 거쳐 풀무원 부사장을 역임한뒤 2022년 협회 회장 자리에 올랐다. 박 회장을 5월 17일 서울 송파구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식이 해외에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영향이 컸다고 본다. 이 기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주목받지 않았나. 문화의 끝은 음식이다. 어떤 나라 문화를 접하게 된 계기가 음악이었든,영화·드라마였든, 여행이었든, 그 나라의 문화를 몸소 느껴보려면 음식부터 먹어보지 않나. K푸드 열풍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K팝, K콘텐츠 등 한국 문화가 인기를 더하던 와중에 해외여행도 다시 활발해졌고, 한국을 찾아 한국 음식을 맛보는 관광객도 많아졌다. 그룹 방탄소년단(BTS)등 유명 K팝 스타들이 한식 관련된 방송 활동을 하거나 한국 음식 레시피를 팬에게 알려준 것이 화제가 돼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호기심을 키우기도 했다.


    또 하나는 푸드 테크의 혁신성에 있다. 인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농업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 세계 인구는 100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급속히 늘고 있다. 지금은 체감하기 어렵지만, 미래엔 식량 부족 문제가 닥칠 위험이 크다. 이때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 푸드 테크다. 세포 배양 고기, 식물성 대체육 등 푸드 테크 기술은 미래에 식품 생산성을 크게 향상 할 핵심 기술이다. 한국인은 혁신을 잘한다. 푸드 테크 산업에서도 한국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2023 코엑스 푸드위크(제18회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냉동김밥 업체 관계자가 시식용 냉동김밥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식품 기업은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나.

    “CJ제일제당 ‘비비고’, 오리온 ‘초코파이’가 해외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초코파이는 특히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하는 물량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성공한 거의 유일한 한국 식품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밖에 한식은 비건(vegan) 식품이라는 인식 때문에도 인기가 많은데, 그 덕분에 풀무원 두부 공장이 몇 년 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많이 먹는 찌개용 두부가 아니라, 샌드위치에 고기 패티 대신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단단한 두부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HP(High Protein·고단백) 두부’라고 하는데, 채식주의자에게 인기가 많다.김도 해외에서 잘 팔린다. 미국에서 냉동 김밥이 대박 난 것이 기폭제가 됐다.


    풀무원은 실험적으로 김을 육지에서 양식하는 데 성공했다. 바다 김과 차이는 생산성이다. 바다 김은 겨울에만 채취한다. 12월에서 3월까지, 많아 봐야 대여섯 번 정도 수확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 급증하고 있는 수요를 못 따라간다. 풀무원은 바다가 아닌 인공 수조에서 김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육지에서 생산하면 1년에 스물다섯 번을 채취할 수 있다. 생산성이 네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다에서 문제 되는 중금속, 미세 플라스틱, 해양 자원 고갈 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의 ‘블루날루’라는 기업과 함께 세포배양 생선도 만들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있다.”


    K푸드 붐에 한국 기업의 푸드 테크 기술이 얼마만큼 기여했다고 생각하나.

    “푸드 테크는 식품 산업의 기본이다. 최근 냉동 김밥이 미국에서 인기인데, 국내에선 김밥을 그때그때 바로 사서 먹는 것으로만 인식하지, 어떻게 얼릴지는 고민할 일이 없지 않나. 얼려본 적 없는 김밥을 터지지 않으면서도 맛을 그대로 지킬 수 있게 얼리는 기술을 업계가 고민했을 것 같다. 냉동 공법도 식품 종류에 따라 무척 다양하다. 해본 적 없는 것일지라도 식품별 맞춤형 기술을 개발하고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고단백 두부도 비슷하다. 


    샌드위치에 고기 패티 대신 넣는 두부를 만들려면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 전문가들은 두유 농도를 높이고 응고제를 많이 넣으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사실 두부는 두유 농도가 높을수록 부드러워진다. 두유가 묽어야 물기가 잘 빠져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런 것이 기술(푸드 테크)이다. 이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두부 시장을 일본 기업이 석권했었는데, 지금은 점유율 절반 이상이 한국 기업이다.” 



    + 국내 주요 식품 기업 2024년 1분기 실적

    단위: 원 | 자료_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푸드 테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푸드 테크’라는 말의 범위를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푸드 테크를 우리말로 하면 ‘식품 기술’인데, 정부는 식품 기술에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등 4차 산업혁명 요소까지 들어 있어야 푸드 테크로 보는 것 같다. 식품기술은 그 자체가 과학이다. 예를 들어, 콩나물만 해도 집에서 비닐봉지 덮어 두고 대충 키워도 쑥쑥 자라니까 산업도 쉬울 거라고 보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주문 물량을 예측해서 키우고 출고하는 일에는 수많은 과학적 노하우가 필요하다. 농약 없이 콩나물 성장을 촉진하려면 에틸렌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에틸렌 가스를 직접 살포하면 안 되고, 인체에 무해한 탄산가스를 이용해 에틸렌 가스가 저절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콩나물 양식장에 가면 방안에 에틸렌 농도가 얼마인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중앙 제어실에서 각각의 성장 속도와 출고 일정 등을 고려해 이 농도를 조절한다. 기술 없이는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것이 스마트팜이고 푸드 테크 아니겠나. 그런데 정부의 분류법대로면 이는 식품 기술일 뿐이지 푸드 테크는 아니다.”



    이 분야 정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K푸드 인기에는 정부 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2022년에 정부가 식품 산업 발전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2023~2027년에 푸드 테크를 기반으로 한 식품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산업에 힘을 실어줬고, 대기업이 전 세계로 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애로 사항도 있을 것 같은데.

    “규제 관련 아쉬움은 남아 있다. 과거 정부는 ‘규제 혁신’이라는 이유로 식품위생관리인제도를 없앴다. 식당에 영양사, 식품 회사에 위생관리인, 식품기술사 등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제도였는데, 규제 타파 차원에서 없앴다. 건강 기능 식품에만 비슷한 제도가 있고 일반 식품엔 없다. 건물을 지을 땐 건축기술사 도장이 있어야 도면이 승인되는데, 식품 공장은 그런 게 없다. 식품을 만들 때도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안전을 위해서라도 다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이런 이야기를 해 왔는데 자꾸 규제 차원에서 이야기돼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국내에 1000명이 넘는 식품기술사가 있는데 이들의 전문성을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훌륭한 전문가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대기업만 잘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의 전문성과 역량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500인 이상 식품 공장에 식품기술사를 적어도 한 명 이상 두게 하는 등, 식품 안전을 확보하고 식품 기술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해외처럼 말이다. 규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안전성과 기술력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라고 생각한다.”



    풀무원기술원 수조 안에서 김이 재배되고 있다. 풀무원은 2021년부터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고 3년 안에 육상 김 양식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풀무원

    개선점을 꼽자면.

    “해썹(HACCP)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해썹은 우리 정부의 식품안전관리 체계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부여한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식품의 90.1%가 해썹 인증을 받았지만, 국제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다. 이 때문에 식품을 수출하려면 국제 인증을 또 받아야 한다. 일을 두 번 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 식품 안전 지도 기관과 심사 기관이 같아서 그렇다. 국제 표준은 지도와 평가를 분리하는 원칙이 있다. 지도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하더라도 평가를 민간에 이양하는 등 국제 기준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 개선과 함께 글로벌화에도 힘을 줘야 한다. 정부는 태평양 연안 국가와 식품 안전 관련 정보를 교류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하고 인도,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이 참여한다. 특히 인도나 베트남, 칠레는 한국의 해썹을 높게 평가한다. 이들 국가와 해썹 글로벌화를 논의 중이다. 특히 K푸드 인기가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해 우리가 식품 안전 인증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면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 생산해 동남아에 수출하는 음식인데 미국과 유럽의 기준을 따를 이유가 없지 않나. 해썹 글로벌화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