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통상 현장

DEPA 1호 추가 가입국에 이름 올린 한국 글로벌 디지털 통상 네트워크 확대 견인할 기반 확보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5월 2일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실에서 열린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발효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기념식에는 정 본부장을 비롯해 그레이스 푸(Grace Fu) 싱가포르 통상산업부 통상관계 장관, 토드 맥클레이(Todd McClay) 뉴질랜드 통상 장관, 클라우디아 사누에사리베로스(Claudia Yamile Sanhueza Riveros) 칠레 외교부 국제경제관계 차관이 참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의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DigitalEconomy Partnership Agreement) 가입이 5월 3일 공식 발효됐다. DEPA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회원국인 싱가포르·칠레·뉴질랜드 등 3개국이 디지털 통상 규범 확립 및 협력 강화를 위해 체결해 2021년 1월 발효한 첫 복수국 디지털 통상 협정이다. 한국은 2021년 10월 가입 절차를 개시한 이후 여섯 차례 협상을 거쳐 가입에 필요한 국내 법·제도 점검을 완료했다. 이어 지난해 6월 가입 협상을 마무리하고, 이번에 공식 발효까지 모두 마쳤다. 가입이 공식 발효됨에 따라 한국은 DEPA 제1호 추가 가입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향후 국내 기업은 DEPA를 토대로 권역별 주요국을 거점 삼아 전자상거래 기반 수출,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 분야 해외 진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개방형 협정인 DEPA는 현재 중국과 캐나다·코스타리카·아랍에미리트연합(UAE)·페루 등 5개국이 가입 협상을 진행 중이며 엘살바도르도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이 모두 가입할 경우, DEPA는 동북아에서부터 북미, 중남미, 중동까지 아우르는 명실상부한글로벌 디지털 협력 프레임워크가 된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5월 3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 이사회를 계기로 DEPA 가입 기념행사를 가졌다. DEPA 가입 기념행사에는 뉴질랜드와 싱가포르·칠레 등 기존 회원국의 통상 장차관이 참석했다. 정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DEPA 제1호 추가 가입국으로서 창립 멤버와 새로운 가입국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DEPA의 외연 확장에 힘을 보태겠다”며“DEPA가 경제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회원국 간 디지털 경제 협력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한국의 DEPA 가입에 대한 회원국 코멘트




디지털 경제, 디지털 통상이란

DEPA에 한국이 가입하고, 공식 발효되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알려면 디지털 통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디지털 통상이란 인터넷 등 전자적 수단으로 상품과 서비스, 데이터 교역 및 이와 관련된 경제주체 간 초국경적 활동을 말한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국가 간 상거래 영역이 확장되면서 생긴 개념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통상이 배나 비행기에 상품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면, 디지털 통상은 온라인을 통해 영화나 음악 같은 콘텐츠 등을 전송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통상 협정은 이러한 디지털 통상 과정에서의 룰을 만드는 과정이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비즈니스를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는 것을 지향한다. 전자적 전송물에 대해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것도 이를 위해서다. 


문제는 디지털 통상에 대한 국제규범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8년 WTO 각료 선언에서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관행을 지속하기로 합의한 후, 각료회의 때마다 각료결정을 통해 무관세 관행을 연장해왔다. 하지만 올해 2~3월에 진행된 제13차 각료회의에서는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관행을 제14차 각료회의(혹은 2026년 3월 31일 중 빠른 일자)까지 연장한 후 종료(expire)하기로 합의해 무관세 관행의 연장 가능성이 불명확해졌다. 제14차 각료회의에서 논의가 진전돼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관행이 바로 종료되지 않고 추가 연장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까진 ‘종료’에 방점이 찍혀있는 상황이다. K팝부터, K드라마까지 최근 국제사회에서 콘텐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으로선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관행 유지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정해영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수석 연구원은 “무관세 관행 폐지 시 우리 디지털 콘텐츠가 일부 해외시장에서 관세장벽에 노출되고, 각종 차별적 조치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클라우디아 사누에사 리베로스 칠레 외교부 국제경제관계 차관, 그레이스 푸 싱가포르 통상산업부 통상관계 장관, 토드 맥클레이 뉴질랜드 통상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DEPA 이전부터 디지털 통상 협력 늘려온 韓한국은 2019년 5월부터 WTO 전자상거래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 11월엔 싱가포르와 디지털동반자협정(KSDPA)을 서명했고, 이 협정은 지난해 1월 공식 발효됐다. 이어 2023년 6월엔 DEPA가입 협상이 타결됐다. 그리고 11개월이 지난 5월 3일 DEPA 가입이 공식 발효됐다. DEPA는 희망국이 기존 회원국과의 협상을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있는 개방형 협정이다. 가입국이 늘어날수록 회원국 간 디지털 통상 장벽은 낮아지고, 교역의 질과 양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DEPA는 비즈니스와 무역 원활화, 디지털 제품에 대한 대우, 데이터 사안, 기업과 소비자 신뢰, 사이버 보안 관련 확대된 신뢰 환경, 디지털 신원,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 혁신과 디지털 경제, 중소기업 협력, 디지털 포용 등 16개 모듈(module)로 구성돼 있다. 이를 통해 전자상거래 플랫폼 활용과 무역 과정 전자화로 거래비용을 낮춰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유리하게 만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DEPA의 핵심 내용은 ‘전자상거래 원활화’다. 우선 ‘종이 없는 무역’을 지향한다. 전자화된 무역 행정문서의 효력을 인정하고, 무역 행정 관련 데이터교환 및 교환 시스템 구축을 협력한다. 구체적으로 전자적 무역 행정 문서를 제공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또 전자 송장의 호환 지원을 위한 조치를 설계하고, 결제 시스템 간 상호 운용성을 확보해 국경 간 전자 결제를 활성화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자 무역 문서 활용을 촉진해 문서 처리와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통관 시간 단축 등 효율성이 증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송 화물에 대해선 투명하고 일관된 신속통관 절차를 마련하고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 금액과 물품 기준도 설정한다. 99% 이상 특송 화물로 배달되는 전자상거래 물품에 대해 신속 통관 및 면세를 제공해 직구 거래 지원도 강화한다. 국경 간 전자 결제 활성화를 위해선 표준 분야 협력과 함께 삼성페이나 카카오페이 등 국내 전자 결제 시스템이 상대국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구축을 위한 협력도 추진할 수 있다.디지털 환경에 대한 신뢰 제고도 DEPA의 핵심 의제다. 


전자상거래 및 디지털 무역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규정하는 법적 체계를 도입하고 모든 이용자를 동일하게 보호하도록 규정한다. 또 전자상거래에서 사기나 기만 행위를 방지하고 소비자 구제를 위한 소비자 보호 법제 도입을 추진한다.회원국의 법 집행에 대해서도 상호 협력한다. 디지털 비즈니스 기반이 되는 온라인 환경을 안전하게 조성하고, 사이버 보안 역량 강화를 위해 회원국 간 협력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제한하지 않는 등 디지털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것도 DEPA의 핵심 내용이다. DEPA는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허용한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기업이 한국 지사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본사로 이전해 데이터 기반 혁신 및 새로운 가치 창출을 도모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컴퓨터 장비 등 데이터 저장 시설을 현지화 하도록 요구해서도 안 된다. 한국 기업이 DEPA 회원국에 진출할 경우 현지에서 수집한 데이터 처리를 위한 서버 등 인프라를 별도로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 아울러 디지털콘텐츠에 대해 자국 제품과 차별적 요건을 부과하는 것도 금지된다. 정부가 보유한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회원국 간 디지털 신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조항도 있다. 특히 AI와 관련해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며 책임감 있는’ AI 기술 사용을 위한 윤리적 거버넌스 체계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핀테크와 디지털신분증, 중소기업 부문에 대한협력 확대를 지향한다.



+ DEPA 주요 내용 

자료_산업통상자원부



+ DEPA 추진 경과

자료_‘통상’ 정리



DEPA가 열어줄 새로운 기회

DEPA의 조항에서 보장하는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은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자율주행 분야 해외 서비스 개발이 빨라질 수 있다.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현지 도로 정보와 주행 정보, 교통 상황 등 현지 정보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렇게 확보한 정보를 처리·저장할 서버 등 장비를 꼭 현지에 두지 않아도 된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해외 진출 비용을 경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잔존 수명 등 전기차용 배터리의 상태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배터리 분석 서비스를 외국에서 제공하려면 현지에 수출하거나 판매된 이차전지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필수다. 


DEPA는 현지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국내 서버를 활용해 분석한 뒤, 그 결과를 해외 고객에게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보장한다. 현지인의 얼굴 색상과 피부 특징 등 정보를 활용해 화장품을 개발·수출하려는 업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지 정보를 국내 연구개발(R&D) 센터로 이전해 신제품을 생산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데이터 이전이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DEPA는 정당한 공공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금지 및 제한 조치는 예외적으로 가능하다고 규정해 정책적 정당성을 근거로 각국의 규제당국이 데이터 이전에 대해 일정한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DEPA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통상 체급을 키운 것처럼, DEPA가 한국의 디지털 통상 네트워크를 넓히는 채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DEPA의 회원국이 늘어날수록 AI, 핀테크 등 디지털 신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기회 또한 증가하고, 중소기업의 디지털 경제 참여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복수국 간 협정인 DEPA는 앞으로 디지털 통상 규범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추가 회원국이 지속적으로 가입함에 따라 DEPA의 외연이 확장될수록 글로벌 디지털 통상 규범 확립에 있어서 영향력이 확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DEPA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는 통상 프레임워크가 될 것”이라며 “특히 중국이 가입할 경우,중국과의 디지털 교역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