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탄소 중립과 통상법
  •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의무를 담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이 2015년 채택된 후,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은 국제통상법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목표를 선언하고 5년 단위로 탄소배출감축약속(NDC·Nationally Determined Commitment)을 발표하고 있고, 한국 역시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탄소 감축을 약속한 바 있다.

    탄소 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은 교역과투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종 규제를 도입하고 있고, 청정에너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탄소 중립 관련 규제와 지원은 외국 기업의 교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 이 지점에서 교역과 투자에 관한 법을 다루는 국제통상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과 관련한 통상법적 대응 방안은 △양자 △복수 국가 △다자 등 총 세 가지로 나뉜다.양자 간 통상 협력유럽연합(EU)과 가장 중요한 양자 통상 현안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Adjustment Mechanism)다. 이 제도는 철강과 알루미늄 등을 EU로 수출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 시 발생한 탄소 배출량 정보를 EU에 보고해야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시범 시행됐다.

    2026년부터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 제출해야 하므로 철강 수출 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 기업의 탄소 배출량 보고 역량 및 저탄소 생산 역량 강화를 지원해 타국 대비 상대적 우위를 마련해야 한다. 또 우리 정부도 자체적으로 배출권거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지불한 탄소 가격을 EU에서도 최대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긴밀하게 통상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탄소중립산업법(NZIA·Net Zero Industry Act)의 입법 과정을 잘 모니터링하고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탄소 중립산업 파트너십 등에 적극 참여해 EU 청정에너지시장 진출의 기회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법은EU의 그린딜 산업 계획의 일환으로 유럽 내 친환경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정부 보조금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이미 발효한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배터리, 친환경 차, 태양광, 수소, 탄소 포집 등 청정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10년간 3910억달러를 지원한다. 그간 한미 양자 통상협의를 거쳐 우리 기업은 현재 IRA를 통해 신설된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세액공제제도는 친환경 차를 개인적인 용도로 구매했더라도 금융 형태가 리스라면 7500달러를 세액공제해 준다. 또 배터리 셀 1k 생산 시 35달러, 배터리 모듈 1k 생산 시 10달러의 세금을 공제해 준다. 국내 배출권거래제도의 무상 할당을 미국은 보조금으로 보고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같은 상황에 있는 EU와 공조해 이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잘 대응할 필요가 있다.


    자료_조수정 교수

    복수 국가 간 통상 협력

    1년 반의 통상 협상을 통해 작년 말 타결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필라 3 협정은 청정 경제에 대한 14개국 간 통상 협정이다. 청정 산업 표준 협력, 인프라 구축 협력 등 후속 이행 프로젝트가 향후 가동될 예정인 만큼 이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역내 청정에너지 사업 기회 확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또 작년 12월에 공식 출범한 기후클럽(Climate Club) 역시 한국을 포함 36개 국가가 함께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국제 공조를 추진하는 중요한 협의체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 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를 활용해 탄소 중립을 이행하자는 CFE(Carbon Free Energy) 이니셔티브도 더 폭넓게 확산할 필요가 있다.

    다자 및 지역 기구 차원의 통상 협력

    2020년 11월에 50여 회원국이 참여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과 지속가능환경협의체(TESSD·Trade and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Structured Discussion)가 발족해 환경 상품과 서비스 작업반, 보조금 작업반, 무역 관련 기후 조치 작업반, 순환 경제 작업반 등 네 개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이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아·태 지역의 대표적 경제 통상 기구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는 2025년 한국에서 정상회의를 연다. 한국은 APEC 의장국으로서 탈탄소·친환경 정책과 글로벌 통상 규범 간 상생을 모색하는 의제를 과감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APEC은 2011년 HS 6단위 54개 환경 상품의 관세를 5% 이하로 낮추면서 WTO 환경 협상의 추동력을 끌어냈던 만큼, 환경 상품과 환경 서비스의 자유화 같은 탄소 중립과 자유무역에 기여하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글로벌 룰 세팅(rule setting)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의 속도와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탄소 중립으로 가야 한다는 기본 방향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 4일 에너지 통상 포럼을 출범해 에너지와 통상이 교차하는 부분에 대해 두 달에 한 번씩 전문가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앞으로도 양자적, 복수 국가 간, 다자적 통상 수단을 통해 외국의 기후 조치에 적극 대응하고 이를 기회로 활용하며, 또한 국내적으로도 탈탄소 산업 역량 강화를 위해 통상 정책이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 민간, 학계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