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책으로 읽는 통상

휴대폰의 두뇌에서 AI의 두뇌로, arm 모든 것의 마이크로칩 누구나 접근 가능 ‘칩의 스위스’ ARM 통해 조망한 반도체 역사
arm 모든 것의 마이크로칩’. 생각의힘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 설계 시장의 90%를 차지한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Advanced RISCMachines)은 1985년 영국 에이콘(Acorn) 컴퓨터로 시작했다. RISC(Reduced Instruction SetComputer)라는 컴퓨터 아키텍처를 고안했다.RISC는 반도체 칩이 가동되는 중 명령어가 20%정도만 사용되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진 아키텍처다. 이를 기반으로 설계한 반도체는 명령어를 잘게 쪼개서 자주 사용하는 명령어에 집중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도 적다.

ARM은 1980년대 초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의 문맹 퇴치 운동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공영방송BBC의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에 정식 보급사로 지정된 에이콘이 마이크로컴퓨터 제품을 공급하면서 기반을 닦았다. 1990년 RISC의 가능성을 본 애플이 에이콘 빛, VLSI와 조인트 벤처를 만들면서 ARM(Acorn RISC Machines)이 태어난다. 세계 최대 칩 회사인 AT&T보다 저렴한 가격에 맞춤형 설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애플의 투자를 이끌었다. 애플의 요청으로 회사명에서 에이콘(Acon)이 ‘어드밴스드(Advanced)로 바뀌었다.

오늘날 세계적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기업‘으로서의 토대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케임브리지에서 13㎞ 떨어진 스와프햄 불벡의 칠면조 사육장으로 썼던 헛간인 하비스반에 모인13명의 브레인은 둥그렇게 배치한 책상에 앉아 칩 연구에 매달렸다. 이 중 스티브 퍼버는 ARM이 경쟁 업체들에 뒤진다고 생각해 맨체스터대 컴퓨터공학 교수로 이직했다.

ARM은 휴대폰의 대중화와 함께 급성장했다.초기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최대였던 노키아가 ARM의 프로세서를 탑재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저전력 저비용 반도체 솔루션으로 노키아의 휴대폰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ARM은 휴대폰 AP 설계 시장을 장악했다. 애플 아이폰과 초기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했던 삼성전자 갤럭시 모두 ARM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한 AP가 들어갔다. 2010년대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열린 것은 ARM을 팹리스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했다. 주요 고객사들은 ARM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개발하고, 로열티를 ARM에 지급한다. ARM에 로열티를 내는 고객사 리스트에는 애플,아마존, 구글, 삼성전자, 엔비디아,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화웨이, 테슬라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테크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ARM의 고객사이면서도 투자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ARM의 비즈니스 모델 덕분이다. ARM은 특정 업체와 독점 계약을 맺지 않고, 일정 자격 조건만 되면 누구나 기술 라이선스를 맺고 ARM의 설계를 쓸 수 있다. 누구에게나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반도체 칩의 스위스’로 불린다. 특히 판매가 1000달러가 넘은 고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고사양 칩 하 나당1.5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한 로열티는 ARM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6800개 특허를 보유 중이고, 2023년 2월 기준 2500억 개의 컴퓨터 반도체에ARM 설계가 채택된 기술력 덕분에 가능한 사업 모델이다.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인디펜던트’ 편집장 출신 제임스 애슈턴이 쓴 ‘arm 모든 것의 마이크로칩’은 팹리스 업계 절대 강자 ARM의 성장사를 상세히 보여주는 책이다. ARM을 둘러싼 세계 반도체산업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반도체 협업을 위해 논의했다는 사실도 다루고 있다.이 책에서는 ARM의 대주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ARM 지분을 인수한 과정도 보여준다.

2016년 7월 3일 튀르키예 남서부 항구도시 마르마리스에 있는 ‘파인애플’ 레스토랑에서 스튜어트체임버스 ARM 회장, 손 회장 등이 지분 매각 협상을 한 장면을 상세히 묘사했다. 당시 최근 3개월 평균 주가보다 69% 높은 수준인 240억 파운드에 ARM 지분 90%를 인수한 손 회장은 각종 투자 실패로 자금 압박을 받자,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빅테크가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영국과 미국 정부가 모두 반대하자 매각은 결국 실패한다. 반도체 산업의 공공재나 다름없는 ARM을 특정 팹리스가 독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공지능(AI) 시대 ARM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기대감은 ARM의 주가에서 잘 드러난다. 2023년 9월 14일 그해 미국 기업공개(IPO) 중 최대 시가총액 규모로 나스닥에 상장한 ARM의 주식은 2024년 3월 28일 124.99달러에 거래를 마쳐, 주가가 6개월 사이에 두 배 이상 뛰었다. 저자는 “첨단 기술 업계 지형을 이해하고, 반도체 강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ARM을 꼭 알아야 한다”고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