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EU가 추진하는 ‘지속가능성제표’는 국제 거래를 어떻게 바꿀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이 ‘지속가능성제표를 공시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지속가능성제표는 유럽연합(EU)이 지속 가능성 공시를 위해 요구하는 문서다. 재무제표에 상응하는 것이다. EU는 2023년 12월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이행 가이던스를 발표했다. 유럽은 가장 일찍 비재무 공시를 의무화한 뒤 이를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4년 ‘비재무 공시 지침(NFRD·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을 법규화했다(2017 회계연도부터 적용). 2019년에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지속 가능 금융 공시 규정(SFDR·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Regulation)’도 채택했다. 이후 NFRD를 강화하는 ‘기업 지속 가능성 공시 지침(CSRD·Corporate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을 입법했다.

CSRD는 2022년 11월 유럽의회의 승인을 얻어 2023년 1월 6일 발효됐다. 비재무 공시 항목들도 재무적 관련성이 있어 ‘지속 가능성 공시’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U는 2023년 7월 CSRD 이행을 위해 ‘유럽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Standards)’을 채택했다. 

CSRD가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

CSRD는 2024 회계연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역내 중소기업에도 적용되고, 역외 기업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적용된다. 적용 기업 수가 약 5만 개에 이른다. 한국 기업 중 상당히 많은 기업이 이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우선 EU 역내에 직원 250명 초과, 자산 2000만 유로(약 289억원) 초과, 순 매출 4000만 유로(약 579억원) 초과 중 두 개 이상에 해당하는 현지 법인이있는 경우, 2025 회계연도부터 공시해야 한다. EU역내 순 매출이 1억5000만 유로(약 2100억원)를 초과하며, 역내에 자회사 또는 지사를 두고 있는 제 삼국 기업은 2028 회계연도부터 공시해야 한다.

한국 본사도 CSRD에 따라 공시해야 하는 것이다.공시하지 않는 등 CSRD를 위반한 경우 제재받을 수 있다. CSRD에서는 효과적이고 비례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제재를 요구할 뿐 제재 내용은 각국에 위임되어 있다. NFRD 당시 독일의 경우 최대 1000만유로(약 144억원), 연간 총 매출액의 5% 중높은 금액, 취득한 이익 또는 회피된 손실의 두 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입법을 했다. 처음으로 CSRD 이행 입법을 한 프랑스의 경우 5년 이하 징역형 또는 7만5000유로(약 1억원)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유럽에 자회사나 지사를 두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유럽 기업과 거래하는 경우 공시 의무 영향을 받게 된다. 공시 대상에 가치 사슬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시 의무자는 가치 사슬의 인권,환경 등 사안에 대하여 부정적 영향과 위험, 기회 등을 공시해야 한다. CSRD는 이른바 스코프3(scope 3)를 공시 범위에 포함 시켰다. 스코프 3는협력 업체와 물류는 물론, 제품 사용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한다. 이처럼 유럽과 거래하는 회사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CSRD는 사안의 중요성을 평가하거나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면서 실사(Due Diligence)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공시 대상 기업은 가치 사슬에 있는 회사를 상대로 인권 및 환경 실사를 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유럽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도 인권 및 환경 실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료_법무법인 지평

‘이중 중요성’과 가치 사슬

공시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요성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중요한 사안과 문제를 식별하는 과정이다. 지속 가능성 공시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두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영향 중요성(GRI)’이고,다른 하나는 ‘재무 중요성(TCFD와 ISSB)’이다. 그런데 EU CSRD는 두 가지를 포함하는 ‘이중 중요성’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 공시는 가치 사슬을 포함하고, 가치 사슬은 업스트림(생산까지 단계) 및 다운스트림(생산 이후 판매, 소비까지 단계)을 망라한다. 지속가능성제표에는 가치 사슬의 사업 관계에서 발생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중요한 영향, 위험 및 기회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야 한다. 사업 관계는 직접적인 계약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항에 가치 사슬 정보를 포함할 필요는 없으며,사업 관계상 중요한 영향, 위험과 기회가 연결된 경우에만 포함하면 된다. 가치 사슬의 공시 대상 여부도 중요성 평가를 통해 이뤄진다. 가치 사슬의 어느 부분(지역, 활동, 운영, 공급 업체, 고객, 기타 관계 등)에서 중요한 지속 가능성 사안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소매 회사가 역외 지역에서 생산된 목제 장난감을 파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역외 지역의 공장에서는 먼지와 화학물질로 산업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

이 경우 협력 회사 직원과 지역사회 주민에게 중대한 건강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영향 중요성). 아울러 해당 협력 업체의 행정 당국이 산업 안전 관련 법을 강력히 규제하면 해당 협력 업체가 벌금을 받거나 폐쇄될 수도 있다(재무 중요성). 그렇다면 중요성이 인정되며 공시의 대상이 된다.

유럽 지속 가능성 공시, 국제 거래 바꾸는 도화선

유럽의 지속 가능성 공시는 무역과 국제 거래를변화시키는 도화선이다. 환경과 인권, 거버넌스가 무역 거래의 주제로 들어오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을 무시하는 기업은 국제 거래에서 배제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아동 노동을 하는 동남아 국가에서 물건을 조달해 공급하거나 환경 파괴를 통해 얻은 원료를 가공해 수출하는 것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무역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지속 가능성 공시는 기업에 어떤 이점이 있을까. CSRD에서는 기업이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해 수준 높은 공시를 하면 여러 이점이 있다고 제시한다. 우선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투자 및 금융 상품이 늘어나고 있어 금융 자본을 쉽게 조달하게 된다. 지속 가능성 공시는 기업이 지속 가능성 문제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기업과 이해관계자 사이의 더 나은 소통을 위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기업의 평판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유럽이 앞서고 있지만,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속 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고, 한국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를 2026년 이후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계획이다. 공시는 이해관계자와 소통이다.이를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용어설명
  • * ① 지속가능성제표 유럽연합(EU)이 지속가능성 공시를 위해 요구 하는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