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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맞은 韓 FTA 보호무역 도전 속 통상의 새 지평을 그리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월 2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 ‘자유무역협정 발효 20주년 콘퍼런스’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의 첫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가발효된 지 올해 4월 1일로 20년이 됐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21건의 FTA를 59개국과 체결했다.3월 2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서울에선 한국의 FTA 20주년을 기념하는 ‘글로벌 도전, 새로운 도약을 위한 통상 정책’ 콘퍼런스가 열렸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산업 정책과 통상 정책을 융합한신통상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국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을 기업에 주고, 보호무역주의 행태를 보이면서 세계무역기구(WTO)와FTA로 대표되는 자유무역 체제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콘퍼런스 기념사에서 “각국의 자국 산업육성 정책 추진에 따라서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있다”면서 “FTA를 통해 전 세계GDP 85%에 달하는 국가들과 구축한 통상 네트워크는 대외 불확실성과 리스크에 대응하는 데 중요한 정책 수단”이라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지난 20년간 구축해 온 한국의 FTA에 대해 “첫 FTA 발효 후 20년간 한국의 수출 규모는 2.3배 증가했다.이 중 FTA 파트너 국가로의 수출이 84%를 차지한다”면서 “시장 개방의 우려가 적지 않았던 농식품 분야는 국내 시장이 다양화됐고, 수출 또한 많이 증가해 12대 주요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다”며높게 평가했다.이날 콘퍼런스에서 세계 통상 석학들은 한국이FTA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면서 차기 과제로 ‘서비스 교역 확대’를 주문했다.

리처드 볼드윈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국제경제학 교수는 “상품 교역은 2008년을 전후로 정점을 찍었지만, 아직 서비스 교역은 정점에 이르지 못했다”라면서 “세계는 지금 교역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볼드윈 교수는 상품 교역이 한계에 달한 이유로‘생산 자동화 시스템 확산으로 국가 간 생산비 격차가 축소된 점’을 들었다.

그는 “과거에는 인건비가 싼 곳에서 제품을 생산해, 소비력이 큰 선진국으로 보내는 게 당연했다. 이 과정에서 상품 교역이 늘었다”면서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 생산 자동화가 되면서 선진국에서도 인건비 부담이 줄게 됐다. 개도국에서 생산함으로써 줄이는 비용보다 물류비용이 더 드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세계적으로 서비스 교역 장벽이 상품 교역 장벽보다 높다”며 서비스 교역의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통상 정책을 끌고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통상교섭본부장이3월 28일 서울 소공동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자유무역협정 발효 20주년콘퍼런스’에서 FTA를 통한수출 증진 및 신시장 개척공로로 산업부 장관 표창을받은 수상자와 기념 촬영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WTO의 기능 상실을 지적하며, 지역무역협정(RTA)을 중심으로 통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우라타 슈지로 일본경제무역산업성연구소(RIETI) 이사장은 “규칙 제정, 무역 자유화, 분쟁 해결 등의 역할을 하는 WTO의 기능이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등의 RTA가 기능을 상실한 WTO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앞으로도 교역에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적 불확실성은 늘어날 것”이고 “CPTPP 가입은 한국의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공감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최근 한국과 칠레가 주도한 ‘개발을 위한 투자 원활화협정’처럼 뜻이 맞는 나라들이 그룹을 만들어 그룹 간 규범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향후WTO 체제의 과제”라고 말했다. 글로벌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해 온 WTO가 기존의 ‘회원국 만장일치’로만 규범을 만드는 것을 고수할 경우, 체제를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견해다.‘글로벌 대변환기, 통상 정책 방향’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맡은 장성길 통상정책국장은 “(앞으로 한국은) 최대한 많은 국가와의 통상 관계를 통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주요 국가와 산업·통상 정책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며 “FTA 체결을 확대하는 동시에, FTA 미체결 국가들과는 신흥국이 관심을 갖는 개발 분야와 디지털, 바이오 등 신통상 분야협력을 포함하는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늦어도 5월에는 기존의 통상 정책을 업그레이드한 종합적인 통상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날 콘퍼런스에서 한국무역협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지난 20년간의 FTA 추진 성과, FTA를 활용한 수출 성공 사례 등을 발표했다. 또 FTA를 활용해 수출을 늘리고, 신시장을 개척한 20개 기업·기관은 산업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PLUS POINT 

“K농업 지킴이 된 FTA”

FTA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중 하나는 외국의 저렴한 농·축·수산물이 국내로 대거 들어와 국내 일차 산업 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였다. 칠레와의 FTA 발효 이후 20년, FTA는 오히려 고품질 국산 농·축·수산물의 수출 활로가 됐다.2004년 34억달러(약 4조5672억원)에 불과했던 한국산 농수산 식품의 수출 규모는 120억1000만달러(약 16조1330억원)를 기록했다.

20년 만에 네 배 가까이 수출이 증가한 셈이다.수출로 인한 생산액 증대 효과 역시 FTA 체결로 인한 생산 감소액의 네 배 수준이다. aT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FTA로 인한 생산 감소액은 1930억원, 수출을 통한 생산 증가액은 7951억원에 달한다.aT 관계자는 “농식품 수출의 82%가 FTA 체결국으로 향한다”면서 “농식품의 FTA 수출 활용률도 2016년 56.8%에서 지난해 78.7%까지 올라왔다. FTA가 농식품 수출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수출 중심 경제 구조인 한국에서 농식품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농식품 수출은 농민 소득 증대는 물론 국내 부가가치 창출 등 ‘플러스알파’ 효과가 상당하다.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의 국민경제 기여 효과 분석’에 따르면 100억달러(약 13조4330억원) 규모의 농식품 수출 시 부가가치 유발액이 76억4000만달러(약 10조2628억원)에 달한다. 이는 반도체 수출 부가가치율(67.2%)보다 높은 수준이다. 취업 유발 효과도 100만달러(13억4330만원)당 18.9명으로 자동차(9.13명), 의약(8.1명), 선박(7.9명) 등 타 업종을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