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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박태호·표인수·허윤 통상 전문가 3人 “FTA 20년, 韓 세계 경제 영토 2위… 한국을 첨단 소부장 글로벌 허브로”
  • 이선목 기자
  • 2004년 한국이 칠레와 첫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한 지 20년을 맞았다. 이후 한국은 꾸준한 FTA 체결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경제 영토를 넓혀왔다. 지금까지 발효된 FTA는 21건, 59개국. 이들 국가의 GDP 규모만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에 달한다. 여기에 필리핀과 에콰도르, 아랍에미리트(UAE), 걸프협력회의(GCC) FTA도 서명·타결돼 발효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 심화와 보호무역, 자국 우선주의 기조 강화, 코로나19와 전쟁에 따른 공급망 재편 등 통상 환경이 급변하며 글로벌 경제협력 체제의 역할과 의미가 달라지는 모양새다. 관세·비관세 철폐 등 시장 접근 확대 중심에서 디지털 경제 전환, 기후변화 대응 등 국제 현안에 대한 규범까지 다루는 식이다. 기존 통상 질서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 속 글로벌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통상’이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표인수 태평양 외국변호사,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통상 전문가 3인에게 FTA 20년 성과와 급변하는 통상 질서 속 글로벌 경제협력체의 의의, 한국의 대응 전략 등을 들어봤다.

    서울대 경제학,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현 서울대 명예교수, 전 통상교섭본부장, 전 조지타운 대 교수,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전 무역위원회 위원장, 전 세계은행·IMF 방문학자, 전 한국국제통상학회장, 전 파리정치대 방문교수

    칠레와 첫 FTA 발효 이후 20년이다.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면.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이하 박태호)
    “지난 20년 간 한국의 FTA 체결은 우리의 수출 시장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 정부는 2003년 작성한 ‘FTA 로드맵’에 근거, 양자 간 FTA를 추진해 왔다. 한국은 일본을 제외하고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베트남, 칠레, 페루 등 선진국, 거대 신흥국, 개도국등 다양한 국가와 21개 FTA를 체결했다. 한국은총 59개 국가와 FTA를 맺었고, 이들 국가의 GDP를 합하면 전 세계 GDP의 85%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한국은 싱가포르 다음으로 세계 2위 FTA 네트워크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다만, 정부가 FTA 네트워크를 통해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서 노력했음에도 대기업에 비해 성과가 다소 미흡했다는 점은 아쉽다.”

    표인수 태평양 외국 변호사(이하 표인수) “한국은 FTA를 통해 경제 영토를 확장해 오면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미국, EU,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 주요 국가들과의 FTA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 큰 도움이 됐다. 무역 주도형 성장을 추구하는 한국 경제에서 두 가지 중요한 축이 있는데, 세계무역기구(WTO)라는 다자 자유무역 체제와 FTA라는 양자 간 무역 확장 전략이다. 특히 한국 기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해당 국가와 FTA를 통해 적극적으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큰 이점이 있다. 또한 FTA에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시 투자 보호 조항과 분쟁 해결 조항 등투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포함돼 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이하 허윤) “2004년 이후 FTA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구축한 한국은 동아시아 무역·투자의 허브로 성장했다. 다자주의, 자유무역이 퇴조하는 현 통상 환경에서 FTA 망은 수출의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도 한국이 외국인 투자의 게이트웨이가 된 것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 2023년 한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신고액 기준 약 327억달러(약 44조원)로 역대 최대였다. 외국인 투자업종도 반도체, 배터리, 금융, 보험 등 첨단 산업이다. 특히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는 공급망협력과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 등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미 수출액만 해도 1157억달러(약 155조원)에 이르고 한미 간 상호 보완적인 무역구조를 통해 ‘윈윈’ 효과를 내고 있다. 주요 교역 상대국들과 FTA를 맺지 않았다면 우리의 운명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서울대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 제24회 행정고시, 미국 시러큐스대 법학 석사, 전 통상산업부 아주통상1과장, 전 대통령비서실 및 상공부 서기관,전 상하이 국제경제무역 중재위원회 중재위원

    통상 환경과 무역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하는 이슈는.

    박태호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많은 나라에서 자국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거나 외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는 것이 국내 일자리를 빼앗고 양극화를 악화한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즉,가능하면 상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아울러 국가 안보 개념이 경제 분야로 확대되고 나아가 첨단 기술 제품 개발과 핵심 광물의 공급망 확보 등을 포함하는 등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는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세계 통상 환경은 상당 기간 지정학적 위험과 함께 기정학(기술정치학)적 불확실성에 빠져들 전망이다.”

    표인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가장 중요한 이슈다. 이는 미·중 갈등을 계기로 본격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 산업이다. 향후 모든 산업의 발전과 기업의 생존은 결국 반도체 확보에 달려있다는 것이 명확해진 이상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전략 산업의 확보 여부가 국가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허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큰 위험 요소인 것 같다.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에너지와 기후 정책을 대폭 수정하고 탈(脫)다자주의를 가속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을 방위비 분담의 대상 혹은 미국 일자리를 위협하는 경쟁국으로 인식하면서 그동안 추진해 왔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나 광물안보연대(MSC)폐기 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1) 무력화 등을 시도할 수 있다. 2023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445억달러(약 60조원)다. 트럼프는 전통 우방국이자 대미 무역 흑자국인 한국과 독일,일본 등에 대해 관세를 포함한 각종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FTA의 중요성이나 역할이 과거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박태호
    “최근 WTO 중심의 다자 무역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WTO 분쟁 해결 제도 핵심인 상소 기구는 마비된 지 오래고, 세계 통상 환경이 직면한 복합적 리스크를 WTO가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양자 간 FTA나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지역무역협정(RTA)2)은 무역자유화 추진이나 새로운 무역 규범을 제정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상거래, 디지털 무역, 투자 원활화, 기후변화 대응 등 새로운 통상 이슈에 대해 FTA 차원의 규범을 먼저 만들고 추후 이러한 규범을 다자화해 나갈 수 있다면 FTA나 RTA가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표인수 “FTA는 이미 큰 국가적 자산이다. 59개국 기체결국과 협상 완료 9개국을 합치면 사실상 경제적 영향이 큰 모든 국가와 자유로운 무역 시스템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세계 무역에서 비중이 큰 미국, 중국, EU, ASEAN 등과 FTA는 앞으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FTA도 한국 기업의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게끔 계속 보완,발전시켜야 한다. 아울러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핵심 자원 및 광물 등 전략적 가치가 큰 신흥국들과경제동반자협정(EPA)을 통해 시장 개방, 공급망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를 통해 포괄적인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전반적인 통상 네트워크의 고도화는 당연히 필요하다.”

    허윤 “2017년 트럼프 집권 이후 세계는 ‘탈세계화’라는 긴 터널로 접어들었다.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정서, 자국 우선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떠오른 상황에서 사안별, 이슈별, 국가별 국제 협력과공동 대응이 유효한 통상 정책이 될 것이다. 다만,기존 FTA를 개선하고 디지털 무역, 기후변화 등 신통상 의제를 반영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서울대 경제학, 미국 조지워싱턴대경제학 박사, 현 서강대 세계무역연구소장, 전 한국국제통상학회장,전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전 세계은행 경제자문역,‘역사의 시작’ 저자

    다양한 신통상 네트워크에서 영향력 제고도 중요할 것 같다. 대응 현황을 진단하면.

    박태호 “한국도 기존 FTA 내용에 한계가 있다고보고, 보다 미래 지향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협정 체결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 기존 FTA에 대해서는 새로운 통상 이슈 및 협력 분야를 추가하는 ‘FTA 개선 협상’을 진행하는 동시에 신통상 규범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포함하는 EPA나 무역과 투자에 집중하는TIPF를 체결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세계 10위권 주요 무역 국가로서 조만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3) 가입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CPTPP 가입은 시장 및 공급망 다변화 측면에서 우리 기업에 큰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다. 또한 WTO,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4) 등에서도 새로운 통상 규범 제정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허윤 “이번 정부에서 기존 FTA 방식이 아닌 TIPF와 EPA로 통상 협력의 방향을 전환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라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IPEF에 적극 참여하고 일부 논의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CPTPP의 경우 한국 가입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가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 발생이라는 문제나 타이밍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민관이 힘을 합쳐 미국이나 EU 등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정책적 변화를 읽어 내고 최적의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산업·통상 플랫폼의 활성화가 필요하다.”이런 통상 환경 속 민관이 협력하는 ‘세일즈 외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표인수 “민관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큰 세계적인 흐름은 정부가 직접 산업을 육성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며 개별 기업과 접촉을 강화하는 신산업정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중국이 촉발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 정책은 미국을 비롯한 EU, 일본 등으로 확산하고 있고, 한국도 과거 WTO 체제 아래서보조금 금지 혹은 제한에만 너무 매몰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이런 산업 정책은 결국 입법을 통해 시행돼야 하는데 세계 각국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데 비해 우리 국회는 이러한 흐름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좀 더 관심을 두고 기업과 정부,국회 등이 ‘코리아 원 팀(KOREA ONE TEAM)’으로 노력해야 한다.”

    + 한미 FTA 체결 후 활발해진 양국 교역



    FTA를 비롯해 지속적인 글로벌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전략을 조언하면.

    박태호
    “자국 내 생산을 중시하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 확산은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이뤄온 한국에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이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통상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우리 기업의 해외투자와 우리 수출을 연계시켜야 한다. 해외로 진출한 우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첨단 기술 분야의 고부가가치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수출해, 한국을 첨단 소부장 제품 공급의 ‘글로벌 허브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한국을 미래 첨단 기술 연구개발(R&D) 핵심 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네덜란드 ASML이 삼성과 합작으로 한국에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R&D 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게 좋은 예다. 셋째, 중소기업의 국제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 진출해 생산 및 조립 기지를 구축하고 다양한 상품을 제조해 세계시장으로 수출해야 한다. 이때 FTA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 넷째, FTA를 체결한 여러 개발도상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들의 요구나 필요에 협조하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표인수 “자유무역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WTO 개념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FTA를 비롯한 통상 의제도 더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통상 수요자인 기업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IRA 입법 시 한국 정부와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계속 소통하면서 리스(commercial vehicle)라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한국 자동차 산업에 숨통을 트게 한 게 좋은 예다. 통상은 과거의 통상이 아니라 산업, 기업과 밀접한 살아 숨 쉬는, 그야말로 생명력 있는 유연한 통상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산업 수요를 반영한 선제적 통상, EPA, TIPF 같은 보다 고도화된 통상 전략이 필요하다.”

    허윤 “보다 과감한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경쟁국의 자국 기업 혹은 자국 투자 기업 지원 프로그램은 규모·내용 면에서 자국 영토에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결의가 가득하다. ‘지원’과 ‘육성’이 한국에서만 ‘선심성 특혜’로 인식돼서는 곤란하다.”

    용어설명

    • * 인플레이션 감축법(IRA)(1)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 약 48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 2022년 8월 발효됐고, 전기차·배터리·에너지 등을미국 현지 생산하는 업체를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내용이 담겼다.



    • * 지역무역협정(RTA)(2)

       소수의 회원국 간, 특별한 우대를 맺는 협정이다. 주로 인접 국가나 특정 경제 권역을 중심으로 맺는다.



    • *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3)

      2018년 3월 8일 미국이 탈퇴하고 의장국인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11개국이 새롭게 추진한 경제동맹체.


    • *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RCEP)(4)

       2022년 1월 1일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등 총 15개국이 맺은 전 세계 최대 규모 F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