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Bio Cluster

Bio Cluster ④

K바이오 클러스터 성공하려면
  • 조용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2만㎡ 규모의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이곳에 기업, 병원, 핵심연구지원시설 등 총 126개 기업·기관이 입주해 있다.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최근 바이오산업에 대한 각국의 지원 정책이 강화되는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생명과학 기술이 인공지능(AI)과 엔지니어링·제조 공학기술과 융합해 첨단 바이오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의 판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전 세계는 감염병이 국가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체감했다. 백신 개발과 보급을 위한 국가들의 각축전과 경쟁이 심화되면서 백신 공급망 사슬(value chain) 측면에서의 보건·의료 안보 이슈가 크게 부각됐다. 즉, 미래 신성장 산업 동력으로서의 가치와 국가 보건 안보적 중요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 국가 생명과학 기술의 퀀텀 점프를 가능하게 하고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산업적 중요성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오 비즈니스는 그 특수성 때문에 성공을 보장하기 매우 어렵다. 장기간 소요되는 실패 위험성이 높은 연구개발(R&D)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며, 각종 규제가 사업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스크의 분산과 산·학·연·병 주체들이 상시 협업하기 위해 바이오 분야에서의 클러스터 구축과 운영은 필수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오산업단지들이 모두 생명과학 복합도시 형태의 클러스터로서 개발돼 운영되고 있는 배경이다. 한국의 경우도 1990년대 말부터 바이오 분야 벤처기업과 관련 클러스터 육성에 박차를 가해 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국형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화두로 바이오 분야 및 클러스터의 육성과 전폭적 투자에 어느 정부보다 매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취임 초기부터 선진 바이오 클러스터 육성에 지대한 관심을 피력해 왔으며, 해외 순방 등 대외 활동 과정에서도 이 부분이 상당히 강조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과 경제 안보 실현을 위한 장기적 방향성의 관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에서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해 국내 정책으로 개발·추진할 때는 한국이 처한 현실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례 대상국의 사회·문화적 특성, 산업 인프라적 특성 등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하며, 한국의 바이오 클러스터 정책 형성의 저변에 깔린 인식 구조를 해외와 비교해 봐야 한다. 한국의 바이오 클러스터 정책은 지역 균형 발전 내지 지역 주도 혁신 성장의 당위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는 데 있어 현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 균형 발전의 명분에 사로잡혀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통념과 인식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크 아이엠지티(IMGT) 연구소에서 약물의 나노 입자 크기를 측정해보고 있다. 뉴스1

    수도권에 몰려있는 바이오 클러스터


    ‘2022년 기준 국내 바이오산업 실태 조사(산업통상자원부·한국바이오협회)’를 보면 수도권과 타 지역 간 불균형 현상이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역별 R&D 투자 금액 격차 역시 최소 3배에서 최대 430배까지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R&D 투자 외에도 기업 수 및 인력, 국내 판매 등에 있어서 모두 수도권에 역량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2 보건산업백서(한국보건산업진흥원)’를 보더라도 2021년 기준 국내 의료 기기 산업 생산 업체의 대부분인 67.7%가 서울·경인권 등 수도권에 분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력 면에서도 60.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같은 수도권 편중 내지 쏠림 현상은 언론과 바이오산업계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그런데 수도권 중심의 과밀화는 무조건 나쁜 것인가?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이유는 각 기능과 주체들의 집적을 통한 시너지 창출을 위해서다. 클러스터의 본질은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라는 개념과 관련 있다. 허브 앤드 스포크는 수레바퀴 중심축(hub)과 바퀴살(spoke)을 뜻하는 단어에서 착안해 물류 운송에서 나온 용어로, 모든 물류가 중심 거점(hub)으로 모인 뒤, 주변 도착지(spoke)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중심 허브에서 주변부를 이어주는 구조가 클러스터의 핵심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이오산업 기능의 집적을 추구하면서 국토(지역)의 균형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된 논리다.


    + 수도권 쏠림 심한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 2022년 기준. 자료_한국바이오산업정보서비스

    국가 역량 집중할 수 있는 체계 필요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수많은 글로벌 대형 제약회사(Big pharma)가 입주해있고 지금도 계속 신규 유입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12만여 명), 보스턴시(68만여 명)의 인구가 총 80만여 명 정도인데 그중 바이오테크 분야 R&D 인력이 5만5000여 명, 투자 및 경영 등 관련 인력 4만여 명 등 약 10만여 명이 바이오테크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전체를 통틀어도 전체 바이오 인력은 10만 명이 안 된다.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글로벌 빅파마와 무수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 여기에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털(VC) 및 기업벤처캐피털(CVC),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대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연구소 등이 참여한다. 또한 미국 정부 차원의 투자 지원금 규모도 크다. 이렇게 보스턴은 민·관이 유기적으로 맞물리고 최고의 기업, 병원, 대학 연구소들이 과밀하게 편중되면서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바이오 비즈니스에서 선의의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지역 균형 발전 논리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가 역량의 분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 균형 발전과 지역 주도 성장을 위해 바이오산업과 클러스터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거점으로서의 스타(Star) 바이오 클러스터를 먼저 육성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 주도 성장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논리적으로 현실에서 타당한 게 아닐까.


    한국에서 바이오 클러스터 지역 구분은 연구자나 정책가의 관점에 따라 정의가 다르지만 통상 권역 기준으로는 6~7개로 나뉘고, 시도 기준으로는 20여 개로 분류된다. 집결돼야 할 국가 바이오 역량이 자칫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가 지역 균형 발전 문제 해결의 촉매제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칫 본말이 전도된 정책 추진과 지역별 ‘예산 나눠 먹기’ 식의 정책으로 변질되는 현상은 최소화해야 한다. 

    1 경북바이오산업단지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 경북도 2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내 오픈랩.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작은 ‘점’들이 모여 ‘선’으로


    점(點)이 모여 선(線)이 되고, 선이 모여 면(面)을 이룬다는 관념(생각)은 바이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이를 바이오 클러스터 정책 관점으로 치환하면 클러스터 내 역량 강화가 점이고, 클러스터 간 연계·협력은 선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클러스터에 대한 국가 전략⋅계획 수립과 구현은 면에 해당한다.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가 점에서 선으로, 선으로 연결된 점들이 면을 형성화도록 유도하는 정책 추진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일본의 바이오 국가 정책인 ‘바이오 전략’은 이러한 ‘점-선-면’ 구조의 정책 추진을 잘 반영한 사례다.


    일본 정부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갖춘 관동권(도쿄권역)과 관서권(오사카-고베-교토 권역)을 ‘글로벌 바이오 커뮤니티’로, 지역별로 기존에 축적돼 있던 역량을 갖춘 8개 권역을 ‘지역 바이오 커뮤니티’로 지정해 클러스터별 특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각 지역 바이오 커뮤니티는 지역 대학과 기업·연구소 및 지자체가 함께 움직이는 형태다.


    그리고 이들 바이오 클러스터들 간 연계·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정기적인 네트워킹 및 성과 발표회를 활성화했고, 민간 기업들이 이를 역동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가 바이오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구현(완성)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글로벌-지역의 투 트랙(two track) 구상을 전제로, 지역 분산보다는 일단 대도시(메가시티)를 중심으로 기존에 축적된 글로벌 바이오 클러스터의 세계적 역량이 국제사회에서 보다 잘 어필되도록 홍보하며,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책 지원이 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글로벌 수준의 바이오 클러스터 권역들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각 지역이 가진 역량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떠한 점을 특성화해야 할지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지역 거점별 바이오산업 육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유사한 문화적·사회적 특징과 고민을 가진 일본은 최근 한국과의 국제 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선 ‘점’들을 명확히 설정하고 역할과 목적에 맞게 바이오 클러스터 역량을 ‘선’과 ‘면’ 수준으로 키우는 일이다. 바이오 클러스터의 중요 혁신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는 GBA(Global Biofoundry Alliance)에 한국 참여 소식은 국제 점-선-면 협력의 시발점이 되기에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은 1980년대 생명과학 분야 법제 마련 및 국가 계획수립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러서는 바이오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수준의 성과를 이뤄냈다. 글로벌 창업 생태계 분석 기관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이 조사한 생명과학 분야 스타트업 활동 도시 순위에서 서울이 10위권에 랭크됐을 정도로 한국에 세계적 수준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관련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이제 클러스터라는 정책 수단을 잘 활용해 분산된 ‘점’들을 연결해 ‘선’으로 집결시키고, 이를 ‘면’으로 완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바이오 관련 각종 통계자료 및 분류 체계 등의 일원화를 통한 정확한 역량 분석의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바이오 클러스터 개념과 운영 철학에 충실하게끔 정책 방향을 잘 설정하고, 각 부처는 상호 협조 속에서 세부 시책 등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현실과 문화를 고려해 해외 바이오 클러스터 모범 사례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